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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Aug 29. 2024

우리는 오늘 이별하는 사람이다


읍내에 가서 예전에 알던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너무 반가운 마음이 가슴에 생기는 것을 느낀다. 많이 친하게 지냈지만 일하는 곳이 다르니까 자주 보지 못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니까 서로 멀어지고 자주 연락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까, 순간 예전에 친했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에 보이는 모습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직 얼굴은 그대로라는 인사를 했다. 아마 오랜만에 본 지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워 가까운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겨 같이 만나던 시절, 기억나는 것은 모두 생각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그때 같이 지냈던 사람들까지 대화 내용에 들어간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에 본 건강한 선배가 몇 달 전에 죽었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 봤을 때 아주 건강해 보이고, 걸음걸이도 반듯했고 혈색도 좋았다. 서로 반가운 안부 인사하면서 헤어졌지만, 아픈 곳 없고 잘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선배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나이 들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은 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점잖은 선배는 가기 전에 이별의 인사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세상 살아온 인연들을 마치면서 인사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떠나는 날을 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그런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별 인사도 못 나누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그저 그런 소리를 들으면 한동안 멍할 뿐이다. 

읍내 커피집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에는 선배의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너무 우리는 쉽게 끝나고 가볍게 가는 것 같다.


고향 떠나서 객지에서 오래 같이 지내던 중학교 때 친구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서로 생각이 나면 전화를 지금까지 해오던 사이였지만, 요사이 연락이 뜸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평소에 전화를 못 받으면 나중에 꼭 연락이 오는 친구였다. 연락이 오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전화 대신 문자가 왔다. 

내 이름을 넣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환자실로 옮겨왔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서 문자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문자에 오탈자가 있을 정도로 많이 아픈 것 같다. 직업이 신문사의 교열부 기자라서 맞춤법이 틀리는 일은 거의 없는 친구였다. 

그래도 평소에 아픈 곳도 없고 건강관리도 잘한 친구니까 걱정이 덜 했다. 또 일반실로 옮겼으니 곧 회복되리라 믿었다. 나도 쾌유를 비는 문자를 보냈다.

하루 뒤 오후에 가까이 사는 친구 전화가 왔다. 어제 병원에서 문자 온 친구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고 정신이 혼미하다. 그렇게 건강하고 관리를 잘하던 친구가 간 것이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방금 죽었다는 연락 온 친구 전화가 온 것이다. 전화를 받으면서 조금 전에 들은 말이 거짓일 것 같기도 하고, 죽었다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전화기 너머로 들여온 소리는 친구가 아니라 흐느끼는 친구의 부인이다. 친구 전화기에 남겨진 마지막 문자여서 이 슬픈 이야기를 전해 준 것이었다. 친구는 거짓말처럼 간 것이다. 마지막 전화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마지막 문자만 주고받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멀리 떠나는 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가는 것이 정해진 길이고 자연의 법이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것도 회자정리로 정리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원한 이별이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진다는 말에 위안 삼으려면, 다시 만날 날은 또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한다. 이제 체념적으로 헤어지는 것은 슬픈 것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라고 여기면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늘 마지막 만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오늘 이별하는 사람들처럼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미지로 여행 떠나는 날 아침, 옆집에 사는 친구 외삼촌이 이웃이라서 어디 간다고 이야기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출발 인사를 전했다.

이때 친구 외삼촌은 객지에 있는 조카가 지금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한 병으로 투석까지 하면서 힘들게 사는 친구는 일전에 어린 시절에 살던 그리운 고향을 한번 다녀갔으면 했던 친구이다. 우리는 언젠가 고향에서 만나고 싶은 친구였다.

친구 외삼촌의 나쁜 말을 들어도 그 친구가 고향에 다녀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여행길에 오른다. 서울에서 큰 바다를 건너 여행하기 위해 항공기에 오르려는 줄을 서고 있었다. 

그때 시골에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또다시 머리가 멍한 일이 생긴 것이다. 고향에 와서 어린 시절 같이 놀던 때를 회상하면서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옛이야기라도 하고 싶어 했는데 고향에 오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도가 거리에서 놀던 때가 떠오면서 눈물이 그리움으로 변했다. 고향 친구가 먼 길 떠났는데, 또 이별 인사도 못한 것이다. 

아마 친구는 하늘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가기 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고향 도가 거리에 왔다가 갔을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을 이제부터는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만나면 다투는 일도 없고 늘 아쉬운 마음일 것이다. 

지금 보는 사람이 마지막 보는 사람이라 생각하니까 뭔가 잘 해주고 싶은 생각도 날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고 만남이다. 그런 넓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니까,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도 조금 덜어지는 느낌이다. 

지금 먼 나라로 떠나면서 우리는 오늘 이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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