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난 겨울*
엊그제였던가.
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멍하니 달력을 보고 있으니 이제 실감이 조금 나더라.
그러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가 아무리 소원해졌다 하더라도 연휴에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 생각이 식어 버렸는데 솔직히 아버지 당신이 미워서 그랬다.
평생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태도 탓에 지금에 와서는 아주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그분은 가족에게까지 왜 그러실까 생각하다 보니, 돌아가신 조부모님이 떠올랐다.
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인가.
돌아가신 그곳에서는 편찮으실 일이 일절 없을 테니 다행이지만 자식 농사는 실패하셨으니 그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으시겠지.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우리 형제에게 보여준 태도와 돌아가신 두 분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였다.
예전에 백부님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임종을 두고 하였던 말이 생각난다.
“웃으면서 편히 가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실소가 절로 나온다.
백부님은 자신이 두 분을 달 모셨다고 착각하나 본데, 실로 조소가 지어질 따름이다.
할아버지께서 누워 계시던 이불의 더러움과 눅눅함이 떠오른다.
백모라는 양반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불 세탁도 게을리했다.
백부가 그 모양이면, 큰 며느리라도 제대로 했어야 맞는데 두 사람 모두 사람 노릇 하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당시에 나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조부님의 방을 청소하고 세탁을 직접 하시던 일이 떠오른다.
막내며느리가 없으면 제대로 모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하기사, 백부는 원체 염치없는 인간이긴 했다.
동생들의 돈을 빌렸으나 끝내 갚지 않았고 부모에게도 돈을 빌려 달라고 행패를 부렸다.
명절에 술에 취해 할머니에게 선풍기를 던지고 욕지거리를 내뱉던 패륜의 행위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한다.
백부의 자식들과 눈을 마주쳤었는데 그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래, 어쩌겠어.
조부모님 두 분이 그렇게 자식을 키운 탓이니 감내하실 수밖에.
언젠가 숙부는 술에 취해 백부에게 따져 물었다.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백부가 숙부의 귀를 물어뜯어 버렸다.
정말, 기가 차더라.
이렇게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지만 그의 아내인 백모나 그 자식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꽉 물고 백부는 할 도리를 다 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 어머니의 주장대로 조부모님을 우리 집에서 모셨다면 어땠을까.
가정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아쉬운 건 감출 수 없다.
나도 불효한 자식이지만 백부만큼은 아니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부모를 공경했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사람답게 살기를 거부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서 받을 재산이 없으니 그 점에서는 자유롭다.
게다가 아버지의 특이한 성격 탓에 부자간의 정도 부족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연휴인데 안부 전화를 못 드릴 정도는 아니다.
이딴 걸 고민하다니, 자식이란 원래 이런 존재인가.
집에서 보내는 택배가 부담스럽다는 건 그 안에 부모라도 들어있을까 봐 그런 걸까.
그래,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겠지.
약아빠진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자식이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닐까.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일을 돌아가신 후에야 죄책감으로 퉁쳐 버리는 약은 놈들.
기왕지사 약은 놈이 되었으니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을 잘 먹으며 두 분에게 안부 인사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