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서 오후 늦게 동네 다니는 노인들이 잘 나오지 않는데 여럿 노인이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윗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이 뚱뚱해 보일 정도로 옷을 껴입고 경로당 쪽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이 노인은 먼 곳에서 귀농한 노인으로 경로당에 자주 나오지 않고 화투로 하지 않은데 경로당으로 가는 것이다. 실제 화투 하러 가는 시간도 훨씬 지난 시간이다. 아마도 무슨 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랫동네에서 다른 노인 두 분이 다시 경로당 쪽으로 가는 것이다. 경로당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알고 보니까 노인들이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던 것이다. 노인들은 간혹 저녁이나 점심을 동네 노인들이 모두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인회 앞으로 지원금이 얼마 정도 나오는 것이다. 경로당에 냉난방비나 전기세와 수도세도 나오지만 그 밖의 돈도 지원되고, 간혹 객지에 나가서 성공한 분들의 위문금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농사철을 제외하고는 경로당에 모인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시원하게 집에서 보내려면 기름이나 전기료가 상당히 나오기 때문에 일 없는 노인들은 경로당이 사랑방이다.
노인들이 식사하러 가면 식사하는 식당에서 승합 차가 와서 모시고 가고 다시 모셔온다. 그래도 차량이 부족하면 개인 승용차까지 동원해서 간다. 그러니 주변의 맛집은 노인들이 잘 안다. 노인들 입맛에 맛이 없으면 입소문이 나쁘게 나서 그 식당은 타격이 가고, 입소문이 잘 나면 손님들이 많이 오게 하기도 한다.
노인들은 식사를 하러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노인들이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해당 메뉴만 먹기 때문에 그렇다. 간혹 아직 술을 먹는 노인도 있지만 다른 노인들 식사시간에 맞추기 때문에 술을 먹어도 속도 있게 먹어야 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면 대다수가 집으로 가고 경로당에서 화투 할 노인들만 다시 경로당으로 들어간다.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외식하는 날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소통의 날이다. 때로는 서로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젊을 때처럼 열을 내지는 않는다. 경로당의 노인들은 보통 자기주장이 강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도 곧잘 하지만, 본인이 불리하면 슬그머니 말꼬리를 감춘다. 노인들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옳은 말도 노인들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알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서로 어느 선을 넘지 않는다. 간혹 그 선을 넘어 다투면 두 노인 중 한 사람은 경로당에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 보아왔어도 마음이 상하면 서로 안 보는 것이다.
승합 차를 기다리면서 새로 뽑힌 노인회장이 어디론가 부지런히 전화 중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노인들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마침 그곳을 지나다 보니까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하는 노인이 있었다. 이제 환갑이 넘었으니까 경로당도 나오고 같이 놀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가장 나이가 어린 경로당 회원이 되고 심부름이나 여러 일도 시킬 수 있으니까 나오라는 것 일 수도 있고, 노인 회원들이 해가 바뀔 때마다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식사하러 같이 가자는 노인의 얼굴에는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얼굴이다. 그래서 같이 가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완곡히 거절을 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고, 경로당에 나가면 나도 이제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지기도 지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할 의욕이 없어질 것 같다.
노인들은 사실 그 모습에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노인들이 살아온 세월만큼 경험과 식견이 많고, 아직까지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지금은 비록 허리가 굽고 걸음걸이가 바르지 못하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건강관리를 잘한 것이다. 같이 자라고 학교 다니던 또래 중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 노인들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손으로 꼽으면 열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한다. 아직도 경로당에 나와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잘 산 것이다.
몇 노인은 지병도 있고, 자세도 바르지 않지만, 그래도 내년 봄이면 알맞게 또 농사를 지을 것이다. 이 노인들은 아직도 할 일이 있는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젊어서 일을 너무 해서 자세가 바르지 않은 분들이 많다.
노인들은 허리가 굽어서 땅을 보고 걷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가 관절이 좋지 않아서 절뚝거리며 걷는다. 이제까지 일을 많이 해서 몸이 그렇게 된 것이다. 나쁜 자세로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같은 부위를 계속 쓴 것이다. 그러니 그 부위가 약해지고 고장이 난 것이다. 누구나 오래 쓰면 어젠가는 자세가 흐트러지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자세에 신경을 써야 오래 유지되는 것이다.
또 노인들을 보면 살이 많이 찐 노인들의 자세가 바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비만인 노인들은 살을 잘 빼지도 못한다. 살을 빼려고 식사를 적게 하면 힘이 없어서 힘들어지니까 식사량을 줄일 수도 없고 살이 빠질 정도로 운동도 하지 못한다.
그중에서 아직 살이 찌지 않은 노인도 있다. 그런 노인들의 자세는 대체로 양호하다. 살이 찌지도 않았는데 허리가 굽은 노인은 젊어서 몸이 상한 정도로 일을 한 것이다. 노인들도 지금은 시간만 있으면 운동을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노인들은 보통 경로당에 오면 화투놀이를 많이 한다.
바깥 노인들은 한판에 천 원씩 해서 화투판이 돌아가고, 안 노인들은 한판에 백 원씩 해서 돌아간다. 이때 양반다리를 해서 화투 하는 노인들은 거의 없다. 양반다리를 해도 한참 있으면 한쪽 다리나 양쪽 다리를 교대로 뻗치고 화투를 한다. 무릎이 아파서 그런 것이다. 무릎이 아프지만 이렇게 화투를 하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른다고 한다. 노인들이 그냥 시간을 보내기는 화투만 한 것이 없다.
천 원이나 백 원씩 돈을 걸지만 이것도 많이 잃으면, 그날은 기분이 나쁘고 집으로 갈 때에 영 발걸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다음날 꼭 본전은 하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적은 돈이지만 돈내기를 하면 승부욕이 발동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화투도 크게 눈치나 머리를 쓰는 고스톱 같은 것이 아니라 민화투를 하는 것이다. 화투패가 어떻게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고, 화투의 성패는 그날 운으로 생각한다.
내일도 경로당에는 노인들이 모일 것이다. 겨우내 집에서 지내기보다는 기름값이 들지 않은 경로당에 모여서 서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도 하고, 화투 하면서 웃고 떠들면 저녁이 올 것이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간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지는 경로당으로 출석하는 노인들이 많다가 농사철이 시작되면 자주 만나지 못한다. 서로 올해는 무슨 농사를 할 것인가 정보도 주도받고, 노인들 본인에게 적합한 농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정하는 곳도 경로당이다. 서로 아픈 병을 공유하기도 하고 좋은 병원과 효험 있다는 의원의 정보도 주고받는다. 경로당은 노인들이 봄을 기다리며 나이 든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다.
#경로당 #노인 #화투놀이 #농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