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 시작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제일 잘 갔거든.
감정의 밑바탕에 깔려 있던 외로움이 새어 나와
종이 위로 옮겨갔고,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외로울수록 그림을 더 그렸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그리게 됐고.
남들보다 잘하게 되니 칭찬을 받게 됐고,
후엔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건지
칭찬을 위해 그리는 건지
모를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일까.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과를 나와도,
매거진에 그림이 실려도,
내가 그린 이 그림들을 보여주기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림으로 벌어먹고 살려는 사람처럼 사는 게
나한텐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