뒷동산에 올라서면

by 안종익


일찍 요절한 가수의 노래 중에 “이등병의 편지”가 생각이 난다.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 ~”


저녁 무렵에 뒷동산에 올랐다.

온 동네가 다 내려다보이고 석양이 붉게 물들어 평화롭고 조용하다. 어릴 때부터 큰 소나무들은 지금도 큰 소나무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곧게 뻗은 소나무는 거의 없고 햇볕을 따라서 백 년 이상 이곳에 뿌리내리고 산 나무들이다. 어느 나무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고 서로 의지하면서 자기의 공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 껍질이 거북이 등 모양을 하고 있지만, 꼭대기로 올라 갈수록 원래 적송이었다는 것을 말하듯이 붉은 색깔을 보이고 있다.

멀리 보이는 비봉산이 오늘따라 선명하게 가까이 보이면서 들녘은 푸른빛이 가시고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뒷동산은 아랫동네와 건너 동네도 보이고 윗마을도 보이는 높은 곳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가슴이 트이고 후련함을 느끼면서 현재보다 다음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그 옛날 겨우내 춥다가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무렵이면 동네 골목을 벗어나서 들로 나올 때가 있었다. 이른 봄에 아낙네들이 봄나물을 뜯으러 나올 즘에는 어린애들도 따라서 들로 다니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뒷동산에 올랐다. 이 뒷동산에 오르면 멀리 보이고 눈길이 끝나는 곳 너머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도 많이 하던 곳이다. 그곳이 궁금해서 가 보리라고 생각하면서 꿈을 꾸던 곳도 뒷동산이었다. 보이지 않은 먼 곳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가슴이 벅차고 희망이 싹트던 곳도 뒷동산이었다. 그런 봄날에는 갖 피어난 제비꽃이나 이름 모를 풀들도 아름답게 보였고, 할미꽃이 유난히도 많던 곳도 뒷동산이었다.


한여름이 지나고 늦가을이 되면 뒷동산의 큰 소나무들은 낙엽이 진다. 뒷동산의 소나무는 크기 때문에 떨어지는 낙엽도 엄청 많았다. 그 낙엽을 글거 모아서 밥을 짓거나 불쏘시개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늦가을에 바람이 많이 불면 동네 아이들이 뒷동산으로 갈퀴를 갖고 모여든다. 갈퀴로 소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글거 모우는 작업을 서로 더 많이 모으려고 경쟁적으로 하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가는 줄도 모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 글거 모운 낙엽들을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그렇게 좋아했고 그날은 무슨 일을 한 것 같아서 가슴 뿌듯하게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떨어진 낙엽이 쌓여도 관심도 없고 너무 싸여서 썩어가는 형편이다.


뒷동산 남쪽에는 넓은 고인돌이 있다. 어릴 때는 그곳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던 곳이다.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오래 세월 동안에 검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수백 년을 넘어서 수천 년 이곳에 자리했을 고인돌이다. 뒤에 있는 큰 소나무들도 몇 번이나 바뀌는 것을 이 고인돌은 지켜봤을 것이다. 오늘도 올라가서 보니 먼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득한 옛일들이 떠오르게 하고 또다시 저 너머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한참을 올라서서 바라보니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돌에 올라서 생각에 잠겼을 것이라 느껴진다.

이 고인돌은 멀리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고 떠나는 사람을 끝까지 볼 수도 있는 곳이다. 이곳은 그 옛날에 읍내에 볼일 보러 갔거나 오일장 갔던 사람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돌에서 보면 읍내로 가는 하늘목재가 시작하는 곳이 보이고 재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오일장 갔던 엄마가 하늘목재에서 내려오면, 이 돌에서 보고 먼저 집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도 시간이 충분할 정도로 높은 곳이다.

오늘도 고인돌은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는 하늘목재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 산이 되었고 이 고인돌도 올라올 사람이 없어서 주위에 잡목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수십 년 만에 돌아온 뒷동산은 그대로이다. 단옷날 그네 매던 소나무의 줄 묶었던 늘어진 가지도 아직도 건재하고 주변에 제각각으로 생긴 소나무가 자연스럽다. 요즈음은 뒷동산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잡초와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할미꽃도 지금은 다 지고 내년 봄이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햇볕을 가려주는 큰 소나무들이 여전히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주고 있다. 뒷동산의 군데군데 있는 묘들도 아직도 관리가 되는지 옛 모습이다. 어릴 때는 이 묘 위에도 올라가서 놀던 놀이터였다. 떨어진 소나무 낙엽도 많지만 이제 글거 가도 반겨 맞을 엄마도 안 계시고, 같이 낙엽 글던 친구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산이나 가까이 보이는 들녘은 옛 모습이어서 어릴 적 마음으로 돌아간다.


뒷동산에 올라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는 아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그 기분이라도 느끼기 위해서 다시 한번 고인돌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본다.

고인돌에서 바라본 앞산은 저녁놀이 물들어 가고 햇볕은 산 꼭대기에 걸려 있다. 이제는 그 옛날처럼 저녁연기가 오르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저녁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물든 저녁놀이 지면 땅거미가 내려올 것이다. 그 땅거미가 뒷동산의 고인돌을 지나가면 뒷동산은 조용한 어둠이 깃든다. 고인돌에서 멀리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지난 일들을 감사하면서 또 하루를 마무리할 때이다.

“소풍 같은 인생”을 노래한 가수처럼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이 노래가 언 듯 떠오르면서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면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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