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없는 초겨울 하늘이 흐린 것이 무엇인가 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도립공원의 긴 계곡을 따라서 난 도로에는 산행하는 사람들이 세워 두고 간 차들이 내려오는 방향 도로 가장자리에 끝도 없이 세워져 있다. 낙엽은 지고 난 뒤이지만 휴일이라서 아직 등산객이 산으로 많이 올라간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은 차들이 많지 않아서 차량 통제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가을 단풍 성수기에는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너무 많이 와서 차량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그때는 아침 일찍 나가서 오후 늦게까지 차량 정리가 힘들었지만, 고마운 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덜 훼손되고 등산객 불편을 덜기 위해서 자원봉사를 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남자는 마음속으로 이 산의 주인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요즈음은 등산객이 줄어서 휴일만 나와서 차량관리를 하고 그것도 점심때쯤에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공원 입구에서 계속 올라와 등산로 입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서 공원 중간쯤의 좌측 언덕에 홀로 자리하고 있다. 옛날부터 있던 집을 손을 봐서 만들고, 주변에 텃밭도 일구어서 집에서 먹는 채소는 자급자족한다. 이 집에서 공원 입구 쪽을 바라보면 깊은 계곡이 아래도 보이고 산의 수려한 풍경만 한눈에 들어온다.
남자는 집에 도착해서 집사람이 차려 놓은 열무김치와 밥을 몇 숟가락 뜨고는 냉장고 들어 있는 맥주를 들고 와서 열무김치를 안주 삼아 먹기 시작한다. 열무김치는 집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무를 통째로 넣거나 반으로 썰어서 심심하게 고춧가루 대신 안 매운 생고추를 넣어 담근 것으로 입맛에 맞아 즐겨 먹는다. 집사람도 식성을 알아서 시원하면서도 심심하게 입맛에 맞게 잘 담근다. 이렇게 맥주 한 잔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바람이 없는 초겨울이라 문을 열어 놓아도 아직 춥지 않은 날씨이다. 문을 열어 놓고 공원 계곡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서 맥주잔을 들 때가 급할 것도 없고 행복하다. 단풍이 거의 떨어지고 간간이 붙어 있는 잎이 있지만 공원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앞에 펼쳐진 절경을 바라보니 눈이 곧 내릴 것 같다.
젊어서 도시에서 건축자재 도매상을 했다. 한창 좋을 때는 그 도시에서 몇 대 되지 않는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사업이 잘 되고 주변에 사람도 많이 있었다. 남자는 일찍 결혼을 해서 마누라와 아들 한 명이 있었는데 형편이 좋아서 어려움 없이 지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너무 사람을 믿다가 사기를 당했다. 처음 사기를 당할 때는 별로 타격이 없었으나 연속으로 사기를 당하니까 그 단단하고 넘어지지 않을 것 같던 도매상도 넘어갔다. 사업이 부도나고 형편이 어려워지니까 마누라와 다투는 일이 잦았고 결국은 마누라가 어느 날 자식까지 버리고 사라졌다.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갔다는 소리도 들리고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막노동도 하면서 살았고 도망간 마누라를 찾다가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술을 너무 많이 먹어 큰 키에 뼈만 남고 눈은 십 리나 들어가서 몰골이 해골이 되었다. 밥 대신 술을 먹는 날이 많았고 술을 먹어야 잠이 왔으면 차라리 술에 취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형편이 어렵고 힘들게 사니까 그 많던 친구들도 거의 떠나고 연락을 끊어졌다.
그러다가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두 번이나 바치니까 사는 것이 형편없었고 사람들이 피하는 것 같았다. 세상 원망하면서 살다가 자식이 독립해 나가니까 갈 곳은 어릴 때 떠난 고향을 쉰 살이 넘어서 돌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공원 너머에 있는 고향마을 빈집에 자리를 잡았다. 평생 농사를 해본 일도 없고 할 줄도 몰라서 처음부터 산으로 올라갔다. 고향에 들어올 때가 봄이라서 산에는 산나물이 나는 철이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사는 것 같았다. 산에 자주 오르니까 산나물도 보이고 약초도 보였다. 그러다가 가을에는 송이와 버섯을 주로 따면서 산삼에 관심을 갖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수년을 산에 묻혀 살았다.
