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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16. 2024

이상한 꿈 그리고 존

산문 쓰기

이상한 꿈을 꾸었다.

A와 B가 만나 서로에게 리모컨을 겨누었다.

둘은 조그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후에는 전원을 끄더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우린 너를 위해 내가 이만큼 자리를 내주는 것에 인색해졌다.

사는 일이 지쳐서 널 만나느니 홀로 있겠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네 푸념도 들어주고 네 꼴값 떠는 모습도 참아주는 건데 그러지 못하다.

퇴근하면 저녁이고 집에 가면 잠에 들 시간만 생각한다.

굳이 내가 너와 함께 술을 마시며 너의 자랑, 너의 참견을 들어야 하니?

가진 자가 부럽고 못 가진 만큼 벌어야 하니 노동에 진을 빼앗긴 육체에 그것을 배길 정신을 담지 못한다.

혼자가 좋은 게 아니라 혼자가 나아서 관계 맺기가 귀찮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랑도 기계적으로 하고 싶다.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전원을 넣을 순 없을까.

사랑? 네가 외로워서 혹은, 부족한 열망 때문에 갈구하는 감정이라면 그것은 진짜일까?

딱, 어느 정도로만 원하는 너의 감정에 대해서 말이야.

네 어리숙한 LED 전광판에 속아 함정에 빠질 사람은 누굴까?


이상하고도 매우 용감했던 B가 떠오른다.

B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은 그의 곁에 아내가 없지만 사별한 것은 아니다.

아내와는 10년 전에 이혼하였다.

봄의 햇살이 가득하던 작년 이맘때였다.

아내는 그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미안하다고도 하였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멈춰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하고 있어서 다른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B 사장은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보자 현실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차라리 고마운 일이다.

그 몰래 정을 통하지 않고 솔직히 말해주었으니.

그래서 아내의 바람대로 이혼하기로 하였다.

16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일이 아쉬웠으나 그동안 아내가 가정을 위해 고생한 것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B는 그 후로 아이들을 혼자서 잘 키워냈다.

아이들도 사춘기 시절을 잘 견디고 착실한 성인이 되었다.

전 아내도 잘 살고 있다. 그녀가 못 살길 바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남의 인생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미련한 짓이다.

적어도 그녀는 아주 용감하게 선택했다.

부정을 저지르기 전에 차라리 이혼을 선택하며 솔직하게 용서를 구했다.

B가 아내와 잘 헤어진 덕분에 두 아들은 친모와의 관계를 어색해하진 않는다.


그래, 잘 알고 있다.

가정이 있는데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는 건 좆같은 일이다.

그러나 정말 사랑한다면 그의 아내처럼 솔직하게 말하고 헤어질 용기가 있어야 한다.

두려워서 혹은 비겁해서 찌질한 선택을 고집하는 멍청이들 보단 낫다.

내가 이상한 꿈에 이어 이 용감했던 B 부부의 이야길 들려주었을 때, 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시발 진짜 사랑한다는데 어떡할 거야. 빨리 헤어지고 아이들을 챙겨야지."

외도를 하기 위해서 모인 바보들이나 하룻밤 사랑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들이나 모두 똑같이 조그 다이얼이 달린 리모컨을 갖고 싶겠지.

진짜 관계를 감당할 용기는 없고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자격지심을 풀고 싶은 욕망만 남은 껍데기들.

존은 갑자기 김춘수의 시집을 읽으러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A가 정말 원하는 게 꽃인지 리모컨인지 궁금해. 아마 돌아오는 월요일에 알게 되겠지."

무슨 말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존은 떠나 버렸다.

나는 홀로 앉아 입술을 샐죽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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