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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03. 2024

서해랑 길 27일차

선운사 정문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걷기 시작해서 다리를 건너가면서 아래를 보니까 강물에 물안개가 살짝 떠 있다.

선운사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길 양쪽에는 거의 장어집이었다. 원조라는 표현도 많이 있고 저렴하고 실속있다는 집, 아니면 맛집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고창의 선운사 부근에는 민물장어집이 집중해 있었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걸어가니까 산 쪽으로 큰 뚝이 보인다. 그 뚝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오르막을 숨차게 올라가니 “연기제”라는 비석이 서 있고, 물이 많이 담겨있는 저수지이다.

“연기제” 뚝이 높아 걸어온 길을 돌아본 경치는 멀리 산에서 아침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가는 산길은 연기제를 돌아가는 산길인데, 아침에 산책하는 길로서는 멋진 곳이었다. 오르막도 마지막에 있고 평탄한 길을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갔다. 사람이나 차도 지나가지 않고 새소리만 정겹게 들리는 기분 좋은 길을 걸었다.


이 길이 끝나고 고개를 넘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고개에서 다시 산속으로 길이 나 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을 걸어가는데, 거미줄이 많아서 내가 거미줄을 걷으면서 걷는다. 산속 길을 걸으면서 굴곡이 많아 짚고 갈 지팡이를 가는 길에서 구했다.

산속 길에는 심원면 사람들이 부안장터에 곡물과 교환하기 위해 소금 짐 지고 쉬어쉬어 넘던 “질마재”도 지나왔다.

산속 길은 어느 순간에 앞이 탁 트인 전망과 집이 나온다. 

이 집을 지날 때 큰 개들이 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사납게 짖기 시작한다. 그런데 큰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니까 개 짖는 소리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가까이 지나면서 지팡이로 땅을 한번 치고 지났다. 그때 개들은 일제히 꼬리를 내리고 개집을 들어가기 바쁘다. 여기서 느낀 건 개들의 DNA에는 몽둥이를 보면 꼬리를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신기해서 나무 지팡이를 계속 들고 오다가 다른 집 개들도 같은지 시험했다. 지팡이로 땅을 크게 짚고 지나갈 때는 짖지도 못하다가 확실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짖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고 그림자와 같이 걷는데 마을 입구에 오래된 나무가 나오고, 그다음에 우물터를 만들어 놓은 마을을 걸었다. 

색다른 느낌은 들긴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미당 서정주 생가가 나왔다. 미당이 이곳에 태어났다고 하고, 지금은 옛 모습대로 초가집을 복원해 놓았다. 이 마을이 선운리이다.

선운리를 지나 모내기를 한 농로를 따라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걸었다. 다시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니까 양어장이 나온다. 

반월리를 지나면서 갯벌을 나오는 바닷길을 걸었다. 

그다음에 나오는 상포리를 지나도 바닷길이고, 이곳부터는 바닷가에 양어장이 계속 이어져 만들어져 있다. 


긴 바닷길을 걷는 것은 너무 뜨거워 모자를 썼지만, 머리에 열이 난다. 이런 길을 혼자서 걸으니까 길은 더 멀어 보이고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 힘들게 걷다가 사포리를 만났다. 이 마을을 들어서면서 또 초가집을 만났다. 이 집은 만정 김소희 명창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생가도 잘 복원되어 있고, 지금 걷고 있는 곳도 “김소희길”라고 명명되어 있다.


조금 더 가니까 반석 교회가 높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름처럼 큰 돌 위에 지어져 있다. 목이 너무 말라서 교회에 들어가 물을 얻으려고 오르막을 올랐다.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올라온 김에 그늘에서 한참 쉬면서 밑으로 다니는 차들을 구경했다. 

반석교회에서 바로 내려가니까 43코스의 종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곳이었다.


다시 시작한 44코스는 후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작은 가게가 나오는데, “후서 점방”이라고 간판이 달려 있다. 반가운 가게에 들어가 갈증을 해소했다.

후서 마을을 지나면서도 농로이다. 이 농로를 지나면서 눈에 익은 리본을 만난다. “맑음”이란 리본은 해파랑길을 걸을 때도 만났고, 남파랑 길을 걸을 때도 만났다. 다시 서해랑 길에서도 만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맑음이란 단어가 참 좋은 것 같다. 

농로가 끝나는 부근에 대형 우사가 많이 들어서 있고, 소먹이도 산처럼 쌓아 놓았다. 

오르막을 올라서 가서 다시 내려가 해안 길을 걷는다. 이쯤에 고창군에서 부안군으로 넘어온 것 같은데 표시는 없었다. 

고창군은 고창 갯벌과 같이 걸어온 바닷길이 기억나고 선운산을 넘어와서 장어집이 많은 것이 생각난다. 고창군에는 고추를 대단위로 하는 곳이 자주 보였다. 


부안군에 와서 약간 높은 길에 넓은 밭이 보이는 곳도 만난다. 그곳에서 보리가 아니고 밀밭이 잘 익어가고 있다. 


여기를 지나면 멀리 줄포면의 높은 건물이 보이고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을 지난다. 

계속 바다 갯벌을 보고 걷는 길을 가다가 다시 농로를 걷는다. 해안에는 양어장이 계속 나온다. 양어장을 지나면서 자세히 보니까 새들이 양어장에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흰 선을 양어장 위에 쳐있었다. 


곰소에 들어와서는 해변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우레탄으로 걷기 좋게 만든 길이다.

갯벌이 보이는 곳, 멀리 하늘엔 뭉개 구름이 떠 있다.

곰소항에 가까워지는 곳에 새우조형물이 있다. 거기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44코스 종점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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