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저의 생몰연도는 (1975 ~ 2075 예정)입니다.
부모님 덕에 1975년에 건강하게 태어나 50년 가까이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건강하고 즐겁게 100살까지 살다가 죽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신세 지며, 가족들 번거롭고 스스로 힘들어하며 꾸역꾸역 100살을 채우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예전에 어르신들 사이에 유행했던 말처럼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죽는다)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네요. 요즘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온통 어디 아픈 이야기, 아니면 아파서 고생했다 나은 이야기뿐입니다. 아직 한창 정신없이 회사에서 일하고, 부모님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나이에 본인의 건강까지 돌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저도 사십 대 초반까지는 건강을 자신하며 좀 막살았었습니다. 회식도 직장 생활의 일부라는 핑계하에 과음을 일삼고, 건강 관리와 운동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술과 고기들을 흡입하여 지방으로 변환한 후 제 몸의 내장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을 중년 직장인의 미덕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2016년에 돌연 부분 채식(Semi Vegetarian)을 선언했습니다. 정확히는 페스코 베지터리언(Pesco Vegetarian)이라고 하는 것인데, 육류(소, 돼지, 양 등의 포유류와 닭, 오리 등의 가금류)는 먹지 않고 해산물과 우유, 달걀등은 먹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발행한 '2021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비건식품'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92.4%는 일반식 생활자, 부분 채식 주의자는 7.4%, 완전 채식주의자는 0.2%라고 합니다.
제가 부분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비윤리적인 공장식 사육과 야만적인 도축 과정을 거친 고기를 먹지 않겠다!"와 같은 거창한 이유였더라면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 폼이 좀 날만도 하지만 그런 것 때문은 아니구요. 20여 년 넘게 술과 고기를 하도 많이 먹었더니 어느 날 새벽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관절 부위가 퉁퉁 붓기 시작하더니 몇 시간 지나서는 걷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 겨우 기다시피 하여 병원에 도착해서는 통풍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요산 수치가 높아서 통풍 발병 위험성이 있으니 관리 좀 해라'라는 경고를 수년간 무시하고 계속해서 술과 고기를 먹어댄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통풍 걸리면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더니 진정 '잎새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이 이때처럼 격하게 마음에 와닿은 적은 그때까지는 없었습니다.
통풍의 고통스러움을 겨우 견디고 있는 저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술과 고기의 섭취를 줄이시고, 적당히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무슨 막말이지? 술과 고기를 안 먹으면 뭘 먹으란 거지? 나보고 죽으라는 얘긴가?'
의사 선생님의 충고는 귓등으로 들어 넘겼습니다. 어찌어찌 치료를 받아서 통풍 증상이 완화되자마자 과거의 아픔과 의사 선생님의 충고는 잊은 채 반려질병으로 통풍을 선택한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술과 고기를 먹어댔습니다. 결과는 반년을 못 버티고 통풍 재발.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고기를 좀 줄이셨나요?"
"아니 그게 저.."
"술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드셨나요?"
"다섯 번..."
"운동은 좀 하셨나요?"
"숨쉬기..."
선생님이 저를 한심하게 쳐다본 후 치료와 처방을 해주셨습니다. 앞으로 갑자기 증상이 재발하면 먹으라는 응급 통풍약과 함께 말이죠. 절룩거리며 병원을 나서는데 안주가 없으면 소주에 맨밥을 말아서라도 술을 마실만큼 애주가였던 주당 선배가 사십 대 중반 돌연 금주 선언을 하며 해주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이 쉰까지는 부모님이 낳아 주신 체력으로 살가가는 거지만, 쉰 이후의 건강은 사십 대를 살면서 스스로 만든 여러 습관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거야.'라던 그 선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던 말이 말이죠.
지금 생각하기에 참 대견하게도 '내가 아직도 젊은 줄 착각하고 이렇게나 관리를 안 하다간 아이들도 어린데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나서는 생활 패턴에 변화를 주기로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간 고민 끝에 앞으로 세 가지를 지키며 살기로 결심을 했는데, 그것은 육류를 안 먹기 위한 페스코 베지터리안, 술은 전혀 안마실수는 없으니 통풍에 가장 안 좋다는 맥주 안 마시기,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할만하다고 생각되는 운동습관인 하루에 만보 걷기입니다.
