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하던 일을 마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니까 방향을 잃은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고 날마다 생각이 많았다. 그래도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아쉬움과 불안함을 달래기도 했다.
혼자의 생각으로는 지금까지는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온 삶이 많았지만, 이제부터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한다. 새로운 생활은 늘 아침에 일어나면 바쁘게 움직이던 것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마음에는 그런 여유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어디 오라는 곳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니까 부담은 없지만 그 없어진 부담이 여유와 편안함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 여유 속에서 편안함을 즐겨야 하지만 지금까지 습관으로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은 듯한 불안감도 일상의 부분이 되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고 현재에 잘 적응하지도 못한다.
그동안 누리지 못한 여유를 갖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갔다. 처음에는 시골 도서관이라 한적하고 여러 책들을 골라보는 재미도 있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낀다. 이렇게 책 읽은 습관을 붙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새로운 삶의 방향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며칠 지나니까 재미도 없고 흥미를 잃어 갔다. 도서관에서 여유와 고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글을 쓰면서 보내려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아졌다. 가서도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으니까 도서관과 멀어져 갔다. 막연하게 나머지 삶은 나를 위해서 살겠다는 것만 정해진 것이지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도서관에 나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무슨 길이 보일 것 같기도 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서관에 가는 시간이 드물어지면서 술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도 있고 새롭게 만난 사람도 마음이 어느 정도 통하니까 자주 만나게 되었다. 만나면 서로 같이하는 공통점이 특별히 없으니까 술을 가까이하게 되고 술이 나름 즐겁게 하고 잠시 남아 시름을 잊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몸에 무리만 가지 않으면 시간 보내기는 좋은 일이다. 그렇게 한 평생 술만 먹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을 먹기 위해서 만나고 자주 만나니까 좋은 사이가 되기도 했다. 어디 좋은 안주가 있으면 만나고, 특별한 일이나 게기가 있어도 술이 먹으면 잠시 좋은 감정에 취해서 즐거운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니까 술 먹는 습관이 될 것 같았고, 그런데 만나는 것이 거의 비슷한 장소와 같은 사람으로 한정됐다. 술과 연관이 있어야 만나고 술을 못 먹는 사람과는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것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었다.
술보다는 글을 쓰는 문인들과 함께 하면 내가 생각한 것에 가까운 것 같아서 문학동우회를 찾았다. 주위에 술만 먹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의 취미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문학동우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으로는 문학에 심취해서 고뇌하는 분들이나 글쓰기 연습에 매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한동안 교류도 하고 문학 캠프도 참석을 했지만, 내가 생각하던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대다수가 시를 쓰는 사람들이고 선 듯 다가가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사람을 만나서 깊은 대화도 하고 삶의 애환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문학동우회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고, 나 또한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맴돌다가 멀어지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부담 없는 운동이 파크 골프라는 이야기를 듣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또 드는 것이다. 일단은 하는 곳으로 찾아가니까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는 첫날 단번에 채를 잡았다. 골프와 비슷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운동인 것 같았다. 힘들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고 한번 해 볼 만한 운동이었다. 며칠을 열심히 가서 운동을 했지만 이 파크 골프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돈을 걸고 운동을 해도 긴장감이 없고 승부욕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운동에 몰입하거나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하는데 지루한 생각과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흥미까지 없어지고 여기도 마음이 멀어졌다.
어디에도 정을 주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못 정해진 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시간만 지나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고 의미는 더더욱 찾지 못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나무에 잎이 모두 떨어진 나목이었는데, 어느새 잎이 돋아나더니, 무성하게 자라고 벌써 낙엽이 되어서 다 떨어지고 다시 앙상한 가지만 남은 올 때 보았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그 시간 동안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보내기는 했다. 나만을 위한 멋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리라고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들이다. 아직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정해지지 않고 헤매는 중이다. 어느 때는 잘 살 필요도 없이 그냥 살면 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서 있는 것을 느낀 것이 여러 번이다. 실제로 우리는 별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비슷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보낸 한 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즐거워야 하는 삶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이렇게 보낸 것이 마음으로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고뇌한 일 년은 무엇인가를 얻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모두 고민만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간들도 있었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서 그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 추억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이렇게 가는 일 년을 보내면서 후회만 하지 말고 또 다른 새로운 해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