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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Sep 03. 2024

파라솔 아래 고추 따는 노인들

노인정은 봄날에 새싹이 올라오고 추웠던 날이 풀리면 또 다른 분위기가 된다. 지난 여름날 힘들었던 기억이나 힘이 들어 다음 해는 농사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노인들도 마음이 풀리고 새로운 마음이 된다. 노인 들은 수없이 보냈지만, 다시 온 계절은 새로 시작하는 희망이 생긴다. 

봄이 희망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농사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풍성한 수확을 희망하는 기대하는 것도 관련 있을 것이다, 다시 하는 농사는 잘 될 것 같은 확신과 희망으로 지난해의 힘든 것은 생각하지 않는 계절이다. 농사일 시작은 처음은 가벼운 일로 시작하기에 겨우내 쉬었던 몸은 무리 없이 일하는 것으로 몸이 풀려간다. 


구정이 지나면 노인정에는 누가 종묘사에 갔다 왔는데 고추씨 값이 얼마하고 어느 종자가 좋다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여기서 누가 얼마나 샀는지가 궁금해하면서 노인들은 올해 본인이 지을 농사 양을 정한다. 노인들은 이웃에 살면서 같이 늙었지만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봄날에는 경쟁한다. 말로는 농사짓기 힘들어 먹을 것만 짓는다고 하지만 노인끼리는 지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종자부터 말 없는 신경전이다.


봄날부터 탈탈거리며 노인이 몰고 뒤에는 안노인이 타고 가는 경운기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 고추가 한창 익은 여름이다. 예전에 흔하게 보던 경운기도 이제는 세 노부부만 몰고 있다.

노부부들은 고추 딸 때 늦어지면 익어 물러져 떨어지는 꼴을 보지 못하는 늙은 농부들이다. 아깝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꿈쩍거리면 된다는 마음에 밭으로 나간다. 

훨쩍 자란 고추밭에 고추 따는 의자에 앉으면 햇볕을 가리는 파라솔만 움직인다. 노인들의 고추밭 파라솔은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쉬지 않고 오래 밭에 머문다. 그래서 딴 고추가 한 포대가 차면 그것을 밭 가에 있는 경운기로 옮기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 무겁기도 하고 허리가 아파서 몇 번 쉬었다 간다. 허리가 완전히 굽은 안 노인은 고추 따기는 하지만, 옮기는 것은 노인이 한다. 

노인들이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추 따는 것은 돈 필요도 있지만, 또래 옆집보다는 더 많이 따고 일도 철 늦지 않기 위함도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 내리쬐는 따가운 해를 파라솔로 가리지만, 파라솔을 통과한 열기는 고추 따는 얼굴에 땀이 흘러내린다. 달궈진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도 얼굴을 확 근거리게 하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이럴 때 한 줄기 바람이라도 불어 주면 좋은데 먼 산의 소나무는 전혀 미동도 없고, 고추 딸 밭은 너무 길어서 가물거리면 아무 생각도 없고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따서 말려도 들어간 농비를 제외하고 돈으로 환산하면 힘든 일에 비하면 얼마 안 된다는 생각이 나면 기운이 빠진다. 젊은이처럼 많이 해 큰돈을 쥐기도 했지만, 노인들은 힘든 고추 농사이지만 돈도 얼마간 모아 놓았다. 

그래도 노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옆집 젊은이는 농기계를 산 돈이나 여러 가지로 농협에 빛이 상당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농사를 잘한다고 여긴다. 


파라솔 밑에 열이 뜨거워 모자를 쓰고 고추 따는 노인과 조금 떨어져 모자에 수건까지 얼굴에 감고 고추 따는 안 노인은 힘들어도 뜨거운 한낮을 고추밭에서 보낸다. 옆 밭에서도 땀이 흐르면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허리 숙여 고추 따는 노인과 그 뒤를 허리가 펴지지 않아서 늘 숙여서 따라가는 안 노인도 연신 오늘 날씨 너무 덮다고 푸념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아픈 허리를 생각하면 내년에는 자식들 주고 먹을 만큼만 한다고 몇 번이나 말은 하지만, 내년 봄이면 다시 고추를 심을 것이다. 고추 농사 그만한다고 몇 년을 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봄이 되면 그런 말이나 생각도 잊어버린다. 그런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나도 한여름의 고생스럽던 고추 따는 일도 봄에는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못 느낀다.

젊은 농사꾼들은 수 만평을 하면서 외국 일꾼을 써서 힘든 고추를 따게 하고 젊은이들은 차로 고추 따는 밭에 일꾼을 옮기고, 딴 고추를 실어다가 말리니까 별로 힘들지 않게 고추 농사를 한다. 노인들은 아직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따니까 일하는 인건비는 확실히 나오는 것이 고추 농사이다. 


세 노부부는 여름 한낮의 햇볕은 너무 뜨거워 서늘한 아침에 앞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익숙한 길에 라이트를 켠 경운기를 몰고 고추밭으로 간다. 탈탈거리는 경운기 소리는 조용한 새벽에 비슷하게 연이어 세 번 들리고 다시 조용해진다. 

이슬이 고춧잎에서 떨어져도 뜨거운 햇볕보다는 고추 따기는 쉽지만 해가 뜰 무렵이면 옷이 이슬에 흠뻑 젖는다. 해가 떠서 옷이 마르고 이제 더워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얼굴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노부부들은 고추 따는 것을 멈추지 않고 하나라도 더 따려고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허리가 아파도 고추를 딴다. 그렇게 따다가 오전 볕이지만 뜨거워지는 무렵 경운기에 딴 고추를 싣고 노인이 몰고 안노인이 고추 포대 위에 앉아 집으로 돌아온다. 이때도 집으로 돌아오는 경운기 소리가 세 번 비슷하게 들린다.

