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offee and Cigarettes

커피와 담배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배려

by 백사과

찬장에 오래 묵혀둔 커피를 내려보면, 찌든 담배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그것이 커피이기 때문이다. 찾을때 마다 매번 그때의 내 감정과 섞여 끈적하게 들러붙는 그 둘의 냄새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강력하게 느껴졌다.


이 짧은 흑백 영화 속 여자는 자신의 취향대로 설탕, 밀크를 넣은 커피를 마시며 연신 담배를 피운다.
그러면서 창밖을 바라보며 손끝으로는 무기 카탈로그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먹고, 마시고, 보고, 읽고.
그녀의 바쁜 시간은 흑백 화면 속에서 담배 연기처럼 빠르게 사라진다.

그 순간을 멈춘 건 웨이터의 거추장스러운 배려였다.
"커피 더 필요하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웨이터는 커피를 부어 그녀의 취향을 흐트러놓는다.

이제 커피는 더 이상 그녀의 취향이 아니게 되었고, 여자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안 그러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녀의 대답이 통쾌하게 느껴졌다.

여자 주변을 서성거리는 웨이터의 손에 들린 커피 포트 속 커피가 꿀렁이는 걸 보고, 나 역시 불쾌했으니까.


그 뒤로, 여자와 남자는 창과 방패처럼 화면 속에서 대립한다.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지키려 하고, 남자는 계속 꿀렁거리는 커피를 들고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어쩌면 관심 없는 남자의 사랑이란 이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취향은 존중해 줘야지.
더욱이 이건, 커피인데.



영화: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2003)

감독 : 짐 자무쉬


일러스트레이션: 백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