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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09. 2024

내 곁에 가장 가까운 이

산문 쓰기

어느 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토록 찬란한 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죽음을 생각했다.

이처럼 따뜻한 태양 아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 차가운 땅에 묻혀 아침 이슬이 관짝을 두드리게 되겠지만.

어쩌면, 활활 타들어가는 불길 속에 내던져진 채 오장육부가 녹아내리게 되겠지만.

적어도 죽음의 터널로 들어갈 때에는 눅눅하고 춥지 않기를.

따뜻한 에너지로 내 몸을 감싸 외투 없이도 충분히 걸을 수 있기를.

창밖의 태양이 조금씩 손길을 접어 돌아서기 시작할 때 곧 찾아올 어둠을 떠올렸다.

항상 찾아오는 존재,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공간, 그리고 내가 곧 방문할 시간.

성당의 지붕 위에서 십자가가 눈을 뜬다.

내 곁에 가장 가까운 이, 신이라고 믿었거늘 창밖의 태양이 등을 보일 때 다른 존재가 더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내 곁에 가장 가까운 이, 죽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항상 나를 잡고 있는 이, 죽음이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처음 심장이 만들어질 때 그 심장을 손에 쥔 이, 죽음이었다.

어째서 신이 우리에게 내려왔는지 이유를 만들어준 이, 죽음이었다.



나의 장례식엔 가족만이 모여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

나와 죽음이 함께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이 북적이면 시끄럽기만 할 뿐.

많은 사람의 눈물도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이를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못했다.

내 육체를 아끼고 내 정신을 사랑했을 뿐.

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이, 죽음만이 태연하게 날 바라보며 가자고 재촉하겠지.

어둠의 거대한 발이 창문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태양이 등 돌린 방향에서 고개를 저어 내 옆의 죽음을 바라본다.

밝을 때 볼 수 없는 이, 죽음이 어둠 속에서 더 까맣게 반짝인다.

항상 내 어깨를 감싸는 이, 죽음.

언제나 장송가를 부르며 찬송하는 이, 죽음.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철저하게 외면받는 이, 죽음에게.

나의 마지막 때에는 따듯하게 그의 손을 잡고 조용히 걸어 나가리.

평생 동안 홀로 지냈을 이, 죽음의 고독을 기리며 장송가를 부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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