돌아와 시원한 집에서 아픈 허리를 한참 누워서 달래고는 안노인이 준비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쉰다. 밖은 햇볕이 뜨거워 다니기 힘들 정도이다. 동네 스피커에서 너무 더워서 나오면 일사병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방송이 들린다. 그 소리도 노인들은 여름이면 늘 들었고 오후의 날씨가 절정에서 한풀 꺾일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한풀 꺾인 더위를 확인하고는 다시 경운기에 오른다. 경운기를 포대로 덮어 놓았지만, 햇볕을 받아서 손을 얻으면 뜨거울 정도이다. 


다시 밭에 도착해서 오전에 따던 곳에서 지겨운 고추 따기를 시작한다. 손에 잡히는 고추도 뜨근뜨근하다. 경운기 따고 올 때 멀리 황 노인 부부 경운기가 밭에 서 있는 것을 봤고, 옆집 밭 허리 굽은 안 노인 부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멀지 않아서 경운기 소리가 탈탈거릴 것이다. 

오후에 뜨거운 햇볕에서 하기 싫고 힘들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래도 옆집 노인들이 하는데 해야 한다는 경쟁하는 마음도 있어서 힘들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고추를 딴다. 여름 오후 고추 딸 때 해가 넘어가지 전까지 무덥다. 해가 산 아래로 넘어가면 그래도 더운 것이 한 풀 꺾이지만, 어두워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은 고추 따기에 좋은 시간이라 하나라도 더 따려고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마치 세 노부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해가 넘어가서 어두워지기 시작해도 가장 늦게 집으로 가려 한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들어가기는 싫은 것이다. 그러다가 어두워져 더 따기 힘들 즘에 밭에서 나오면 옆집 김 노인집도 경운기 시동을 걸고 있다. 이렇게 나란히 경운기 소리가 나면 멀리 황 노인 집도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마을에 들어가는 때는 나란히 들어가는 날이 종종 있다. 

노인들은 저녁 먹고 텔레비전 보면서 졸다 잠이 든다. 그러면 새벽이면 노인들은 잠이 없어서 일찍 깬다. 또 아침 일찍 고추 따러 갈 채비를 한다. 


고추 따는 철에 날이 밝아오면 노인들이 타고 탈탈거리며 고추밭으로 가는 경운기도 큰 마을이지만, 이제는 세 집밖에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넷 집이었는데, 올해는 한 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가고 안노인도 병원에 있다가 간혹 집으로 온다. 다른 노부부도 두 집이 더 살지만 힘든 고추 농사는 짓지 않는다. 고추 농사가 힘든 건 더운 여름날에 때맞춰 일일이 손으로 고추를 수확하는 것 때문이다. 

그래도 세 노부부들이 고추 농사를 하는 것은 돈 만질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봄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고추 농사는 적당히 하려던 마음이 이왕 하는 고추 농사를 이웃 노인들과 비슷하게 하는 것이다. 매년 봄이면 마음 갈등도 있지만, 올해는 대박을 기대하면서 다시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래도 더운 여름에 힘들지만 바쁘게 일하는 것이 잡념도 나지 않고 시간이 잘 간다. 일하지 않고 보내는 한 노인이 매일 할 일 없이 그늘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고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맞이하는 가을은 풍성하고 자식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눈 내리는 겨울에는 노인들은 경로당에 안노인은 할머니 경로당에서 웃으면서 보낸다. 더운 여름에 일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사는 느낌이고, 일하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빠뜨리고 사는 느낌이다. 평생을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된 노인들이다. 


고추 따는 것도 추석이 되면 끝이 보인다. 말린 고추를 고향 오는 자식들에게 싸주고 다른 곡식들도 주는 재미가 노인들의 즐거움이다. 추석에 자식들이 오면 마지막 고추를 같이 따는 것도 노인들은 머릿속에는 있다. 여름내 고생했던 고추밭에 자식들이 따는 몫으로 어느 정도 남겨두기도 한다. 

안노인들은 며느리들을 고추밭에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앞장서 따기도 한다. 간혹 자식들과 고추 따는 날은 더 쉬지 않고 따는 것이다. 그러면 자식들 입에서 고추 농사는 너무 힘드니까 다음 해는 농사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고추는 집에 먹을 것만 하라는 소리가 나온다. 

노인들이 또 다른 재미는 농사지은 고추를 아는 사람을 통해 일일이 팔기에 값을 더 많이 받는다. 노인들끼리 올해는 사돈에게 몇 근을 부쳤는데 돈이 얼마가 왔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제는 노인들의 고추를 고춧가루로 빻아서 주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래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경로당에 모여서 화투 치는 재미가 기다린다. 그렇게 세월가는 줄 모르고 경로당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면 다시 고추 묘판 하는 시절이 온다. 이때부터 노인들은 또 서로 더 잘 키워보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힘든 고추 따는 한낮의 땡볕은 겨울날에 잊어버리고 다시 노인들이 고추 농사 희망이 살아난다.

그렇게 고추 농사를 하는 노부부는 아직 내년에도 할 것이지만 누가 병원에 가면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세 노부부가 서로 경쟁하며 짓는 고추 농사가 노인들에게는 즐거운 날이다. 이렇게 계절 따라 할 일이 있고 부부가 같이 있어 외롭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노인들의 시간은 돌아서면 봄이 와 있다. 

고추 농사하는 노부부들의 시간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래도 같이 살아가는 노부부는 힘들게 일하는 것이 즐겁게 사는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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