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도 바람만 불지 않아도 다닐만하다.
날씨가 춥기는 마찬가지지만 바람이 안 불면 체감적으로 덜 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까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이런 날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갑자기 할 일이 생각이 나서 옷을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센 바람을 이용해서 그동안 미뤄 놓았던 정리 안 한 콩 포대 자루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지난가을 들에서 콩 이삭을 주어 콩 타작은 하고서 대강 콩대나 큰 콩깍지만 정리하고 포대 자루에 담아 놓았던 것이다. 늘 정리 못한 콩 포대 자루를 보면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못하고 지내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을 보고 그 바람으로 깍지나 먼지를 날려 보내 콩 자루를 정리하려고 나온 것이다. 콩 타작을 하는 날 완전히 정리했어야 했는데, 그날은 비가 곧 올 것 같아서 대강 큰 것만 버리고 나머지는 모두 포대 자루에 담아 놓은 것이다.
콩은 지난가을 들녘에 산책 가다 보니까 콩 타작을 한 콩밭에 콩 이삭이 엄청 떨어져 있는 것이다. 지나가면서도 눈에 보일 정도로 콩 이삭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떨어져 있으니까 주었는데, 그 밭 한 골을 주었는데 상당한 양이었다. 그래서 줍는 재미가 있어서 그 콩밭에 떨어진 콩 이삭을 보이는 것은 모두 주어 모았다. 콩 이삭은 밭에서 콩 타작을 했지만, 타작이 안되고 밭에 떨어진 콩을 말하는데 콩알로 떨어진 것도 있고 콩알이 든 콩대로 떨어진 것이 있다. 콩밭에서 주운 것은 콩대였다.
주운 콩 이삭이 상당해서 손으로 들고 올 수는 없어 집에서 차를 가지고 와 운반했다. 콩 이삭을 마당에 갔다 놓으니까 제법 되었다. 이것으로 밥 위에 얻어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그 뒤로 들에 산책을 나가 콩밭을 지나면 콩 이삭이 있는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보통 다른 콩밭에는 이삭이 거의 없었다. 이삭이 있어도 콩알이 많았는데 그 콩알은 줍고 싶지 않았다. 그 콩알은 비둘기나 꿩이 먹어야 하는 먹이이다.
며칠이 지나서 다시 들에 산책을 갔는데, 어떤 콩밭에 또 콩 이삭으로 떨어진 콩대가 많이 보이는 것이다. 그 밭을 다 줍고서 생각해 보니까 전에 주운 밭과 공통점이 있었다. 콩 타작을 하는 기계가 노후되었거나 타작하는 사람이 대충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타작한 사람을 알아보니까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도 콩 타작을 한 것이다.
다시 그 밭에 찾아가니까 역시 떨어진 콩대가 많았다. 이렇게 여러 밭에서 주어 모은 콩 이삭 콩대가 마당에 그득했다.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 콩 농사를 제법 했다고 할 정도이다.
그렇게 주어 온 콩 이삭도 타작을 여러 날 미루다가 곧 비가 올 것 같은 늦가을에 했던 것이다. 또 타작을 하고도 완전히 정리하지 않고 포대 자루에 담아 두었다가 오늘 바람을 보고 정리하려는 것이다.
