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가 그렇게 질색팔색을 한 나의 운동화는 뉴발란# 회색 운동화로 벌써 나와 8년을 함께 하고 있다.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이제는 언니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봐도 해지고 낡은 운동화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에게는 이 회색 운동화 외에도 몇 개의 운동화가 더 있다. 운동할 때 신는 러닝화와 나이# 검은색운동화인데 러닝화는 아무래도 일상복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고, 또 검은색 운동화는 발볼이 좁게 나와 신다 보면 새끼발가락이 아파서 자주 손이 안 갔다.
그러다 보니 무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색깔에 또 발볼이 넓은 내발에 편하게 잘 맞는 이 회색 운동화가제일 마음에 들어자주 신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언니는 물론 남편까지 나서 내 신발을 볼 때마다 제발 좀 버리라고 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렇게 이상하냐고 되물어 보긴 했었는데 이제봄도 되었겠다봄맞이도 할 겸 화사한흰색 운동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가 좋을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며 호시탐탐 쇼핑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현관이 지저분해서 신발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신발장 맨 위에 있는 흰색 운동화 한 켤레를 발견하게 되었다.오래전에 여행 갔을 때샀던 건데 맨 위에 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발이었다. '이게 아직도 있었네'라는 반가운 마음에 신발을 꺼내 자세히 보니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때가 탈 때로 타 진회색깔이 되어버린 세월의 흔적이 역 역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걸 또 언제 세탁하지어차피 운동화도 하나 살 건데 그냥 버릴까 하다가, 문득 여행 갔을 때 생각도 나고 때가 좀 심하게 탔을 뿐 해지진 않았으니 빨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 '에잇 모르겠다. 일단 물에 담가놓고 보자.'라는 생각에 화장실로 가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 한 스푼씩을 넣고신발을 담가놓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어느 정도 때가 빠졌다 생각이 들어 안 쓰는 칫솔로 운동화 바닥부터 겉에까지 박박 문질렀다. 때가 빠지는 느낌이 나는데 완벽하게 때가 없어지진 않았다.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렇게 구석구석세탁을 하고 탈탈 물을 털어 빨래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건조기가 있기는 하지만 급한 것도 아니고 햇볕도 잘 드니 자연건조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신발 안쪽까지 뽀송하게 마르기까지 꼬박 이틀이 더 걸렸다. 잘 마른 걸 확인한 후 신발끈을 구멍에 하나씩 끼워 넣고 예쁘게 묶어 매니 꽤 괜찮은 신발의 모습이 되었다.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있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이고, 집 앞 마트며 공원 산책 같은 가벼운 외출에 더없이 어울리는 봄맞이 신발이었다.
역시 세상엔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나 보다.신발 하나를 보더라도 세탁하고, 말리고, 끈을 끼우기까지의 수고로움은 물론 중간중간 때가 다 빠졌나, 다 말랐나 확인하는 시간까지 들이고 나서야 깨끗한 신발이 완성되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