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신 거였어. 자기 자식이 죽어 간다는 소식에야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일 수 있었겠지. 몇 년만의 재회는 생각보다 짧고 조용하게 이뤄졌어.
잘 지냈냐, 나는 잘 지냈다. 엄마는 어땠냐, 신의 뜻이라도 깨달았냐고.
엄마는 잘 지낸다고 기도하는 삶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어. 언니 소식은 아빠가 연락하셔서 알게 됐다고, 이제 언니를 위하여 신의 말씀을 전해서 호흡이 멈추어도 신의 영광 아래에서 영원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더라. 예전에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갈 때처럼 신의 뜻에 매달리기 전의 인자했던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어. 엄마의 담담한 모습을 보자 나는 발끝이 저리고 손끝이 떨려왔어. 무언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눈물만 흐르더라. 아마, 나는 지쳐 있었나 봐. 화를 낼 기운도 없었던 거지.”
긴 말을 쏟아내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멀리 던져진 그녀의 시선은 언니를 떠올리는 걸까.
무던하게 읊조린 한탄 사이로 눈물 젖은 바람이 삐져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몇 개 없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나는 영생이니 영혼이니 하는 말을 믿지 않았어. 죽고 난 뒤에도 영원한 생이 있다니.
살면서도 영구적인 길이 있다면 모를까, 죽었는데 어떻게 영혼이 홀로 영원히 살겠어.
나는 언니에게 말했어. 그런 것들은 결국 죽어야만 영원하다는 말이니 믿지 말라고. 죽는다는 것 자체가 소멸이고 사멸이라고. 하지만 언니는 그런 문제들은 따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나는 우리 가족이랑 함께 살고 싶어. 생각해 봐. 내가 죽더라도 나중에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겠니? 엄마와 헤어지지 않는다니 얼마나 좋아? 나는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신을 믿을 거야.
“언니는 엄마와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언약이라는 책을 읽으며 심취했어. 나는 당장에라도 엄마를 내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언니가 즐거워 보였거든. 솔직히, 나도 기적을 바라고 있었어. 종교에 빠져도 좋으니 낫기만 하라고 말이야.”
나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야. 그래서, 언니는 다 나은 걸까?
우리가 걸어가는 골목길 사이로 실처럼 가느다란 빛살이 스며들었다.
새벽이 오는 모양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그녀의 호흡 사이로 찌르렁대는 벌레 소리가 섞여 들었다.
“언니는 죽어버렸어. 기적은커녕 언니의 유언도 듣지 못했어. 수술도 잘 버텼으면서 회복실에서 눈을 뜨지 못한 채 가버렸어.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언니는 엄마와 함께 기도를 하고 나에겐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어. 바로 전날에도 언니는 영생을 꿈꾸며 밝게 웃었지만 결국 언니는 우리의 곁을 떠나 영원히 멀어졌어.
통곡하는 아빠를 보며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봤어.
한참이 지나 진정이 되자 나는 엄마에게 이제 그만 가달라고 부탁했어. 신의 말이라는 그 책과 함께.
어차피 엄마는 가족에서 빠진 지 오래니까. 엄마는 살며시 웃으며 그러더라.”
언니는 편하게 갔을 거야.
고통 없이 갈 수 있었으니 그것도 신의 보살핌이란다.
그녀는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나는 눈치를 보며 그녀의 얼굴을 살핀다.
"아냐. 신기하게도 되려 냉정해졌어. 신이 좋아 가족을 버린 엄마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을 때, 내 몸의 모든 피가 얼어버린 듯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어. 그저 어서 이 사람을 보내고 언니의 장례를 치러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