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아 정씨 Apr 03. 2020

딸아, 사재기 아니란다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

3월 16일(격리 1일째) 월요일 흐리고 비


지난주 목요일에 발표된 전격적인 휴교령이 오늘부터 시행됐다. 그 사이 학교뿐 아니라 슈퍼마켓과 약국, 병원을 제외한 모든 상점을 닫는, 정부의 초강력 조치가 취해졌다. 며칠 내로 이동을 제한하고 군대가 투입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어제부터였다. 일요일 미사를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100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했기 때문에 대성당에서 신자 100명을 선착순으로 끊어 미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가짜 뉴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내가 본당의 주임신부님으로부터 미사 취소를 알리는 단체 문자를 받은 것이다. 거의(?)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전염병 때문에 미사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지만 종교 탄압이라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한국인이 순종적인가, 프랑스인이 순종적인가. 어제 오후의 장면을 보면 더 헷갈린다. 


오랜만에 따뜻한 봄 날씨였기 때문에 집 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우리 여섯 식구는 자전거와 탁구채, 야구 글러브, 간식 등을 싸들고 데메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역시 주차장에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있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였지만, 아무리 야외라 하더라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보면 코로나 19에 대한 인식 차이가 한국인들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일요일 오후 데메 공원의 그 평온해 보이는 풍경은 다소 슬퍼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뛰노는 아이들과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이 뒤섞이면서 마치 태풍전야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했다. 대부분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을 저들이 이동의 자유 제한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기나 할까. 나는 30개월 동안 당해봐서 알지 ~ 


휴교령과 상관없이 월요일은 원래 장보는 날이다. 아내는 휴교령 첫날이어서 교직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 오전에 막내를 재우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혹시 막내가 깨어나면 좀 놀아주고 있으라는 당부를 첫째에게 해뒀다. 월요일 아침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슈퍼마켓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두 바퀴 정도 돌다 자리를 찾았을 정도였다. 한국 포털사이트의 외신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화장지를 사기 위해 몸싸움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차 보이는 게 눈에 띄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장갑이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어도 얇은 고무로 된 일회용 장갑을 낀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스크 대신 목도리를 감아 입과 코를 가린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마스크를 쓰기 싫어 안 쓴다기보다 구할 수 없어 못 쓴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장지, 밀가루, 스파게티, 계란 등이 주 공격 목표인 듯했다. 진열대의 빈자리가 확연하게 보이는 상품들이었다. 나는 최대한 사재기를 하지 않기 위해 심리적으로 노력했다. 평소처럼 하자. 오히려 평소보다 덜. 원래 버터를 살 때는 250 그램 짜리 4개를 집어 드는데, 오늘은 3개만 들었다. 모두가 평소처럼 행동한다면 물품이 부족해 생기는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소극적 행동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딱 봐도 사재기인 것으로 보이는 캐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덩치보다 더 큰 캐디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계산대에는 내 앞에 10명 정도가 줄을 서고 있었다. 20개 정도 있는 계산대 전체가 열려 있는 모습도 처음 봤을 뿐 아니라 각 계산대마다 이렇게 긴 줄이 서 있는 것도 처음 봤다. 첫째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막내가 깼다고 말해줬다. 돌아가는 길에 아시아 식품점을 들러 라면을 사서 부랴부랴 집에 돌아갔다. 라면은 종류별로 총 9개 정도였는데 그걸 두 팔에 가득 담고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첫째는 "사재기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아니, 보통 이 정도 사"라고 답했다. 


점심을 먹고 첫째, 둘째, 셋째를 식탁에 둘러앉게 했다. 학교 놀이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레벨은 또 어떤가. 첫째는 중학생, 둘째는 초등학생, 셋째는 유치원생이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정원에라도 나가서 햇살을 쬐고 싶었지만 어제 그 해님은 어디로 갔는지 오후 들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학교 통신문을 받는 사이트가 다운되는 바람에 숙제를 알 수가 없다고 투덜댔다. 다행히 첫째와 둘째는 월요일 숙제를 노트에 적어두어서 그걸 하기로 했다. 셋째는 글씨 쓰기 연습을 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레고나 만화영화가 아닌 경우 최대 집중력 시간이 5분을 넘기지 못하는 셋째를 선생님도 아닌 내가 다룬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째와 둘째의 숙제가 끝나고 우리 넷은 셋째가 하던 종이비행기 접기 놀이를 이어갔다. 각자 접은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체육 활동은 이 정도였다. 


아내는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학생들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숙제를 일주일 단위로 내주고 학생들이 숙제를 제출하면 고쳐주는 일을 집에서 하면 된다. 아내는 처가인 뽕도라에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수요일부터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지므로 만약 뽕도라에 가기로 한다면 내일 출발해야 한다. 뽕도라는 정원이 넓고 워낙에 시골이어서 아무리 오래 지내도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장인 장모와 함께 지내면 식구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블루아에 있기로 결정했다. 언제 다시 휴교령이 철회될지 모르고 아내가 다시 학교에 가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나 역시 우버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사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거의 통행금지 수준의 조치가 내려진 이상 현실적으로 택시를 타려는 수요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두 세건 하려고 뚜르까지 가는 것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내 처지에서 일을 못하게 되면 타격이 크다. 당장 집세 걱정이 앞섰는데, 구글 첫 화면에서 "마크롱이 집세에 대한 일시 정지 조치를 내리다"는 제목을 읽었다. 뭘 어떻게 정지한다는 것인지 자세한 내용은 읽지 못했지만 서광이 비치는 듯한 한 줄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을 것이다. 장 보러 가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학교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저 날씨가 푸근해지길 바랄 뿐이다. 정원에서 둘째와 캐치볼이라도 할 수 있게 말이다. 캐치볼뿐 아니라 잔디 깎기 등 겨우내 방치하다시피 했던 화단을 관리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런 낙도 기대할 수 없는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방콕 첫 날을 마무리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