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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9일 차

by 안종익


궁촌의 아침은 몹시 추웠다.

눈만 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감싸 추위를 대비했지만, 손과 귀가 시렸다. 너무 추워서 춥다는 생각에 마음이 집중된다. 그래도 한참을 걸으면 추위가 갈 것이라는 기대로 열심히 걸었는데, 이제는 발끝도 시려온다. 오늘 추위가 대단한 것이다.

오늘은 31코스를 걷는 중이며 숙소 아주머니가 일러 준 길로 가고 있다. 숙소 아주머니는 해파랑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했고, 그동안 걷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해서 해파랑길에 대해서 잘 아는 것으로 믿었다.

아주머니가 숙소를 나와서 좌측 길로 올라가면 해파랑길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믿고 좌측 길로 올라가 보니, 해양경찰 연수원이 있었고 길도 큰 도로라서 해파랑길 표시가 곧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한참을 가다 보니까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그만 더 가면 있을 것 같아서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길을 잘 못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파랑길 표시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것이다. 표시가 안 보이면 의심해야 했었다. 아주머니 말만 믿고 확인을 하지 않고 온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곳까지 왔다. 앱으로 확인해 보니까 7번 국도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을 공양왕릉 방향의 도로로 온 것이다. 산속 도로는 꼬불꼬불하고 했지만, 해파랑길과 만나는 곳까지 걷는 수밖에 없다. 앱으로는 대진항 삼거리에서 다시 해안 쪽 도로를 가면 부남교에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길을 잃어버리니까 당황도 들고 오직 다시 길을 찾는데 정신이 쏠리니까 바람이 불고 추워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진항 삼거리에 오기 전에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돌아갈 생각도 했으나 3대가 지나갔는데 모두 세워주지 않았다.

이렇게 큰 상황이 생기니까 오직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되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길을 잃어버리고 걷는 거리가 정상적으로 가는 것보다 더 많이 걸었다.

열심히 빨간 표시를 찾아서 걷다가 보니까 멀리 다리에 빨간 표시가 붙은 것이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오직 그 빨간 표시에 눈을 떼지 않고 갔다. 부남교에서 만난 것이다.

다시 해파랑길을 따라 걷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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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 1리를 지나면 교가 1리가 나온다. 여기서는 강 건너 근덕면을 보면서 계속 가면 덕산리가 나온다. 이 마을이 마라톤 선수 이봉주의 처가 동네이다. 또 31코스가 도착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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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리에 붙어 있는 덕봉산


길을 다시 찾고 나니까 엄청 추워졌다. 부남 1리 마을을 걸을 때는 손이 시려서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길을 잃었을 때는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길 찾는 데만 신경이 쓰였는데 정상으로 되니까 추워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무릎까지 아파지는 것 같다. 길을 찾으려고 아스팔트 길을 바쁘게 걸어서 무리가 간 것 같기도 하다.

걸으니까 시간이 가면서 아픈 것이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아프다가 그 물집이 해결되니까,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약간 좋아지니까, 발바닥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발바닥은 계속 관리를 하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너무 많이 걷는 것은 무리이고 충분한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해파랑길을 걷는 것은 의식주가 해결되니까 걸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에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나 내가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러 다닐 것이다. 그렇게 민생고 해결이 안 되면, 사는 의미를 찾으러 걷는다는 것은 사치이고, 편해서 건방 떠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런 처지가 아닌 것만도 감사하면서 살 일이지 이렇게 한낮에도 영하인 날씨에 낯선 곳에서 개고생 하는 것을 남들이 알면 뒷담화 거리가 될 수 있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 오직 길 찾기에 정신이 모두 쏟았듯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야지, 이렇게 걸으면서 온갖 생각을 할 필요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민생고에 시달리더라도 살아가는 의미는 있어야 하고, 그러니 내가 지금 걸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산 동안에 겪을 필요가 있는 삶의 태도이다.


덕산 해수욕장에서 맹방 해수욕장을 건너는 덕봉 대교에서 시작한 32코스는 바닷바람이 절정이다. 다리를 건널 때 몸이 나라 갈 것 같이 바람이 불었고, 멀리 보이는 덕봉산도 파도가 높게 치는 것이 보인다.

맹방 해수욕장을 걸을 때는 너무 추웠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이 영하라서 걷기가 힘들었다. 끝이 안 보이는 해수욕장을 걸어가다가 너무 추워서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맹방 해수욕장의 해파랑길은 해송 사이로 난 것이 아니라 백사장과 같이 가도록 해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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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 맹방, 상 맹방을 지나서 유채꽃 마을로 들어가 멀리 높이 보이는 한재로 걸어갔다. 한재는 보기에도 오르막이 심한 도로이지만 먼 거리를 차가 달리는 도로 옆을 걸어 올라가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춥다는 생각만 든다. 오늘이 유난히도 춥다. 한재 고개를 넘어니까 오십천이 한눈에 보이고 이제부터 오십천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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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 고개 정상


오십천을 걸을 때 삼척 번개시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시장을 지날 때 점심시간일 때가 거의 없었다. 시장 안에는 밥집이라고 쓰고 다른 상호가 없는 식당을 들어갔다. 노부부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일단을 들어가면서 한 사람인데 식사가 되냐고 물어보니까 된다고 해서 가정식 백반을 시켰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이나 반찬은 모두가 시골에 먹던 그 맛이고 량도 많이 주었다. 가격도 저렴했지만 할머니가 국도 더 줄까 물었고, 밥도 다 먹어 가니까 더 주는 것이다. 친절하면서 내가 밥도 안 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더 챙겨주려는 정 많은 할머니 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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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항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보면 정라항안길이라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언덕길은 가파르고 힘이 들지만 올라가니까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일품이다. 삼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맹방해수욕장, 한재, 덕봉산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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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을 올라가면 산길을 많이 간다. 산길을 걸어서 내려가면 광진항이 나오고 해안 도로로 이어진다. 이 해안 도로가 이사부 길로 조각 비치 공원과 새 천년 해안 유원지와 이사부 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해안 길을 걷는 동안에 나는 집채만 한 파도를 처음 보았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에 정신이 나가서 한참을 구경하기도 했지만, 해변 길을 걷다가 겁이 나서 멈춘 적도 있었고, 파도가 쳐서 해안 테크 길 위로 올라올 때는 피하기도 했다. 바닷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로 대수롭잖다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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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공원 밑으로 지나가니까 여기는 동해시라는 표시가 나온다. 추암의 촛대바위와 추암 조각 공원에 온 것이다. 32코스도 추암으로 모두 걸어온 것이다. 오늘 여정은 여기까지 하고 추암역 부근에서 유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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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추암 조각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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