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힘들다는 아프리카로 갔다.
카이로에서 남아공까지 내려갈 생각이었다. 카이로의 거리는 매연이 심하다는 첫 느낌이다. 그리고 호객 행위도 심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거대한 유적을 보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곳은 세계적인 유적지답게 남녀노소와 여러 인종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젊은 여행객들은 여행을 오기 전에 사전 공부를 하고 오는 것 같다. 사진 촬영을, 피라미드를 한 손으로 들거나, 스핑크스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또 여행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는 사람도 젊은이들이다.
아부심벨의 거대한 파라오 석상과 룩소르 신전의 석조물들은 모두 감탄을 나오게 하는 유적들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 사는 후손들은 신사가 아니었다.
왕가의 계곡에서 돌아오려고 택시 탔다. 룩소르 신전까지 가자고 했는데, 설명도 없이 룩소르 신전이 보이는 건너편 강가에 내려 주고 갔었다.
카이로의 호객 행위와 구걸에서 벗어나 아디스아바바로 넘어갔다. 한나절 사이에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경험했다.
카이로 사람은 언제나 웃으면서 호객행위를 했었다. 그러나 아디스아바바는 인상을 쓴 얼굴을 하고서, 전혀 호객행위는 없었다. 물론 두 도시 모두 구걸하는 사람은 불쌍한 얼굴이었다.
아디스아바바는 도시 전체를 공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공사장 가림막 앞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조금은 도와주었지만, 너무 불쌍했다. 약육강식의 현장을 본 느낌이었다.
여행은 빈부의 차이를 늘 보고 다닌다. 돈 많은 사람의 여행과 가난한 자의 여행의 차이는 여러 가지이다. 돈이 있으면 쉬고 편하게, 돈이 적으면 어렵고 힘든 여행인 것이다. 그래도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곳을 간다는 것은 같을 것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아직 문명의 혜택을 덜 본 곳으로 순수하다고 들었다. 그곳은 아직 손으로 농사하는 곳이었다. 순수라는 생각보다는 인프라가 너무 없어서 불편한 곳이었다.
여기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오밥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시골 버스 타고, 비 포장도로를 가는 느낌이다.
바오밥 나무를 해 뜰 때와 해질 때 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이렇게 이상하게 생겨서 아름다운 바오밥 나무 본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이로비와
우간다로 야간 버스 타고 넘어가다가 국경에서 트집을 잡아 돈을 요구하였다. 영어가 안되지만, 끝까지 항의했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바가지요금에도 항의했었다. 두 곳 모두 위험한 곳이지만 기질이 그렇게 한 것이다.
우간다의 수도에서 지나는 무장한 차량에서 검은 전사들이 노려볼 때는 정신이 아찔했다.
르완다를 거쳐서 탄자니아로 들어가서 여행을 즐겼다.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와 응고롱고로 사파리 투어에서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많은 동물의 야생을 본 것이다.
사파리 투어에서 야영하는 텐트에서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다. 텐트를 조금 열고 보니 얼룩말들이 테트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도 아프리카 최고봉 킬로만자로를 가이드와 같이 올랐다. 그곳의 추억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잠비아, 짐바브웨를 오가면서 빅토리아 폭포 전부를 보고,
잠베지강 다리에서 번지 점프를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온종일 양국을 넘나들면서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무거워 걷기 힘들었다. 그래도 번지 점프하려고 갔는데, 점프 후에 다시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뛰지 않았다.
나미비아 사막에서
모래 언덕 위에서 바라본 일출은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로 기억했다.
이어진 여행지 케이프타운에서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서 반나절 그곳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따사로운 아프리카 남단의 햇살을 마음껏 즐겼다.
그래도 케이프타운에서도 밤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곳은 낯에도 지나가면, 시비거는 것을 경험했었다.
아프리카 여행은 너무 힘든 곳이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위대한 유적과 대자연의 동물들이 이곳으로 오게 한 것 같다. 다시 갈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곳에 볼거리는 너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