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질색이지만

합평은 왜 괜찮지?

by 망고빵

나는 평가받는 걸 정말(심하게) 싫어하는데, 이상하게도 합평 모임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봤다. 합평 모임에서 받는 평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글에 대한 평가는 나 자신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 글은 내가 썼지만, 그 글이 곧 나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합평에서 나온 작은 비판도 꼼꼼히 기록해 둔다. 여러 조언과 지적들이 신나지는 않지만, 나름 둥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비판을 받을 때는 최대한 글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비판에 대해 너그럽고 곧 잘 수긍하며 쉽게 잊기도 한다. 반대로 칭찬은 온순한 고양이가 되어 푹신한 소파에 앉는 것처럼 좋은 기분이 들고 글과 나를 하나로 일치시켜서 마치 통착력과 직감이 탁월한 사람 되어 기세등등해진다. 반면 내 카페에 대해 누군가 평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며칠 굶은 맹수처럼 돌변해 버린다. 부정적인 평가야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문제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좋은 의도로 얘기하는 것인데 나는 한마디 한마디 곱씹으며 그것이 칭찬을 가장한 평가가 아니었는지 예리하게 구분해 낸다. 꼬아서 듣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것이 피해의식이든 열등감이든 자격지심이라고 얘기해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맹수로 변해버리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많이 늘었네요”

“여기 커피 맛 한번 보러 왔는데 대중적이고…. 동네라 올 만해요” (웃음)

그냥 ‘맛있다, 동네에 올 만한 곳이 있어서 좋다.’라고 얘기해 주면 참 고마울 텐데. 아니, 근데 난 안 물어봤거든요. 내가 손님과의 스몰토크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 일까? 사람들이 내 카페나 내가 만든 케이크, 음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면 나는 그것이 과정이나 노고는 무시된 채 나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헐뜯는 것 같다. 아, 자격지심 맞네.

커피에 대해서 극찬을 받을 때도 있다. 커피는 커피일 뿐인데. 너무 그러면... 이 공간과 책정된 음료의 금액과 말하는 사람의 당시 기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케이크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드는 방식과 특징은 제철 과일과 생크림뿐이다. 마법의 가루 따윈 없다. 그런데 너무나 요란을 떨면 조금 의심스러워진다. 내가 생각해도 난 별꼴이고 꼬장꼬장하다. 내가 원하는 칭찬 예시) 참 기분이 좋아지는 맛입니다. 제철 과일이네요. 신선하군요. 산뜻해요, 상큼해요, 달콤해요, 카페 분위기 좋네요. 케이크가 예뻐요, 귀여워요, 맛있어 보여요. (잠깐, 이 말은 너무도 내 입에서나 쉽게 나올 법한 말이다.)

아마도 카페 평가와 합평회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평가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느냐의 여부인 것 같다. 카페 운영 5년 차 여도 나는 아직 손님들의 평가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카페는 내가 평가받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합평회는 평가가 일부분이다. 평가를 받을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고, 그것을 중요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합평 모임에서 비판을 받을 때 나는 글과 나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칭찬은 흔쾌히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모두의 동의하에 서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걸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합평을 한 날은 서너 시간 동안 머리가 탈탈 털려 기진맥진해져도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꿀잠을 잔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가에 대해 질색하는 나가 어째서 합평모임을 몇 년째 즐기고 있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겠다. 더불어 카페에 대한 평가도 합평회처럼 생업에 종사하는 나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글을 쓰든 일을 하든, 내 스스로를 따뜻하게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태연하게 카페를 평가하는 그들에도 수고가 참 많네요. 파이팅! 하고 말하는 고수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