산도 처음에는 고향 앞 뒷산에 주로 가다가 도립공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 도립공원에서 처음 산삼을 만났다. 한번 산삼을 만나니까 자주 보였다. 그래서 남들이 심마니로 부르기까지 했다. 도립공원 안에는 무허가 건물들이 거의 철거가 되고 남자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거의 쓰러져 가고 있었지만, 무허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흉물스럽기까지 했지만 자주 보니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을 수소문해서 가진 재산을 거의 주고 들어온 것이다.
가끔 술은 먹으러 면 소재지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기도 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집 사람을 만났다. 집 사람은 노래방 도우미를 하고 있었는데 나이는 쉰 살 가까이 보였다. 처음에는 여자가 무섭기도 하고 줄 정이 없었지만 자주 만나니까 외로운 사람끼리 같이 지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집사람도 바람피우다가 집에서 쫓겨나서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말도 있고,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는 말도 있지만 처음 신랑과는 완전히 남남이 되었고, 그 사이에 장성한 딸이 두 명 있다고 했다. 다시 한번 시집가서는 자식 없이 헤어졌다고 했다. 보기보다 곡절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시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서로 마음이 맞으니까 서로 이해하면 살 것 같아서 시작했다.
이곳에 집을 선택할 때도 같이 와서 보고, 집사람은 집을 수리하는 자제 값은 얼마 정도 보태주었다. 그리고 쓰레기나 못쓰는 물건은 같이 치우고 집을 고쳤다. 그렇게 처음에는 작게 살 공간만 장만했다가 차츰 수리 범위를 널 펴 나갔다. 이제는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한 산신령이 사는 집이 되었다.
가정이 생기니까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왔다. 주로 공원에 나는 송이를 찾아서 가으내 돌아다니다가 어느 정도 수입을 올리고 나머지는 산삼을 주로 캐러 다녔다. 이제는 산삼이 어디 많이 나는지 알 수도 있고, 오래되지 않는 산삼은 잎을 따서 숨겨 놓기도 한다.
어렵던 시기도 다 지나고 힘들었던 시절도 잊을 만하다. 모두가 세월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픔들도 세월이 치유해 주었다.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산에서 살기 때문에 얼굴도 산을 닮아 간다. 지금도 큰 키에 마른 체구를 유지하기 때문에 산에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 산에 자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세상 일에는 무심하고 별로 관심이 없다. 산에서 가져온 것은 집사람이 처리하고 산에서 필요한 약초가 있는 사람들도 자주 연락이 온다. 도립공원의 모든 곳을 알고 있고 남자가 산속을 다니면 산신령이 지나가는 듯이 쳐다보는 등산객들도 있다.
집사람과 둘이 앉아서 문밖을 바라본다.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집 입구에 매어 둔 강아지가 첫눈을 맞고 짖기 시작한다.
첫눈이 내리는 것을 방안에 바라본 도립공원 계곡은 한 폭의 수채화이고, 남자의 집은 산속에 신선이 사는 집처럼 보인다. 세상이 고요하고 하얀 눈이 한없이 내리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조용히 내리기만 한다. 집이 높아서 내리는 눈이 아래로 보이고 한없이 마음이 포근해진다. 집 입구의 강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깡충거리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계곡 건너편 나무들도 내리는 눈을 팔을 벌려서 온몸으로 마음껏 맡고 있다. 남자는 지나간 힘든 일들은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현재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껴 집 사람 손을 잡아 본다. 눈은 기다렸던 것처럼 남자의 마음속에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내린다.
옆방에서는 환갑을 두해 남기도 얻은 딸이 혼자서 놀고 있는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