그러면서 다짐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2075년까지 내 다리로 걸어서 화장실 다니다가 죽자고.
제가 무엇인가 시작을 잘 안 해서 그렇지, 막상 또 시작하면 나름 꾸준히는 하는 성격입니다. 그 덕에 2016년의 다짐을 7년 남짓 양호하게 지키고 있는데요. 지금도 육류는 거의 먹지 않고, 맥주는 일절 마시지 않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8~9만 보를 꾸준히 걷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습관들 중 가장 지키기 어렵기도 했고, 주위 가족과 지인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페스코 베지터리안인데요. 지금이야 고기를 멀리하는 제 식습관에 가족들과 주위 동료들도 얼마 적응이 되셨지만, 초기에는 주위 사람들이 많이들 당황하시며 어이없어했었습니다. 부분 채식선언을 하고 맞이했던 첫 추석 명절. 노릇노릇 적당히 부쳐진 동그랑땡과 쫄깃한 엘에이 갈비만 있으면 신나서 소주를 마셔대던 사위가 와서 '저는 이제 고기는 안 먹습니다'라고 말씀드렸을 때의 장모님의 흔들리던 눈빛이 7년 넘게 지난 아직도 생생하네요. 어쨌거나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도 좀 끼쳐가며 지켜오고 있는 생활 습관들이 다행히 효과가 좀 있어서, 예전에는 건강 검진받으면 수많은 건강 지표들이 정상치를 넘어서 알람 구간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몇 가지 항목만 살짝 정상치를 벗어날 뿐 대부분의 지표들은 정상치 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쩔 때는 사십이 넘어서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살아가던 제 몸에 찾아와 저를 철들게 했던 통풍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 까지도 합니다. 지금은 나름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술은 여전히 즐기고 있기 때문인지, 잊을 만 하 면 한 번씩 재발하는 통풍은 저의 바른 습관을 유도하는 손오공의 긴고아(손오공이 말썽을 부릴 때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머리를 아프게 하는 띠)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약 통풍이 발병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일차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이차에서 치맥(통풍에 가장 안 좋은 조합)을 하며, '중년의 직장인에게 뱃살은 품격이다!'를 외치며 뱃살을 두드리고 있을 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네요.
이렇게 어렵게나마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야 가까스로 철이 들어서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스스로의 바람 데로 되어서 건강하에 남은 50년을 살아가 수 있다면 그동안 무엇을 이뤄볼까를 고민도 하게 되었는데요. 50년간 살면서 젊어서는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 이루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저러 생각들을 하다가 저도 남들처럼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버킷 리스트>
(1) 종이책 책을 출판하고 작가가 되기
(2) 한강이 보이는 내 집에서 살아보기
(3) 세계 3대 오케스트라 공연을 전용홀에서 직관하기
- 3대 오케스트라(그라모폰, 2008 기준) : 빈 필 하모닉(오스트리아), 베를린 필 하모닉(독일), 로열 콘체르트헤보(네덜란드)
(4) 세계 3대 축제 참석해 보기 : 리우 카니발(브라질), 뮌헨 옥토버 훼스트(독일), 삿포로 눈축제(일본)
(5) 오로라 사냥 여행
(6) 독도 방문
(7) 프랑스 보르도 와인 중 5대 샤토(Premier grands crus classes) 마셔보기
-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 뽀이약 지역
-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Rothschild) : 뽀이약 지역
- 샤토 라뚜르(Chateau Latour) : 뽀이약 지역
-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 마고 지역
-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 그라브 페삭 지역
(8) 세계 모든 국가 방문해 보기
- 세계 국가 수(UN기준) : 195개국(정식 회원국 193개국, 옵서버 회원국 2개국(바티칸, 팔레스타인))
- 여권 발행국 기준 : 199개국
- 물론 정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기준은 준수
적고 보니 어느 정도 가까워진 것도 있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돈깨나 들어가는 것들을 잔뜩 적고 말았네요. 지금껏 해둔 노후 준비라고는 한없이 초라한 국민연금과 은행과 공동 소유 수준인 국민평형 아파트 한 채가 다인데, 현실을 망각한 감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싶은 거니까요. 암튼 2075년까지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건강하고 즐거운 노후를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