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이 걷히고 수십 미터 앞이 보이기 시작하면 하루가 조용히 시작된다. 또 새로운 하루인 것이다. 아침 산책을 시작할 때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고요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담이 없는 앞집 할머니 집은 벌써 문이 열려있고 모기장만 내려져 있다. 잠이 적은 할머니는 아침에 좋은 기운을 먼저 받으려고 남보다 일찍 문을 여는 것이다. 할머니 집을 지나서 바로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개울 아래 있던 두루미들이 놀라서 큰 날갯짓을 하면서 앞산으로 날아간다. 두루미는 아침 일찍 물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사람의 인기척이 나니까 자리를 뜨면서 앞산의 높은 소나무에 날아올라서 다시 어디로 갈까 주위를 살피는 것 같다. 다리 밑의 개울에는 부지런한 물고기들이 열심히 오가면서 바삐 움직인다.
다리를 건너서 학교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갈 때는 사람을 실은 트럭이 지나갈 시간이다. 아랫마을에 귀농한 사람이 오늘 일할 사람을 싣고 밭으로 가는 길이다. 이어서 트럭이 여러 대 지나가지만 언 듯 보아도 누구 트럭인지 알 수 있어서 늘 목례로 아침 인사를 하지만 바쁘게 지나가니까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학교 밑에 넓은 밭은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고 아무런 작물이 심어져 있지 않다. 이 밭은 이른 봄에 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밀이 너무나 크고 무성해서 수확할 시기가 곧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잘 자란 밀밭을 기계로 로타리를 하면서 밀을 통째로 밭의 거름으로 쓴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지만 이 밭주인은 그 밀을 거름 삼아서 비닐을 깔고 며칠 지나니까 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어서 수박 모종을 심는 것이다. 그 수박이 처음에는 작은 모종에 불과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이 줄기가 자라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자란 수박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꽃이 피고 그 꽃도 일일이 따 주더니 나중에는 열린 수박도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없애고, 뻗어나가는 순을 잘라주는 작업을 매일 하더니만 어느새 수박이 엄청 크게 자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 대형 트럭이 와서 수십 명의 인부가 몇 시간 작업을 하니까 다시 빈 밭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두 달 만에 모두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심지 않은 잡초밭이 되어 있는 것이다.
수박 했던 밭을 지나 마을 끝에서 두 번째 집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이 북적인다. 이 집은 원래 빈집이었는데, 베트남에서 온 인부들이 사용하는 집이 되었다. 베트남을 처가를 둔 마을의 후배는 오늘도 부지런히 인력을 나누고 있다. 이 후배는 처가의 장인을 비롯해서 십여 명을 넘게 운용하고 있다. 아마도 베트남에서 처가 친척들이 같이 온 것 같은데, 힘든 일도 서로 웃으면서 보내는 것 같다. 아침에 지나가면 낯이 익어서 그런지 베트남 사람들도 꼭 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에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면 기분도 좋아진다. 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양쪽에는 벼들이 자라는 논이다. 논의 벼 이삭이 팬지 한참이 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무성하다. 한참을 가다가 보면 부지런한 부성 씨가 논에서 풀을 뽑고 있다. 지나면서 들에 일찍 나오셨다고 인사를 하면 반가워하면서 간혹 덕담도 주고받는다. 부성 씨는 늘 일찍 나온다. 부성 씨는 일어나면 앞이 겨우 보일 때에 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논에 도착하면 앞이 잘 보일 정도이니까 보통 사람보다 한참 일찍 나오는 것이다. 팔십 년 이상을 아침이면 일찍 나오는 것이 습관이 된 평생 농부이다.
먼 산이 보이고 이제는 완전히 날이 밝아 온다. 길에는 부채를 든 할머니가 열심히 부채를 부치면서 앞서가고 있다. 아침에 덥지는 않지만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간다. 아침이 밝아 오면서 날파리들도 일어나서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 날파리들은 할머니 얼굴에 붙으려고 줄기차게 달려드니까 부채질해서 쫓는 것이다. 그냥 가다 보면 날파리들이 눈으로 들어오거나 아니면 귀로 코로 들어오니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할머니 오른손은 연신 자동으로 얼굴을 부채로 부치면서 가는 것이다. 할머니도 아침 운동을 나온 것이다. 백세가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지만 아직도 곧꼿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또래들은 모두 떠나고 이제 할머니만 혼자서 걸어가는 것이다. 자식들은 모두 멀리 직장 따라 떠나고, 혼자서 밥을 끓여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도 크게 이웃을 힘들게 하지 않고 큰소리 내지 않고 살아가는 할머니는 그 또래에서는 가장 성공한 할머니이다. 명절이나 휴가 때에 자손들이 올 때가 가장 즐겁고 일 년 내내 그날을 기다리면 살아가는 것이 할머니의 낙이다.
한참을 지나서 과수원에 이르면 귀농해서 윗마을에 정착한 선배가 과수에 약을 치고 있다. 아침에 보통 바람이 덜 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약을 치는 것이다. 한 해에 십여 번의 약을 치기 때문에 약 치는 것을 자주 보고, 그때는 과수원을 지나가기 싫다. 도시에서 정년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조용히 살려고 왔는데 농사일을 시작하다가 보니까 지금은 엄청나게 농사가 많아졌다. 다음 해는 꼭 줄여서 농촌의 전원생활을 즐기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봄만 되면 다시 늘어만 간다고 한다. 정년을 했지만 농촌에서는 아주 젊은이에 속한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힘에 부쳐서 농토를 맡길 때 거절하기도 힘들지만 소작료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기에 욕심도 생긴다는 것이다. 봄날마다 올해는 하는 농사가 대풍이 들고 가격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늘 들기 마련이다. 농약을 치는 날에는 눈이 마주치면 목례만 하고 지나간다.
요즈음의 이른 아침에는 집보다 들에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 있다. 아침 일찍이 나와서 들에서 일을 한두 시간 하다가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다시 나오는 것이다. 아침 산책에서 보통 돌아오는 곳이 윗마을 중간쯤에서 돌아온다. 이곳에 오면 선한 인상을 품기는 수동 어른이 있다. 집이 바로 앞에 있으면서 토지가 거의 집 부근에 있기 때문에 아침이면 늘 본다. 어떤 날에는 부부가 같이 일할 때도 있다. 만일에 전날에 아침 산책을 못한 경우는 이분들이 “어제는 아침에 못 봤다”,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물어 온다. 이분들이 내가 아침 산책을 일정한 시간에 오기 때문에 그 시간이 되면 지나가는지 살피는 것 같다. 오랫동안 아침 산책을 하다가 보니까 아침에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아침이면 내가 지나가는 것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침해가 떠오른다. 아침해가 떠오르면 햇볕이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도로까지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그렇게 잘 구분이 안 되지만, 도로에 내려온 햇볕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 속도가 빠른 걸음으로 가면 같이 갈 수 있을 정도이다. 보통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햇볕과 같이 마을로 돌아온다. 아침 햇살이 도로를 따라가는 것은 마을 앞에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일출 시간은 한참을 지났지만 태양이 마을 앞 높은 산을 넘어서 떠오르기 때문에 높은 산 그림자 때문에 햇빛이 비치는 시간이 다른 것이다. 마을에 도착할 무렵이면 태양이 높은 산 위에 올라서 있을 때이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 산책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산책은 아는 분들과 만남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아침 산책은 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은 잊지 않고, 특별하면서도 아주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