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떠난 여행은 유럽의 3대 미봉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몽블랑 마을 프랑스 사모니로 가는 길도 절경이다. 몽블랑을 케이블카로 올라서 정상을 보고서 나오니,
전망대 밖으로 나가 눈 위를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망대에서 몽블랑 정상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장비만 있었으면 나도 올라가고 싶은데, 올라가지 못한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마타호른을 가까에서 보는 즐거움과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서 열차 타고 올라가면서
알프스의 그림 같은 산속의 집들도 봤다.
유럽의 3대 미봉을 마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 이곳은 해변이나 잔디밭에서 몸을 다 드러내고 일광욕하는 것이 너무 흔하다.
뮌헨으로 가는 열차를 제네바 기차역에서 정확히 탔다.
한참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난 끝까지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직감적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안내 방송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차장을 찾아서 물었다.
사고로 길 막혔다는 것이다. 그 뒤로 세 번이나 묻고 물어 기차를 바뀌어 탔다. 뮌헨에 6시간이나 늦게 도착해서 숙소를 고생스럽게 찾은 기억이 난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취했고,
또 브르노에서는 중앙역에 내리니까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되어 있었다.
그때는 휴대폰으로 이동하고, 숙소를 정했는데,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고 중앙역에서 오래 머물렀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야 휴대폰을 충전하는데, 막막함을 느꼈다. 내 여행의 절반은 휴대폰에 의존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 역 대합실에서 밖으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조금 멀리 나가 보았다. 조금 더 돌아다니니까 예약한 숙소가 보였다. 들어가 휴대폰을 충전하고 그 동안의 불안이 가셨다.
작은 도시 브르노 중앙 광장에서 편한 의자에 앉아 저녁놀을 볼 때 행복감을 느꼈다.
어디를 가도 아름답다는 말이 나오는 도시,
빈에서 도나우강에서 산책하다가 다리 밑에 그리피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 구경하려고 가까이 가니, 놀라서 사진 찍지 말라고 얼굴을 가리던 일도 있었다. 그때 난 관광객이라 하고 악수하고 그림을 구경 했었다.
슬로 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특이한 조형물이 많은 곳이다.
그중에서 “맨홀 속의 남자”청동 상이 기억에 남는다.
부다페스트를 중심을 흐르는 다뉴브 강가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느꼈고, 국회의사당의 야경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다음 여행지는 밤새 버스로 바르샤바에 갔었다. 그곳에 아침에 내려서 해장국 생각이 간절했던 기억도 난다. 그 도시는 조형물이나 조각에서 저항 의식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침략을 자주 받아서 그런 것 같았다.
바르샤바에서 한국 젊은이를 만나서 반가웠는데, 그 젊은이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같이 가자고 했다. 수도 키예프는 전장과 멀어서 갈 수 있다고 하면서 동행하자고 권했다.
그때 나는 그 젊은이에게 여기 와서 ‘나라에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된다"라고 타일러 이집트로 보내고 나는 발트 3국으로 떠났다.
리트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머리가 너무 길어서 이발소를 찾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어떻게 하라고 하지는 못하고 졸고 있었다. 그때 거울을 보고 난처했었다. 머리를 이북에 김정은이 머리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헛 웃음을 웃고 나와서,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발트 3국에서는 “발트의 길” 602Km의 인간 띠 잇기 표시를 찾았다. 그 인간 띠 잇기는 러시아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 띠 잇기로는 가장 긴 것이다. 그 뒤로 독립을 이룩하였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트 3국 수도에 발자국 동판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다 찾아보았다.
헬싱키 건너가는 엄청난 큰 배 타고 건너가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를 구경하고 코펜하겐으로 넘어갔다.
안데르센 동화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인어공주를 보러 갔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려가고 있었다. 엄청난 것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물가에 작은 인어 공주 동상을 보고 기대와 실망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렇게 구경하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우리나라 막걸리를 보고서 반가워 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날, 가지고 있는 라면을 끓여서 한잔하려고 시원하게 보관했었다. 그 전날도 냉장고를 열어보니 잘 있었다.
그런데 라면을 끓여 놓고 시원한 막걸리를 찾아서 냉장고를 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한국인 여행자가 먹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마도 한글로 쓰인 것이 신기해서 가져간 것이다. 그때 너무나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함부르크에서 지독히 감기가 들어, 가지고 간 감기약이 듣지를 않았다. 들은 풍문에 현지 약이 잘 듣는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곳 감기약을 사 먹었다. 그 말이 맞는지 감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정도로 효과를 봤다.
안나의 일기의 집을 찾았던 네덜란드 암스트레담에서 매춘이 합법이고 해서 밤에 구경도 갔었다.
브르셀에서 오줌싸개 소년의 작은 조형물에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오줌싸개 소녀를 찾았고,
또 오줌싸개 개가 있다고 해서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유럽의 3대 미봉을 찾아 나선 여행이 북유럽까지 다녀온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