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수필을 쓰기 위하여 찾아온 것처럼
처음엔 아주 지독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에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 공황이라는 신경증은 목숨만 접수하지 않을 뿐, 매우 고약하다.
갑자기 숨이 차오르는 듯, 어지럽거나 현기증으로 비틀거릴 것만 같아 불안해진다.
금방이라도 이 세상과 작별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가득 퍼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르는 척 행동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게 기지개를 켜고 괜히 웃어보기도 한다.
이 녀석에게 주도권을 뺏겼다가는 바로 공격이 들어오기에 나름의 기만 전술을 써보는 것이다.
이 공황이라는 놈이 날 찾아온 날은 2019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아직은 여름의 미련이 끝자락에 남아 더웠던 9월의 어느 날. 나는 공황의 기습 폭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근무하며 빵과 우유를 마시고 있었는데, 곧장 손에 들린 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정도로 급작스러웠으며 두려웠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명치에서부터 조여 오는 긴박함, 발끝까지 전해지는 오싹함은 나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었다.
이러다 죽는구나.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으며 병원으로 가기 위하여 황급히 건물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내가 안쓰럽다.
건물을 나설 시간 동안 스트레칭이나 숨을 고를 여유가 분명히 있었다.
천천히 이성을 찾아 살아 있는 느낌에 집중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상상일 뿐, 당시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공포를 맞닥뜨렸으니 여유를 어떻게 부릴 수 있었겠나.
그 후로 나의 생활은 많이 변하게 되었다.
건강을 위하여 술과 담배를 치워버렸고 운동을 시작하였다.
공황으로 인한 신체화 증상은 참으로 힘겨워서 자연스럽게 소식하게 되어 체중도 감량하게 되었다.
생각을 전환한다면 전화위복이기도 하다.
92Kg에서 78Kg가 되었고 예민한 성격을 고치기 위하여 상담 치료를 병행하니 스스로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생활에 집중하는 중이다.
예민함을 많이 버렸으며 모든 일에 이유를 찾거나 따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현상과 동기를 명확하게 구별하고자 애쓰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중이다.
다행히 5년이라는 세월 동안 훈련이 잘 되어 아내에게 칭찬받는 일도 늘었다.
요즘의 나는 여전하다.
아직 내게 남은 신체화 증상은 지속적으로 나는 찾아온다.
다만, 무심해지려 하다 보니 예전보다 많이 읽고 쓰게 되었다.
공황장애는 분명히 나를 짜증 나게 하고 격정에 휩싸이게 만들어 불안에 떨게 한다.
그러나 극복하려는 과정을 통하여 나가 삶을 더욱 부여잡게 하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에 대하여 고찰하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상냥한 성격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게 만들어 준 것도 공황장애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하니, 참으로 애증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 신경증 탓에 괴롭지만 덕분에 내 생활은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다스리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과제가 남았다.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는 이 신경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