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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y 26. 2024

기나긴 안녕_하

환상기담_3

환상기담


기나긴 안녕_하


하얀 볼살과 빨간 입술 위로 새벽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가 오기 전의 모습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나는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찾아오는 새벽 너머로 시선을 좇으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영혼이 존재했다며 신을 찬양할까. 하지만 아직도 언니를 만나지 못했어.”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마주 보았다.

참 이상한 소릴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언니가 오죽 그리우면 저럴까.

당연하지. 넌 아직 살아 있잖아.

“바보야. 나는 죽었어. 그래서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한 거야. 너는 그걸 잊었나 보구나.”

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화살에 맞은 듯 멈춰 섰다.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아무렇지 않게 옅은 미소를 띤 그녀를 보며 나는 울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울음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아......

외마디 탄성만이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일 뿐, 온몸을 파고드는 전율을 느끼며 나는 울었다.

바삭바삭 몸이 말라비틀어지며 온몸으로 꺼이꺼이 울었다.

서러웠다.

왠지 그녀가 죽었다는 걸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수정액으로 지워버린 기억이 굳어졌다가 다시 긁어낸 것처럼 선명해졌다.

“울지 마. 죽은 건 난데 왜 네가 울고 그래?”

그녀가 나를 위로했다.

옳은 말이다.

내가 왜 우는가? 죽은 그녀를 만날 수 있으니 안도해야지.

그런데, 이상하다.

죽었다는 그녀가 어떻게 내 앞에 있는 거지?

“어떻게 네 앞에 나타났냐고? 정말, 너는 둔해. 이건 꿈이야. 넌 지금 꿈을 꾸고 있어.”

나는 멍하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꿈?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건가?

“멍하니 서있지 마. 우리 갈 길이 바빠. 어서 가자.”

그녀는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설마, 너. 언니가 그립다고 스스로...

“아냐, 멍청이야! 그건 사고였어. 내가 얼마나 삶을 좋아했는데?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고 내 몸이 붕 뜨는 걸 느낀 그때, 나는 죽었어. 그 후로 나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오히려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나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나는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안녕을 말하기로 했어. 기나긴 안녕을.”

안녕을 고하기 위하여 나를 찾아왔다는 그녀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온 그녀는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그 기나긴 시간을 위해 우린 안녕을 말해야 해.”

하지만, 그녀가 나를 이렇게 만나러 왔다는 건 저세상이 존재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녀는 너무나 생생했고 공간은 익숙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그리고 쓸쓸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꿈은 환상과 절망의 경계선에 있어. 우리가 살면서 가진 꿈들이 비루한 삶을 버티는 환상이었듯이, 지금 이 꿈도 우리가 바라는 희망의 이면에 절망이 존재함을 비추는 환상이야.

이건 살아있는 네가 꾸는 꿈이지만 내가 꾸는 꿈이기도 해. 죽은 자가 꾸는 꿈.”

말문이 막히도록 이상한 말을 쏟아낸 그녀는 잡고 있던 나의 손을 놓았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인 얼굴보다 머릿속이 문제였다.

궤변에 가까운 그녀의 말들로 혼란스러워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꿈을 꾼다는 표현에 소름이 끼쳐 정말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는 가야겠어. 죽으면 신을 만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언니는 그토록 바라던 신을 만났을까? 

영원의 생을 약속받았을까? 언니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데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누구와도 재회할 수 없구나. 살면서도 허망하더니 죽어서도 텅 빈 존재가 되었네. 얘, 진짜는 어디 있었을까?”

그녀는 중얼거리며 홀로 걸어갔다.

나는 혼자 걷는 그녀의 곁에 설 수 없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겁이 나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어졌고 그 목소리가 듣기 힘들어졌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웅웅대며 귀를 어지럽히고 공간에 울려댔다.

절망에 빠진 백수광부의 처가 저랬을까.

죽음을 이기지 못한 신화의 소멸을 슬퍼하며 공후를 탔을까.

“나는 갈게. 너는 진짜를 찾길 바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영혼일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걸. 살아야 알 수 있는 거였어. 살아 있어야 볼 수 있는 거였어. 

안녕. 기나긴 시간들아, 안녕.  기나긴 시간 동안 안녕.”

그녀의 모습은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져 목소리만이 남았다.

분명 새벽이 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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