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꾸미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명품이나 유행하는 물건을 자주 사지는 않는다. 그럴 형편도 안될뿐더러 소비에는 좀 신중한 스타일이다. 대신 나에게 어울린 만할 걸 고르고 골라 한번 구매하면 곁에 오래 두는 편으로 예쁜 옷보다 체형, 두꺼운 메이크업보다는 피부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남편과 신혼 때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호찌민으로 짧게 3박 4일을 갔는데 여행 중 우연히 유명한 시장 근처에 있는 가품 판매점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기가 뭐지 하고 들어가 보니 흡사 우리나라 동대문과 비슷하게 생긴 곳으로 대략 100여 개 정도의 가판대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가판대에는 가방부터 지갑이며 신발, 옷들까지 없는 게 없는 별천지였다.
나는 억눌러온 욕구가 용솟음치듯 여기서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하이에나처럼 몇 시간을 지친 남편을 끌고 돌아다녔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하면서 편히 멜 수도 있고 그 당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고야# 쇼퍼백이었다. (여전히 인기몰이중)
가격은 한화로 6만 오천 원 정도였다. 나는 얼마라도 깎고 싶었지만 이미 한국말도 잘하는 고단수인 점원은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대신 그 점원은 진짜랑 똑같다고, 연신 가방의 퀄리티만 말해줄 뿐이었다. 아마 진짜로 자신이 있었거나 아니면 내가 이미 살 것 같아서 밀어붙였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고민 끝에 그 가방을 샀고, 또 언제 올지 모르니 하나 더 사야겠다는 생각에 루이 비# 미니 크로스백을 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5만 원 선에서 구매하지 않았나 싶다. 왠지 마트 갈 때랑 여행 갈 때 지갑이나 핸드폰 정도만 넣고 다니면 딱 일 것 같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그렇게 기분 좋은 쇼핑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고야#쇼퍼백을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시원해 보이는 재질이 여름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한참 강사로 일하고 있었던 때라 책이며 파우치며 물병 등등 짐이 많았는데 그 짐들을 다 넣고서도 스타일을 살릴 수 있어서 나는 그 가방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내가 하는 일이 바뀌고, 사는 곳이 달라져도 여름에는 꼭 누구랑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매일 들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고 나에게도 기저귀 가방이 필요했다. 보통은 손이 자유롭게 백팩을 메기도 하는데 나는 유모차를 주로 끌고 다니기에 유모차에 걸 가방이 필요했다. 물론 이번에도 내 고야#가방이 나설 차례였다. 기저귀며 분유, 물티슈 등 아기용품을 가득 채워도 내 가방은 언제나 그랬듯 스타일을 유지해 주었다. 공원 산책을 나갈 때에도 문화센터나 마트를 갈 때에도 내 유모차에는 그 가방이 항상 걸려 있었다.
그러다 아기 친구 엄마들을 사귀게 되면서 서로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친구 아기가 아장아장 다가와 내 가방을 만지작 거리다 가방을 물기 시작했다. 아마 이가 날 시기라 이가 가려워서 내 가방에 달린 가죽참을 질겅질겅 씹은 것 같다. 그걸 보고 놀래서 친구 엄마가 말했다.
"안돼, 엄마 이거 물어줄 돈 없어~."
친한 사이라 농담 섞어 던진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언니, 이거 짝퉁이야~ 나 진품 기저귀 가방 할 만큼 여유 없어~."
"그래? 하하"
그렇게 본의 아니게 가품 커밍아웃을 하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진품이면 어떻고 가품이면 어때, 내가 이렇게 잘 들고 다니면 그만이지 뭐',라고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자주 모여 종종 함께 육아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지금으로부터 2개월 전쯤에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한 친구네 집에 모여 함께 육아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에 친구 아기가 내 가방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그걸 보고선 나는 이상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소미야 나중에 크면 이모 진짜로 하나 사줘~"
나는 분명 농담이었다. 웃자고 던진 개그였는데 나를 포함해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내 말에 어떠한 말도 없이 그렇게 잠깐의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순간 내가 왜이랬지?라는 생각에 내가 한 말이 너무나 창피해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모아둔 비상금으로 그 가방 진품 몇 개쯤 사는 건 일도 아닌데 말이다.(물론 남편과 긴 상의 끝에 가능하겠지만) 살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실언도 하고 실수도 한다지만 저 멘트는 정말 자다가도 이불킥하고 싶은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그 뒤 집에 와서 그 가방을 볼 때마다 내가 한 실언이 생각나서 도저히 가방을 들 수가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가방을 대체할 에코백을 급하게 주문했고 유모차에 새 가방을 걸어두었다.
급기야 가죽도 해지고 이제는 진짜 더 이상 멜 일도 없다고 생각한 이 가방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그냥 가방이고, 짝퉁이잖아. 언제든 버려도 된다고!' 이렇게 마음먹고서는 어제 분리수거를 하는 남편 어깨에 가방을 걸어주었다.
"나 대신 이거 버려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아깝다며 버리지 말자고 한다. (지독한 자린고비ㅜㅜ)
나는 손사래 치며 됐다고 이제는 버려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은 그렇게 분리수거도 하고 가방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그마치 5년이었다. 열심히 일했던 순간에도, 여행을 갔던 때에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순간에도 늘 나와 함께 했던 가방이었는데 나는 너무나 매정하게 그렇게 버려버렸다.
가품이나 진품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내가 구입한 물건을 소중히 여겼어야 했고 책임을 다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가품이란 이유로 매일 들면서도 홀대했고 좋아하면서도 아끼지 못했다. 입은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상관이 많았던 모양이다.
애초에 책임을 다 할 수없다면 시작도 말아야 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물건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다시는 매정하게 버리는 일이 없길 바라며 신중한 소비습관과 더불어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