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_를 읽고 [송지현]
책을 열면 소설의 제목이 쓰이기 전 페이지에 외삼촌에게 라고 쓰여있다. 왤까. 소설에는 외삼촌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외삼촌에 대한 기억을 하는 주인공과 살아있으면 그걸로 된 거라는 할머니의 말이 전부다. 외삼촌은 주로 만화책의 주인으로. (삼촌의 사연은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가까운 친척 중에는 어쩐지 짠하고 궁금한 사람이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텍스트 없이 외삼촌에게 라는 글씨만 덩그러니 있는 페이지가 읽는 내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처음 읽어갈 때는 아련한 추억의 단상이 떠오르고 추억의 필터가 씌워진 듯했지만 이따금씩 느껴지는 서늘함에 종종 현실의 나로 돌아왔다.
이 소설에 대단한(큰사건) 서사는 없다. 나는 한동안 ‘서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내가 쓰는 이야기에는 서사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서사는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힘이다. 사건이 차곡차곡 쌓이고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느끼거나 의미를 얻는다. 그래서 서사가 탄탄한 작품이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평가받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만들어진 구조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감정보다 이야기의 틀을 먼저 보게 되고, 그러면 마음이 식는다. 인물의 삶이 아니라 작가의 설계도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사건이 인과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보다, 인물의 감정이나 생각이 느슨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소설 쓰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나는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서사를 만들기 위해 차곡차곡 쌓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에 흥미를 지속하기 어렵다. 읽는 것이 어려우니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왜 다 읽고 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았던 책도 제목은 생각나지만 여전히 내용은 희미하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서사성이 짙으면 나는 허구라는 사실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것이 내가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지금 알게 되었다. 나는 생활밀착형 이야기에 각기 다른 사연과 배경과 생각에 몰입하는 것이 즐겁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좋았다. 하지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느끼게 했는지 알려면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것을 즐기는 나는, 이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당연히 지루하지 않았다. 사담이지만 나는 스포일러도 좋아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는 한없이 지루해 보이는 그 아이에게 단박에 이입이 되었다.
여름날 개울에서 다슬기를 소쿠리에 채우는 아이.
같은 만화책을 반복해서 읽는 아이.
신문지에 구멍이 난 자음을 새까맣게 칠하는 아이.
식당에서 소금통의 구멍을 파는 아이.
한 박스의 사과껍질을 오직 재미로 까는 아이.
물론 이런 행동은 한 번도 한적 없지만 그와 비슷한 행동들을 하며 나 역시 혼자 남겨진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줄거리요약 및 인상 깊은 문장
이제는 안다. 지나고 나니 생각보다 좋은 시절이었다는 걸. 통과하고 나서야 어떤 시절을 지나왔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도. 24p
하루는 이제 절반이나 남았고, 남은 하루고 그저 그럴 거 같고, 때문에 집에 와서는 특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26p
-지루하게 어린 시절을 맡겨진 채로 지내던 주인공은 20대에 자취를 하게 된다. 온전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생각한 채로. 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혼자인 것은 익숙하지 않음을 알게 되며 연인 민수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다르게 구분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요즘 부쩍 깨닫곤 한다. 47p
좋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굳은 얼굴로 민수가 tv를 껐다. 거실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민수는 집을 나갔다. 55p
-연인과의 동거생활이 끝난다.
좀 비껴가면 좋을, 그러나 늘 동생을 향해 다가오는 소소한 불행들 사이에서, 동생은 간장게장 먹기를 더욱 고대했다. - - -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먹어야지. 손에 묻는 줄도 모르고 먹어야지. 소소한 행복으로 소소한 불행을 상쇄해야지. 75p (그다음은 너무 웃기니 책을 직접 읽어보세요 ^^)
최고로 요란한 순간이 지속되면 터져버린다. 그러니까,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에는 아마 종류가 많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어느 선에 다다르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터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추가 흔들리는 신호를 잘 듣다가 최고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도록 조절해야 하는 거 아닐까. 79p
아니, 압력밥솥에 밥 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지나온 시절 사계를 이렇게 치밀(?)하게 사유할 수 있다니! 난 정말 이런 소설이 좋다. 이것이 진짜 같고 나는 진짜가 좋다. 가끔은 나조차 진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이 내가 느끼고 바라는 진정성에 가까운 것이다. 계절은 지나가고 돌아오지만 과거의 봄, 여름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 여름.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고. 종종 등장하는 죽음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젠가 다시 한번 읽게 되는 날에 생각해보려고 한다. 79p 뒤에도 좋은 문장들이 많다. 그건 나만 간직해야지...
이 소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책 뒷면에 정용준 소설가의 글귀가 너무나 절묘하게 쓰여있다.
-변화 없이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사건 없이 각성하는 사람이 있고, 결정 없이 완성되는 이야기가 있듯, 뒤돌아볼 때만 발견되는 ‘생활’이라는 소설. 사계를 통과하는 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임을 겨울을 향하는 자는 봄으로도 여름으로도 향하는 것임을, 송지현처럼 잘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밤과 낮, 어둠과 밝음. 보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오고 가는 반복이라는 것을. 전시회에 걸린 특별한 그림을 바라보느라 내 삶에 담긴 평범한 시간을 함부로 대했던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나도 이런 감상문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