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든 사이에 어제저녁이나 새벽에 조용히 내렸던 것이다. 봄비는 소리 내지 않고 숨죽여 내리는 듯하다. 그래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온 들판이 젖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비 내리는 보성 오일장을 찾았다. 보통 보성군청 부근에 있을 것을 예상해서 읍내를 다녀보니까 조용했다. 비가 와서 오일장이 서지 않는 것인가? 읍내에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오일장이 서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비가 오니까 더더욱 지나는 사람이 없었고 차들만 평소와 같이 다니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손으로 가리키면서 한참을 가서 좌측에 있다고 했다. 손이 가리키는 쪽으로 찾아가 보니까 오일장터는 비도 막아주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보성 장터는 지붕은 현대식으로 만들고 공간은 세 칸으로 나누고 다시 중간 통로를 만들어서 구분 지게 장터가 정비되어 있었다. 중간 통로 오른쪽 첫 번째 공간은 우측은 각종 해물을 파는 공간이고 좌측은 말린 건어물을 파는 전포들로 형성되어 있고, 두 번째 공간 우측은 젓갈류 점포이고, 좌측은 주방용품, 철물과 플라스틱 제품을 팔았다. 마지막 세 번째 공간은 우측은 옷 가게가 같이 있었고, 좌측은 신발이나 모자 양말 같은 잡화를 파는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중간 통로에는 과일이나 채소가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간 통로 왼쪽 공간은 한쪽만 곡물을 파는 공간이고 나머지는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작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으로 비교적 넓고 자리도 많았다.
할머니들은 곡물 가게 앞쪽이나 오일장에 들어오는 입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늘 고성장에는 할머니들이 머위를 많이 가지고 나왔다. 머위는 이른 봄에 처음 올라오는 것은 나물이 아니라 보약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봄나물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머위 데친 물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머위 색깔이 자줏빛이 많이 나는 것이 재배가 아니고 직접 캐 왔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병아리 장수도 있었다. 한 마리에 2천 원이었다.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사 가고 있었다. 이제는 집에서 병아리를 어미닭이 품어서 까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다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밀묵과 도토리묵과 청포묵도 있고 김 나는 찐빵도 부지런히 쪄내고 있었다.
빗자루가 갈대로 만든 것과 수수로 만든 빗자루가 있는데, 가게 주인이 갈대 빗자루는 중국산이고 수수 빗자루는 국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랜만에 수수 빗자루를 보니까 만져보고 싶어서 사지 않으면서 들고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다.
보성 오일장에는 바다 고동과 민물 고동을 같이 팔고 있었다
보성 오일장을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나설 때도 봄비는 아침과 같이 차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기념관으로 출발했다. 가는 중간에 눈에 띄는 것이 있어서 예정에 없었지만 그쪽으로 먼저 갔다. 김구 선생은 은거 기념비가 있다는 표시를 본 것이다. 그곳에는 기념관과 기념비 그리고 은거한 집이 있었다. 민족의 지도자 명성에 맞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기념비를 설명하는 내용을 읽어보니까 일본인 장교를 죽이고 감옥에 있다가 탈출해서 이곳에 잠시 은거한 것이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내용은 기념비의 설명과 다른 것이어서 유튜브가 거짓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유튜브 내용은 조선일보 기자였던 김용삼이라는 분이 어느 교회에서 강연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일본인 쓰지다 중위를 죽였다고 했는데, 실제는 쓰지다는 일본 군인이 아니고 대마도에 살면서 한국에 약을 팔러 온 약장사 민간인이었고, 김구 선생이 체포되어서 조사를 받은 신문 기록에 의하면 돈을 목적으로 강도 살인을 했다고 조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 제국에서는 일본이 자국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니까 대한 제국에서는 쓰지다 가족들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내용이고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구 선생 기념회나 유족 측에서도 김용삼기자에 대해서 고소 고발이 없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씁쓸한 생각을 했다. 만일에 유튜브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여기에 쓰인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실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왜곡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게 한다. 그러나 말미에 김구 선생이 해방 후에 환국해서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니 짧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문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직도 봄비는 계속 내렸다. 태백산맥의 기념관은 벌교읍에 위치해 있었다. 초현대식 건물에 관리하는 사람도 많았다. 입장료는 2천 원이었다. 기념관과 그 옆의 담벼락은 우리나라에서 대표하는 건축가와 화가가 만들었다고 한다. 조정래 작가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 같다.
태백산맥은 이곳 벌교가 소설의 주 무대이다. 이 소설은 자료를 4년간 준비하고 6년간 쓴 소설이다. 오랜 준비와 시대 상황을 추론해서 쓴 소설로 엄청난 반향과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이 지역에서는 태백산맥의 소설의 영향력이 엄청났다. 기념관에 부근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현부자의 집과 초희의 집이 재현되어 있었다.
벌교 읍내에는 김범우의 집, 솥 공장, 소화다리, 보성여관, 태백산맥 기념 조형물 등이 산재해 있고, 보성여관에 들어서는 입구 거리에는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간판은 걸려 있고, 이 거리의 건물은 가급적 옛 모양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옛날의 정취가 묻어 나오는 느낌이다.
소설에 나오는 도가의 팻말도 있고 실제로 정도가라는 건물이 있었다. 조금 더 가니까 보성여관이 나왔다. 2층으로 만든 일본식 건물이었다.
여기도 입장료를 받았다. 천 원이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찻집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보성여관은 옛날 일제 강점기의 건물을 보는 듯하고 여관방 수가 상당히 많았다. 잘 보존되고 있었고, 이곳의 모련은 벌써 만개를 해서 떨어지는 중이다.
한 소설가의 소설이 한 지역을 상징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았다. 벌교는 조정래 작가를 빼고는 생각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처럼 모차르트가 세계의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