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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n 02. 2024

존이라는 남자

산문 쓰기

존은 가만히 앉아 A를 생각했다.

어디선가 사라지고 말 짧은 사념이겠지만 그 꼬리를 계속 감아가며 회상하고 싶었다.

그건 일종의 슬픔이었다.

가슴의 어느 곳이 턱 막힌 것처럼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지 않기 시작한 때부터 존은 나이를 들기 시작했다.

내게 왜 이런 감정이 찾아온 것인지 탐색하기보다 지금 느끼는 것에 충실히 몸을 맡긴다는 것은 더는 그가 어리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세월이 흐른다는 건 이제 너는 젊지 않다는 것,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다니.

입을 적게 벌리고 골방에 들어앉아 점잖게 지갑을 열 줄 알아야 한다.


"이건, 지랄 맞은 업보의 일종이야."

존은 A의 청춘을 회고하며 정성스럽게 원고지에 그렇게 적었다.

20년 전의 B와 C들도 A와 마찬가지로 애달프고 지독하게 살아갔다.

그들 역시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지하철의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존은 왜 그때 알지 못했던 건지 참회하였다.

"윤동주에게는 먼지를 닦아내 비춰 볼 청동경이라도 있었지. 나는 그저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어."

그것은 소리 없이 가슴으로 울어대는 일, 고인 눈물이 흐르지 않고 막힌 가슴의 통로에서 둑에 담겨 줄줄 새 버리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존은 지쳤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A는 웃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존은 원고지에 그렇게 적었다.

어딘가 고장 나기 시작한 경고음이 삶이 삐걱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젠 도망갈 수 없는데 어쩔래?

퇴로가 막혔다고.

거대한 샤워기를 틀어 삶을 통째로 두들겨 맞아야 한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존은 알고 있었다.

A는 뒷걸음을 멈추어야 하고 B와 C를 망상하며 혼자 울어야 한다는 사실을.

"A의 동전은 영원히 한 면만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만날 수 없는 영원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존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도록 A의 동전을 생각했다.

20년 전, 그들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동전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진실을 믿기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잠에 들기로 했다."

존은 원고지에 이렇게 적었다.

예전에 A가 그랬듯이 슬픔을 지우기 위하여 침대를 정리했다.

이미 말했듯이, 존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잠에 들어 감정을 죽이고 다음 날을 맞으면 다시 살아날 수밖에.

그리고 혹시 찾아올 세상의 멸망을 가지런히 누워 소망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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