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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y 15. 2024

경계주기

산문 쓰기

나는 팔월이다.

뜨거운 햇살이며 습한 바람이다.

경계가 어설픈 유월도 미지근한 칠월도 아닌 당당한 팔월이다.

나의 뜨거움은 쉬이 젖히지 않는다.

내가 몰고 오는 습한 바람은 너의 잠을 빼앗을 만큼 강력하다.

기나긴 영향력 아래에서 너는 다른 나라를 꿈꾼다.

다른 계절을 꿈꾼다.

그러나 버티지 마라.

너와는 관계없이 알아서 나는 지나갈 것이다.

나의 경계가 미약해지고 숨 속에 물기가 적어질 즈음 다른 주기가 네게 올 것이다.

너는 그런 날을 바라며 언젠가 지나쳐 왔던, 혹은 언제나 찾아오는 계절을 회상한다.

그러하니 너도 익히 알고 있는 주기를, 이 나를 어찌하여 훔치고 닦아내고 갈아입으려 하느냐.

나는 팔월이며 경계가 뚜렷하며 주기를 반복한다.

나는 뜨거운 바람이며 습한 오르막길로서 주기를 다한다.

너는 나를 몰아가며 TV 속 주인공에게 집중한다.

심심하면 개나 키우라고 일갈하는 대사에 너의 몸이 움찔한다.

어머, 어머, 저 새끼 말본새 좀 봐.

나는 너의 이마 위로 올라타 콧등으로 흘러내린다.

너의 목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습한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

너는 나를 뿌리치고 나는 서운함을 가득 담아 문가에 선다.

나의 입김이 네 옷깃을 살짝 적시자 너는 누워 버린다.

TV는 명멸하며 꺼져버리고 번쩍하는 동력이 내게 와서 머문다.

선풍기 돌아가는 방 안에 너의 긴 한숨이 들려오고 나는 그 끝을 잡아 선풍기 날개에 매달았다.

윙윙거리는 내 한숨 소리가 너를 울적하게 했으리라.

멍한 표정으로 천정을 보는 네 옆에 나도 가만히 앉아 본다.

너는 어딜 보고 있느냐.

나 팔월의 경계를 보고 있느냐.

혹시나 어딘가 존재한다는 파란 나라의 푸른 물결을 두 손 가득 퍼담기라도 하느냐.

아니다.

어쩌면, 너는 일월을 꿈꾸는 중인지도 모른다.

일월은 짧았고 강렬했지만 차가웠다.

배가 아프다며 자신을 꼭 닮은 하얀 이불을 꼭 잡고 죽었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솔직히 너는 일월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단지, 들었을 뿐이다.

네가 본 건 일월이 떠나간 병상의 흔적이었으며, 많은 이가 부둥켜 앉아 서로를 부여잡고 부른 장송가를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너는 현상을 대했을 뿐, 실체는 거기에 없었기에 팔월의 경계에도 일월의 죽음을 곱씹는 것이다.

그래, 죽음은 주기의 강력한 동기이며 잉태의 산물임을 너는 몰랐다.

혼자가 편해서가 아니라 준비가 덜 되었다는 두려움이 네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일월을 못 찾았다며 점잖게 내치고 있음을 너는 몰랐다.

서로 이어지지 않을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너는 일월을 떠올리고 타는 냄새를 뒤로 하는 발자국을 회상한다.

나는 팔월이기에 일월의 죽음에 개의치 않는다.

차갑고 건조한 무덤에 뜨겁고 습한 바람을 불어넣어 나의 팔 아래 두면 그만이다.

그리하면, 너는 이내 일월을 털어내며 뜨거운 땀을 흘린다.

어우, 더워. 눈에서도 땀이 나.

옳거니! 네 시야를 흐리는 습기는 나 팔월의 것이다.

습기와 회상이 만나는 경계에서 흐르는 땀이다.

너의 추억은 사실 습기를 먹고 산다.

네가 진저리 치는 계절이 돌아오면 건조한 응대에 버티도록 습기를 가득 머금어 두는 것이다.

내 한숨 소리가 비로소 선풍기를 벗어나면 너도 잠에 들 것이다.

나는 거저 조용히 호흡하며 너의 낮잠에 파고든다.

너와의 경계에서 선풍기 돌아가는 주기에 맞춰 가만히 침잠한다.

네가 누리는 팔월의 낮잠이 달콤해질 수 있도록.

나는 팔월이다.

뜨거움의 경계이며 습한 바람이 부는 주기이며 일월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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