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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에서 생긴 일

by 안종익

아스완에서 기차를 타고 룩소르 이동하면서 마지막까지 호객꾼들의 배웅을 받았다. 아랍어로 쓴 간판들은 기차를 어느 곳에서 타는지도 알 수 없다. 호객꾼은 기차 타는 곳을 찾는 동양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다가와 어디로 가느냐를 묻는 것 같고, 기차표를 달라는 것이다. 아마도 앞장서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돈을 요구할 것이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기차표도 주지 않고, 다수의 서양인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 지정된 호차와 좌석을 찾았다. 그때까지 호객꾼은 따라와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다. 그렇게 기차 타는 곳까지 환대를 받은 것이다.


룩소르 기차역에서 구글 지도로 쉽게 숙소를 찾았다. 주인의 안내로 묵을 방으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다. 계단 오르기 힘이 들었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안내한 주인에게 와이파이 비번을 물었다. 친절하게도 내 휴대폰으로 직접 비번을 입력해 준다. 그런데 노트북에도 와이파이를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배낭에 있는 노트북을 찾았다. 노트북이 배낭 깊숙이 있어 위의 물건을 헤치고 꺼냈다. 배낭을 단단하게 넣어서 한참 걸렸다. 노트북까지 와이파이와 연결했고, 이제 짐 정리하고 쉬면 된다.


이번 여행지 숙소에 도착한 안도감으로 짐을 정리하는데, 배낭 속의 물건이 없는 것 같다.

충전기 담은 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배낭을 침대 위에서 모두 쏟아부어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금방 올라와 짐을 정리하는 중이니까 분명한 것은, 그 주머니가 여기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주머니를 전 숙소에서 놓고 왔다는 기억도, 넣었다는 기억도 없다. 그러나 없는 것을 보면 그곳에 놓고 온 것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은, 내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탓으로 하니까 잊어버린 것이다.


아쉽고 순간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그 물건들이 없어지고 나니까 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 같다.

전 숙소에 연락을 취해 가져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 물건이 그 자리에 있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자기 몸을 떠난 물건은 자기 것이 아닌 분위기이다. 어떻게 할 방법을 찾으려 여러 생각을 했다.


아직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이니까 그 물건들을 여기서 구해야 한다. 잊고 온 주머니에 든 것은 휴대폰 충전기,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 에뎁터였다. 휴대폰 충전기는 구할 수 있을 것 같고, 노트북이 구형이고 이곳에는 잘 쓰지 않는 기종이라 그 충전기를 구하기 힘들 것 같다.

노트북 충전기가 없으면, 여행하면서 본 느낌을 현재의 감정으로 그대로 남기지 못하는 애로 사항이 생긴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


그리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충전기 가게를 물었다. 친절하게 직접 안내하겠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충전기를 구하고 그곳에서 성능까지 확인해서 돌아왔다. 그래도 아쉽지만, 한 가지는 해결하고 다시 4층까지 올라갔다. 다시 올라와 생각하니 혹시 구형 노트북이지만 충전기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다시 노트북을 들고 내려갔다. 친절한 주인은 노트북을 가지고 다시 나갔다. 멀리까지 갔는지 한 시간 뒤에 돌아왔다. 역시 없다고 하면서,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이슬람 가게에 갔다가 왔는데, 내일 다시 기독교 가게에 가 보겠다는 것이다.


저녁 내내 잃어버린 물건 생각이 난다. 있을 때 불편을 모르던 것들이 없어지니까 그 빈자리가 보이고, 그것들의 역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하면서 잃어버리면 계속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불편하지만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 여행에서 지니고 다녀야 하는 물건들은 필요한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무엇이라도 없어지면 불편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여행이라는 전체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한 부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그때그때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린 것은, 처음 시작한 국내 여행 홍도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긴 시간 무거운 노트북을 지고 다녔다.

산티아고 순례길, 히말라야 트레킹, 유럽의 3대 미봉, 남미의 파타고니아 그리고 4000Km가 넘는 코리아 둘레길을 여행하면서 배낭 속에는 노트북이 있었다. 내 배낭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노트북과 그 충전기였다. 이제 이번 여행에서 노트북 없이 블로그에 올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작은 메모장에 기록했다가 여행이 끝나면 쓰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휴대폰으로 올리는 방법이 떠오른다.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시도하지 않았지만, 지금 해보려는 마음이다. 실제 가능하다는 것은 들었지만, 전자 기계 기능에 대한 막역한 공포감으로 배우려고 하지 않고 무거운 노트북을 넣고 다닌 것이다.


노트북 충전기는 못 구할 것이 확실한 것 같고, 휴대폰을 조용한 밤에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세히 보니까 글을 쓰는 법은 쉽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진을 첨부하는 것도 몇 번 해보니까 알 것 같았다. 아직 쓰는 방법이 익숙지 않았지만, 휴대폰으로 쓰는 것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휴대폰은 다니면서도 작성 가능하니까 적시성이 있고, 매우 편한 면이 있었다. 급하니까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또 다른 방법으로 여행을 이어갈 계획을 다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어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배낭이나 복대 지갑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을 다 했다.

원래 여행의 경험으로는 어떤 물건을 사용하면, 반드시 제자리로 원위치해야 잊어버리지 않는다. 안경을 썼으면 벗어서 다시 쓸 생각으로 옆에 두지 말고, 원래 자리인 복대 지갑에 넣어야 한다. 제자리에 놓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잊어버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침구 정리와 배낭 정리를 마치고 일어나 신을 신으려고 침대 밑으로 눈이 갔다.

그곳에 흰 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눈에 익은 것이다. 그 속에는 노트북 충전기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간밤에 너무 생각해서 헛것이 보인 것을 생각할 정도였다. 잊고 왔다고 그토록 아쉬워했던 물건이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제 배낭에서 노트북을 내면서 그 위에 있던 것이 떨어져 침대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떨어진 것을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 밑도 살피지 않았다.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간 것이다. 더 익숙한 것에 마음이 가서, 아직 새로고 편리하다는 것에 자리를 내어줄 생각을 하기 싫은 것이다. 멋쩍게 마무리된 작은 일이지만, 여행을 돌아보는 계기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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