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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05. 2024

서해랑 길 63일차(마지막 코스)

외포리 항에서 단단히 채비하고 걷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더 추웠지만, 체감적으로는 어제 아침에 느낀 것보다 덜 춥다.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아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다리가 힘드니까 몸이 추운 것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와 처음 만나는 마을이 용두레 마을이다. 

용두레 마을에서 바다와 만나 바다 둑길을 걸었다. 

들에는 가을걷이 끝나고 흰 공룡 알이 놓여 있다. 

멀리 계룡 돈대가 보인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지역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한 초소이다. 계룡 돈 되는 높은 곳에 설치되어 주변 경관이 내려 보였다. 

계룡 돈대를 지날 때 해가 떠오른다. 

긴 길을 바다와 들판을 보면서 걷다가 보면, 망월 돈대가 나온다. 바다보다는 높지만 그렇게 높지 않은 망월 돈대는 민물이 나오는 곳으로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망월 돈대를 지나서 나오는 길은 갈대가 멋진 강화 노들길이다. 

갈대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아니라, 갈대가 끝없이 길 양쪽에 서 있는 곳이다. 이런 갈대 길을 걸으면 누구나 멋진 길이라 할 것이다. 

갈대 길이 끝나는 부근에 창후항이 보인다. 이곳에서 102코스가 끝나고 마지막 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창후항을 지나면, 곧 만나는 곳이 무태 돈대가 나온다. 

무태 돈대를 지나 멀리 보이는 바다와 다리를 배경으로 백마가 끄는 사랑의 역마차가 서 있다. 

이곳부터는 철조망이 단단히 쳐진 해변이다. 

해변에서 오른쪽으로 직각으로 돌아서 농로 길을 걸었다. 농로가 끝나면 송산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도로와 농로 길을 한참 걷다가 작은 들판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철새를 보면 그냥 지나고 싶어도 자동으로 눈이 간다. 철새들이 가까이 가니까 놀라 날아오른다. 한 바퀴 선회하고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지나는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 같다. 


평화 전망대 표지판이 보이는 것으로 종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서해랑 길을 걷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분들도 오늘 마지막 코스를 걷는다고 하면서 부산에서 관광차로 왔다고 한다. 시작한 지 2년 만에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도로 길이 끝나고 산으로 올라가는 마을로 들어서 등산로 올랐다. 성덕산 등산로를 걷는 길이 높지는 않지만, 오늘 걷기 후반이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성덕산 정상을 지나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별악봉으로 향했다. 

별악봉 가는 길은 쉽지만 긴 산길이었다. 별악봉 끝 정자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이 북한 땅이라고 한다. 

바다 건너 지척에 있다.

별악봉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보면 강화 평화 전망대 간판이 보인다. 

종점에 온 것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서해랑 길 종점 103코스와 DMZ 평화의 길 시작점 간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 플래카드를 들고 찍으라고 빌려준다. 시작한 날은 다르지만 도착한 날은 같았다 

서해랑 길은 길고 멀어서 여러 번 나누어 걸었다. 이제 그 끝에 63일 걸어서 서 있다. 더운 여름에 시작해서 추운 겨울에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가 걸어온 신발을 이곳에 남겨두었다. 이번에는 기대나 바람을 버리고 간다는 마음을 많이 했었다. 여기에 아쉬움도 남겨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긴 여정이 끝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 본 길(해파랑길, 산티아고 길, 히말리아 트레킹, 제주 올레길, 남파랑 길, 외씨버선 길)에 서해랑 길이 더해졌다. 5500Km가 넘는 길을 걸었다.

길은 있어서 걸었고, 있는 그 길을 감사하면서 걸었다. 서해랑 길 끝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올해 하던 일을 마치고 같이 길을 걷자고 했던, 내 친구 형식이가 먼 길을 먼저 혼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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