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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Apr 07. 2020

나의 흰색 운동화

"내 신발 신어라"


친정에 놀러 갔을 때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고 대뜸 언니가 나한테  말이다.


"응? 왜?"


"니 신발 다 낡았잖아, 그것보다 차라리 이게 낫겠."


그러면서 신발장에서 본인의 아디다# 흰색 운동화를 꺼내 보이는 언니다.


"왜 이거 낡아 보여? 난 예쁘고 편해서 좋은데."


"옆에 다 뜯어졌잖아, 하나 사던지 어휴."


우리 언니가 그렇게 질색팔색을 한 나의 운동화는 뉴발란# 회색 운동화 나와 8년을 함께 고 있다. 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이제는 언니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봐도 해지고 낡은 운동화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에게는 이 회색 운동화 외에도 몇 개의 운동화가 더 있다. 운동할 때 신는 러닝화와 이# 검은색 운동화러닝화는 아무래도 일상복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고, 또 검은색 운동화는 발볼이 좁게 나와 신다 보면 새끼발가락이 아파서 자주 손이 안 다. 


그러다 보니 무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깔에 또 발볼이 넓은 내발에 편하게 잘 맞는 이 회색 운동화가 제일 마음에 들어 자주 신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언니는 물론 남편까지 나서 내 신발을 볼 때마다 제발 좀 버리라고 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렇게 이상하냐고 되물어 보긴 했었는데 이제 봄도 되었겠다 맞이도 할 겸 화사 흰색 운동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 좋을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며 호시탐탐 쇼핑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현관이 지저분해서 신발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신발장 맨 위에 있는 흰색 운동화 한 켤레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여행 갔을 때 샀던 건데 맨 위에 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발이었다. '이게 아직도 있었네'라는 반가운 마음에 신발을 꺼내 자세히 보니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때가 탈 때로 타 회색깔이 되어버린 세월의 흔적이 역 역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걸 또 언제 세탁하지 어차피 운동화도 하나 살 건데 그냥 릴까 하다가, 문득 여행 갔을 때 생각도 나고 때가 좀 심하게 탔을 뿐 해지진 않았으니 빨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 '에잇 모르겠다. 일단 물에 담가놓고 보자.'라는 생각에 화장실로 가서 양동이에 물을 받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 한 스푼씩을 넣 신발을 담가놓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어느 정도 때가 빠졌다 생각이 들어 안 쓰는 칫솔로 운동화 바닥부터 겉에까지 박박 문질렀다. 때가 빠지는 느낌이 나는데 완벽하게 때가 없어지진 않았다.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렇게 구석구석 세탁을 하고 탈탈 물을 털어 빨래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건조기가 있기는 하지만 급한 것도 아니고 햇볕도 잘 드니 자연건조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신발 안쪽까지 뽀송하게 마르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잘 마른 걸 확인한 후 신발끈을 구멍에 하나씩 끼워 넣고 예쁘게 묶어 매니 꽤 괜찮은 신발의 모습이 되었다.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있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고, 집 앞 마트며 공원 산책 같은 가벼운 외출에 더없이 어울리는 봄맞이 신발이었다.


역시 세상엔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나 보다. 신발 하나를 보더라도 세탁하고, 말리고, 끈을 끼우기까지의 수고로움은 물론 중간중간 때가 다 빠졌나, 다 말랐나 확인하는 시간까지 들이고 나서야 깨끗한 신발이 완성되는 걸 보면 말이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더니, 이렇게 새삼 또 깨닫게 되는 나다.

이제 새 운동화도 생겼으니 오늘은 신발끈 꽉 조이고 더 부지런히 움직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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