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랭크 슬로건 만들기
블랭크는 그동안 '우리동네 생활공간 되살림'이라는 사회적 미션을 가지고 일의 방향을 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고, 일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각자가 바라보는 비전이 공동의 가치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방향과 동기가 사라질 때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외부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 참고1. 윤주선 (Yoon Zoosun), <계획에서 실행으로 도시재생 스타트업>, 건축과 도시공간 Vol23 지역 맞춤형 도시재생의 실행과 발전, 건축도시공간연구소, 40-48p.
* 참고2. 이영동 (Yeongdong Lee), <지역청년커뮤니티, 생존, 그리고 도시재생 : 블랭크가 상상하는 성대골 도시혁신 이야기>, 도시혁신을 바라보는 다섯가지 시선,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96-113p.
이번 워크숍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를 간결하지만 강력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위기진단, 기회탐구, 미션수립이라는 큰 주제를 정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에 대한 토의와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토의 결과는 포스트잇으로 정리하였고, 각 단계별로 나온 내용들은 발표가 끝날 때마다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였습니다.
Part1_위기진단 "블랭크, 10년안에 망한다면"
- 개인 삶의 변화
"육아, 결혼, 노후 등 개인의 삶의 변화가 생길 경우, 기업이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면 힘들어질 것 같다. 재정적 어려움 역시 큰 위기가 될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 기업의 시스템 부재
"다음 단계에 대한 장기적 목표와 성과에 대한 공유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개인 단위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성과가 개인의 성장에 그치고 블랭크 전체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성원 중 누군가가 나갔을 때 그 역할을 대체하기가 힘들다. 새롭게 들어온 팀원이 블랭크의 방향성에 대한 공유 없이 실무에 먼저 투입되어 일의 방향성을 세우는 것이 결국 개인의 몫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 기업의 문화 부재
"지나치게 사람과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자유와 욕구를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기준 없는 자유가 남용된다면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나치게 사회적 책임 지려고 하는 것도 기업으로서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 사업 역량의 부족
"적극적인 영업이나 홍보가 부재한 채로 수동적으로 일을 기다리고 있다가 망할 수도 있다. 블랭크 전체의 사업모델 없이 지금처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재정적 어려움이 닥친다면 지속이 불가능할 것이다."
- 외부요인
"지원 사업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거나 사업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도동을 기반으로 한 상태에서 상도동의 환경이 급변하게 되면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Part2_기회탐구 "블랭크, 10년후에도 살아 남는다면"
- 성공적인 사업모델
"지방 소도시 재생사업 등 지금의 설계/운영/연구 경험을 활용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한 거나 작은 가게나 문화공간등의 공간 사업에서도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투자 및 사업 확장
"블랭크의 소셜 미션과 성장 가능성을 공감하는 외부 자본의 투자를 받아 사업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향후 우리가 부동산의 영역까지 업역을 확장했을 때 부동산 투자나 개발을 통해서도 수익이 날 수 있지 않을까?"
- 전문성 향상 및 브랜드 가치 상승
"설계나 기획 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일거리가 늘어난다면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랭크만의 디자인, 블랭크만의 공유 가치가 확고해져 블랭크 브랜드가 더 단단해지면 경쟁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
- 삶의 안전망 구축
"주거 및 일자리 공유공간 등 기업이 개인의 안전망의 역할을 하며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서로를 의지하면서 공동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 외부요인
"부동산시장의 침체 및 1인 가구 문제, 고령화 문제, 도시의 낙후 문제 등 사회적 요인들로 인해 블랭크가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Part3_미션수립 "블랭크, 그래도 필요한가?"
위기와 기회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들을 공유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랭크라는 회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각 팀별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통적인 화두는 개인의 삶의 회복, 삶과 일의 균형, 대안적 일의 발굴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의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올해 마을아카데미 주제가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블랭크에서 일하면서 일상의 회복과 삶과 일에 대한 균형을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짐을 경험하였다. 특히 올 한 해 동안 삶과 일에 대한 교집합이 많아졌다. 개인이 업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함께 해서 좋았다. 정해진 틀을 깨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공간이 중요한 이슈였다면, 2015년과 2016년은 개인의 삶의 회복이 가장 큰 이슈였던 것 같다. 앞으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데 있어 공간과 삶을 아우르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문제를 공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양한 관심사들을 아우를 수 있는 2017년을 준비하고 싶다." (A조)
"개인과 기업 차원에서 각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블랭크라는 기업의 존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블랭크에 들어와 일과 일상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면서 오히려 서로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개인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기업과 사회 측면에서는 공간과 부동산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가치를 실천하며 건축가와 기획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 뿐만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B조)
이렇게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면 크게 개인적 측면과 기업적 측면, 지역적 측면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들이 각각의 단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선순환하는 흐름을 발견하였다.
일상 > (관계) > 일터 > (협업) > 동네 > (관계) > 일상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개인(일상), 공동(일터), 지역(동네)이라는 단어로 치환하고, '개인의 삶의 회복', '삶과 일의 균형', '대안적 일의 발굴'이라는 화두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지역의 일로"
2017년은 이러한 우리의 선언을 바탕으로 업의 영역을 넓혀나가고자 합니다. 사회의 견고한 시스템 앞에서 한 개인의 힘은 굉장히 미약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이 공동체가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며 공동의 비전을 공유한다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블랭크는 이렇게 모인 공동의 힘이 흩어지지 않도록, 지역의 일로 전환하려는 다양한 실천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지난 12월 23일에는 2017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설계와 교육, 연구, 운영 프로젝트 이외에도 은평과 군산으로 지역 거점 확산을 실험할 예정이고, 유휴공간 협업 프로젝트 '월간 블랭커스(blankers monthly)'와 소도시 라이프 프로젝트 '브로컬리 하우스(b.locally house)'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기 답사 및 교육 프로그램, 사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 사회적기업 인증, 홈페이지 개편 등 새로운 시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도 이어질 블랭크의 도전에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