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공원은 바위가 칼날처럼 깎아진 곳이 있기도 하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도 있는 것이 단풍철에는 관광객을 불러올 정도로 빼어난 경치이다. 어디서 그렇게 사람이 오는지 가을 단풍 절정 휴일은 차량이 교행이 힘들 정도로 공원으로 들어온다. 공원의 중간에는 산 이름과 같은 천년 전에 창건한 사찰이 있다. 보통 이런 사찰이 있으면 공원에 들어오면 입장료를 문화재 보호 명목으로 받지만, 이 공원은 입장료나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산 곳곳에 역사적 사실이 사실도 많고 사찰도 천년고찰이지만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인심 좋은 도립공원이다.
이곳에 있는 사찰은 사변 때 스님들이 모두 떠나고 빈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에 산 아래 사는 아주머니가 남편의 폭력과 시어머니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맞아서 죽을 것 같아서 빈 사찰이 된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산을 내려가서 시주해 부처님을 정성껏 봉양하고 기도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사변이 끝나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도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이 사찰에 가면 복 받고,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까 신도들이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찰은 자연히 활기를 띠고 부유해졌다고 한다. 그러자 옛날 사찰을 버리고 갔던 스님들이 다시 돌아와서 그 할머니 보살을 사찰에서 내 보냈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다.
그 사찰은 공원의 중간에 주위 풍광과 잘 어울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고, 남자의 집도 사찰과 떨어져 있지만 같은 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면 눈 내리는 것이 장관이지만, 계곡 중간에 있어 그렇게 바람은 세게 불지도 않고 봄이면 온 계곡에 진달래가 만발해서 상춘객이 지나가면서 감탄을 하는 곳이 된다.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 바람이 불어서 한여름에도 덥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때는 가을이다. 온 도립공원 계곡에는 노랗고 빨간 단풍이 든다. 산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어 어디를 보아도 동양화가 되는 계절이다.
이런 곳에 온몸에 군살이 없는 도인 같이 생긴 남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산에만 열심히 오르내린다. 간혹 남자의 집사람이 산을 내려가서 필요한 것을 구해 오지만 오직 세 식구만 욕심 없이 살고 있다.
여름이 되면 남자는 산속에 산삼을 찾아서 들어갔다. 산속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만큼 될 정도로 시간만 있으면 산으로 들어간다. 미리 산삼을 발견해 놓은 것이 여러 곳 있다. 그런 산삼을 살펴보기도 하고 새로운 산삼을 찾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산을 다녀야 한다. 발견한 산삼 중에는 어린 산삼이 상당히 많다. 채취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물건이 될 수 있는 산삼은 계속 키운다. 산삼은 어느 해는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는 해가 있다. 그동안 잎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잎이 없어도 뿌리는 살아 있는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그러니 잎이 무성해도 몇 년이 안 된 산삼은 남자는 그대로 둔다. 본인이 다음에 주인이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약효가 있을 때 채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보통 다음에 발견하는 사람이 그냥 두고 보지 않으니까 아기 산삼은 그대로 두고, 오 년 이 내 채취할 산삼은 하는 수없이 산삼 잎을 모두 따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산삼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그곳의 위치를 잘 기억해 두는 것이다. 이렇게 잎을 따면 혼자 먹지 않고 주변의 지인들을 불러서 삼겹살에 쌈을 싸 같이 먹는다. 남자는 그 삼겹살이나 산삼 잎도 잘 안 먹는다. 오직 맥주와 열무김치만 있으면 된다. 지인들은 여러 종류의 술을 먹지만 남자가 먹는 술은 맥주이다. 그것도 술에 대한 아픈 추억으로 집에서만 마신다.
백로가 지나면 아침 해뜨기 전에 산속으로 들어간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낮 시간 동안 도립공원을 모두 돌고 올 생각이다. 뒤에는 배낭을 메고 지팡이 하나가 전부이다. 지팡이는 집고 올라가기도 하지만, 뱀이 나오면 옆으로 밀기도 한다. 산돼지는 어김없이 보지만, 보면 지날 갈 때까지 지켜보면 된다. 배낭 속에는 물과 빵 하나만 들어있다. 남자가 오늘은 그동안 알고 있는 송이밭을 모두 갈 예정이다. 도립공원 온산에 흩어져 있는 송이밭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오늘도 송이 따러 온 사람들과 몇 번 만날 것이다. 그래도 많이 알고 부지런한 남자가 이 산에서 송이를 가장 많이 딴다. 아침 일찍이 오른 산이 점심을 지나서 오후가 늦었는데 남자는 내려오지 않았다. 집에서 기다리는 집사람과 딸은 온 산을 지켜보고 있다. 어느 곳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겨우 빵 하나만 가지고 산에 올라간 남자가 아직 내려오지 않으니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송이를 많이 따올 것 같은 기대도 해 본다.
이제는 아예 집 밖에 나와서 산을 바라보고 있지만 남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후 늦어서야 산에서 내려오는 남자가 보였다. 집으로 올라오는 남자의 배낭은 무거워 보였다. 깡마른 남자는 무거운 배낭도 힘들어하지 않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열었다.
아직은 돈이 되는 가을 송이는 별로 없고 여름송이만 가득하다. 여름송이는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송이로 향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없다. 능이버섯과 야생 포고도 있었다. 이 철에 산에서 나는 것은 모두 나왔다.
그런데 배낭 속에 빵이 그대로 있었다. 물만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남자의 집사람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 소리를 듣고도 남자는 삶은 고구마 한 개를 먹고는 다시 시원한 맥주를 가져온다. 집사람은 익숙한 듯 맛소금에 참기름을 쳐서 여름송이를 손질해서 가져다준다. 남자는 맥주를 부어 마시면서 산 아래를 내려 보는 얼굴에는 만족감이 돈다.
젊은 시절의 한때 화려하게 살았는데 그때 많던 친구들이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하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없지만, 지금은 산중에서 집사람과 딸이 같이 있으니까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도립공원에 있으니까 철마다 사람도 많이 보고 도립공원에 일이 있으면 내일처럼 자원봉사도 한다.
어린 딸이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할아버지라 해도 될 나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지 남자는 잘 키울 자신이 있다. 걱정보다는 남자는 딸이 부족하지 않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산에 들어갈 때도 의욕이 생기고 힘든 줄 모른다. 이렇게 산중에서 식구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행복하고 옛날에 아팠던 기억은 이제 하지 않는다. 올겨울도 눈이 많이 오면 한동안 집안에서 지내야 할 것을 대비해서 땔감을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고, 다른 겨울 준비도 벌써 다 했다.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맥주를 먹으면서 지내면 된다.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이 여럿이 있다. 산에 처음 들어와 만나 사람 중에서 아직도 오는 사람은 남자는 처음과 현재가 같다고 한다. 외모도 별로 변한 것이 없고 마음이 특히 변함없다고 한다.
오늘도 도립공원의 깊은 계곡 중간에 저녁연기가 피어오른다. 온 산에 고요하게 밤이 찾아오는데 아직도 며칠 전에 내린 첫눈이 녹지 않는 곳은 잎이 떨어진 나무와 잘 어울리는 겨울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선녀봉은 하늘과 맞닿아서 아직은 훤하지만 도립공원 계곡은 벌써 어둠이 내린다.
남자는 올겨울도 식구들과 따뜻하게 보내면서, 봄에 진달래가 만발할 때까지 겨울밤을 아늑한 아랫목에서 어린 딸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면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