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쓰기
여전히 동네 길고양이가 불꽃처럼 아른거리는 그 길 앞에서 나는 빈 수레를 잠시 내려놓았다.
낡은 구멍가게가 유령처럼 고개를 내밀고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길고양이들이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방지턱을 넘어 덜컹거리는 소음을 남기고 떠났다.
물론,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형님의 소식을 전해 들은 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날 저녁엔 일찍 퇴근해 집에서 화양연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양조위의 공허한 시선 위로 자욱한 담배연기가 가득했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박주사의 번호가 액정화면에 보이자 나는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전 직장 동료의 전화가 반갑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장만옥의 치파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물형님의 집은 구멍가게의 왼 편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과 쪽방 사이에 있었다.
하나, 둘, 셋, 네 번째 집.
찌그러진 양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비좁은 주방 너머로 협소한 방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나는 주인이 없는 방에 들어가면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낡은 슬리퍼와 운동화 하나.
그 옆에 나의 신발을 벗어두고 불을 켰다.
형광등의 박동 소리가 들리며 유적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것은 낡은 신문지나 낙엽의 냄새였다.
최주평.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겨울이었다.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 지원 사업의 대상자로 처음 형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전히 꿈이 있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 형님이고 고물을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니 '고물형님'이라고 불러 달랐다.
주방엔 냄비 두 개, 그릇 두 개, 숟가락 세트 하나와 작은 가스버너가 전부였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수레에 싣고 기한이 지난 라면은 버렸다.
어차피 고물형님의 집엔 냉장고가 없었다.
그의 옷가지도 세 벌이 전부였고 속옷도 딱 그만큼이었다.
헌옷 수거함에 넣으니 그에겐 이불도 옷도 전부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그가 공부하던 책들을 책상에서 빼내었다.
오래된 법전과 영어 책 역시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실었다.
이제, 그의 흔적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방엔 또 다른 고물이 들어와 살게 될 것이다.
그의 짐으로 가득한 수레를 끌고 고물형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고물상으로 향했다.
사장은 고물형님과 친분이 돈독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마지막 짐들에 가격을 매겼다.
그리고 우린 버려질 그의 유품들을 골라 태웠다.
폐차장의 조용한 구석에서 고물형님의 녹슨 추억이 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한 방에서 함께 먼지가 쌓였을 오래된 쓰레기가 까만 숨을 토해냈다.
한 때 활기찼을 금속 심장이 이제 수십 년 간의 봉사를 마치고 긴 숨을 쉰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았다.
봄의 태양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이별을 고하고 이 고물에 박힌 볼트들이 빠져나가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었다.
낡은 스피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사장과 나는 태우던 담배를 입에서 떼고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로소, 늙은 기계가 임종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