예전에는 키가 있어서 정리 안된 콩을 얹고 까불어서 알콩만 남기고 깍지와 쭉정이를 날려 보냈다. 이제 그 키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들뿐이다. 그러니 키가 있는 집이 할머니가 있는 집에만 있다. 키는 콩을 키위에 얹어 두 손으로 잡고 날개 쪽으로 위로
콩을 올리는 방법을 까분다. 까분다는 것은 키위에서 콩을 공중에 올려다가 놓았다가 하는 방법으로 이 과정에서 콩은 키의 안쪽으로 오고 깍지나 쭉정이와 먼지는 키 날개 쪽을 보내서 나중에는 버리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을 하면 알콩만 남는 것이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것보다 더 진화된 것이 바람을 일으켜 콩알을 그대로 떨어지고 깍지나 쭉정이와 다른 이물질은 바람에 날려 보내는 허풍선이라는 기계도 있다. 이 기계는 콩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고 량이 적으면 선풍기 센 바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콩이 반 포대 정도이니까 허풍선을 이용할 수도 없고, 키도 없으니까 선풍기를 이용해서 콩 포대를 정리했다. 그렇게 불던 바람이 마당에 나와서 콩 포대 자루를 쏟아 놓으니까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다시 담을 수도 없고, 선풍기를 갔다가 틀어 놓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을 해도 콩이 별로 줄지 않았다. 선풍기로 조금씩 하니까 량이 줄지 않아 지루하고 귀찮아져서 차라리 차에 실어서 새들이 많이 오는 들판에 쏟아 놓고 오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하자니 새들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또 주어 갈 것 같고, 그래도 그동안 애쓴 것이 아까워서 계속했다. 주어온 이삭 콩이라서 깨진 것도 많고 부실한 것이 많았다. 나중에 두부를 하던지 청국장을 만들더라도 물에 충분히 담아 두어서 부실한 콩이나 썩은 콩은 물 위로 뜨게 해서 버려야 할 것 같다.
늦가을에 콩 타작을 하는 날도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콩 이삭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주었느냐"라고 하면서 타작하는 것을 구경도 하고 부러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타작을 한참 하다가 보니까 거의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경로당에 갔다 오던 할머니들이 담 너머로 들여다보면서 무언가를 확인하는 눈치이다. 어떤 할머니가 지나가면서 콩 타작을 하는 것을 보고, 경로당에 가서 콩이 두 포대 자루는 넘을 것 같다는 말을 퍼트린 것이다. 실제로는 반 자루밖에 되지 않는데 너무 부풀려서 말한 것이다. 경로당에서 그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집으로 가면서 콩이 정말 두 포대 자루 인지 확인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지나가는 할머니는 모두 들여다볼 것 같았다. 그래서 비도 오려고 했지만, 서둘러 정리가 덜 된 콩을 자루에 담아서 끝낸 것이다. 그러고는 그 타작한 콩대는 다른 곳을 버렸다. 마당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만든 것이다. 그 뒤로도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담 너머 마당을 보면서 가는 것이 보였다.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콩대나 마당에 널려진 콩들을 보면서 나중에는 누구는 콩을 열 포대 자루를 주었다고 소문이 날 수도 있다. 할머니들의 소문은 아랫동네에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으면 윗동네까지 가면 다리가 부러진 경우도 가끔 있었다. 변화 없이 한 곳에 오래 살라 온 할머니들은 조그마한 것도 관심과 이야깃거리이다.
일거리를 미뤄 놓으니까 한없이 미뤄지는 것 같다. 주운 콩 이삭도 벌써 정리해야 하는데 미루다가 콩 타작을 하고도 몇 달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집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정리 안된 콩 포대 자루를 보면 개운하지 않았다. 오늘 대강이라도 정리하니까 마음까지 정리된 기분이다.
콩을 다 정리하고 나서 하늘을 쳐다본다. 갑자기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싶어 진다. 천천히 춤추듯이 내리는 눈이 보고 싶다. 하늘은 흐리지만 눈은 내리지 않는다.
예전에 산에 나무하러 가서 나무 한 지게 해서 집에 오는데, 날씨가 포근한 느낌이 들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눈들이 아주 천천히 춤추듯이 흩날리면서 내리고, 아주 조용한 늦은 오후였다. 집에 오니까 어머니가 두부를 하고 있었다. 마당에 걸린 가마솥에는 두부가 영 그러 가고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탈고 있었다. 그 가마솥 위로 눈이 내렸다. 그때 어머니가 가마솥을 여니까 하얀 김이 하늘로 오르고 내리는 눈은 가마솥으로 들어가서 눈과 김이 어울리는 모습이 한없이 편안함을 주었다.
이제 막 영 그러진 순두부를 떠서 아들에 주던 어머니, 그리고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눈이 내리면 가마솥의 김과 함께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