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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pr 14. 2023

어머니의 택배

불효자 전상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 집 문 앞에 웬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테이프에 칭칭 감긴 채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아, 어머니가 보내셨겠구나.

굳이 운송장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리 말렸지만 어머니는 결국 택배를 보내신 것이다.

흐음.

나는 문을 열고 박스를 들여다보았다.

손에 무게가 묵직한 것이, 분명 여러 가지 반찬과 그것을 둘러싼 아이스 팩이 많이 들었을 테다.

역시, 생각처럼 무거웠다.

겨우 끙끙거리며 거실로 옮겨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상자는 참 못 생겼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노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기묘한 생김새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거 참.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알아서 잘 챙겨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지 한참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를 챙기지 못해 걱정이 되시나 보다.

이제는 힘도 드실 테니, 그만 보내라고 말씀드려도 조금만 보낼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그래, 어머니 고집이 황소고집이었지.

게다가 어머니 당신의 마음이 보내야 편안하시다니 그냥 두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말이다.

내 나이가 마흔이다.

이젠 이 박스를 챙기고 반찬을 넣고 아이스 팩을 손수 싸서 우체국에 들르실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될 나이가 되었다.


이 반찬 박스는 거의 이십여 년 동안 지속된 것이다.

내가 서울로 상경하며 시작되었는데, 귀찮아도 끼니를 거르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담긴 선물이다.

처음 어머니의 반찬을 받았을 때에는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시들어 가더라.

보내주신 반찬들을 먹으려면 내가 밥을 지어먹어야 했는데 그게 귀찮았던 것이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도처에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먹을 음식들이 언제든 배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의 반은 버려졌고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반찬을 받기가 꺼려졌는데 나중엔 미안한 마음마저 희미해지게 되었다.

싫다는데도 계속 보내는 어머니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 이게 바로 자식이라는 존재일까.

그 후에도 보내지 말라는 나와 보내는 어머니 사이의 작은 전투가 종종 벌어졌다.

어떤 날은 짜증이 나서 박스 채 버린 적도 있었는데, 결국 나의 죄책감을 덜어내지 못했다.

한밤중에 나가 다시 주워왔던 것이다.

이제야 어처구니없었다며 웃지, 그 당시에는 그러한 사소한 일로도 고민이 되었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반찬을 보내셨지만 점차 주기가 길어졌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은 후에 체력이 떨어진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더는 반찬을 보내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스티로폼 박스 안의 반찬통들을 꺼내 냉장고에 넣었다.

이미 아내가 만든 음식들이 있어서 어머니의 반찬까지 넣으니 냉장고의 빈 공간은 어느새 가득 메워졌다.

나는 그것을 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무언가 어이없지만 즐거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무슨 반찬을 이렇게 많이 싸셨어?"

어머니는 호호 웃으며 그게 뭐가 많냐고 되물으셨다.

"근데, 아들. 그 반찬들은 바로 냉장고에 넣고 고기는 냉동실에 들어가야 해."

"거기에 부침개도 있다, 참. 그건 오래 두지 말고 바로 먹는 게 좋아."

언제나 그렇듯이 어머니는 반찬을 냉장고에 바로 넣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고기도 종류별로 스테이크용, 안심, 꽃등심 등 무엇부터 먹어야 하는지 다 알려주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황토 찜질방에 가야 하신다나.

항상 듣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대중가요처럼 가사가 있는 것 같다.

언제 들어도 같은 내용이니까.

이제 결혼도 했으니 반찬을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더는 보낼 것도 없다고 하신다.

물론, 그 말도 도돌이표처럼 같은 대꾸이다.

분명히, 또 보내실 게 빤하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부침개를 꺼내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살짝 두르고 부침개를 데웠다.

뜨거운 열기가 부침개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데 전자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내가 퇴근한 것이다.

"자기야, 왔어?"

"응, 근데 맛있는 냄새가 나네? 와, 웬 부침개야?"

"이거, 엄마가 보내셨어."

아내는 깔깔 웃으며 반찬이 많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냉장고를 열어 보더니, 장모님께 드릴 소고기와 반찬을 발견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님, 반찬 너무 맛있어 보여요."

"잘 먹을게요, 어머님!"

그 사이에 부침개가 다 익었다.

나름대로 솜씨를 부려본 간장 양념에 청양 고추를 잘게 썰어 넣었다.

거기에 빨간 고추도 찾아 잘게 썬다.

아내가 매콤한 걸 좋아해서 잊지 않고 추가하는 재료들이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이 부침개와 어머니의 반찬이 될 것 같다.

어머니가 보내신 반찬을 오물조물 씹으며 생각해 본다.

어째서 자식들은 부모님의 택배가 반갑지 않은 걸까.

마치 그 택배에 부모님이라도 들어 있을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어 받기 싫었던 걸까.

점점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언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란 쉬운 것들이다.

반면에 부모님의 택배엔 우리 자식들을 위한 사랑과 정이 담겨 있다.

아, 그래서 어려운가 보다.

하지만, 적어도 맛있게 먹고 감사하는 일이라도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부침개를 양념에 찍어 먹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정확하게 집어내 말할 수도 없다.

이번엔 내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도 댁에 계실 시간이니 이참에 잘 되었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니에게 거는 전화의 발신음이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응, 엄마. 혹시,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이 어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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