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2
3월 29일(격리 14일째) 일요일 흐리고 강한 바람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바이러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서머타임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 0시를 기해 서머타임이 실시돼, 이제 한국과 시차가 7시간으로 줄었다. 아침에 잘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줄어든 것이다. 처음 며칠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겠지만 그 1시간이 왜 이리 아쉬운지. 이론적으로는 평소에 자던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어제와 똑같은 시간을 잘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되질 않는다. 원래 12시에 침대로 향하던 몸이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서머타임 시작되고 초반에는 새벽 1시경에 침대로 향하게 된다. 일어나는 시간은 평소보다 1시간 빠를 테니 피곤할 수밖에. 누가 뭐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서머타임은 시작됐다. 여름 맞이를 해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오늘 날씨만큼이나 춥고 쌀쌀해서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불어대는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꼭 격리 때문에 안 나간 게 아니다. 어제와는 딴 세상인 것 같은 날씨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대신 아내와 첫째 아이 방 꾸미기를 마무리했다. 페인트칠을 하느라 바닥에 설치했던 마루 보호용 대형 비닐막을 뜯어내고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였다. 새로 칠한 벽은 나무랄 데 없이 깔끔했지만 마룻바닥은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지저분해 보였다. 잠깐 사라졌던 아내가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집주인이 놔둔 건데 사용해도 되겠지?” 아내의 양손에 딱 보기에도 안 쓴 지 10년은 돼 보이는 왁스 칠용 기계와 왁스통이 들려 있었다. 왁스를 바르고 기계를 돌리자 마룻바닥의 색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냄새는 고약했지만 방은 더 이상 이전의 방과 비교불가의 상태가 됐다. 내친김에 계단의 마루도 왁스칠을 했다. 기계를 돌리는 아내의 옆에 쪼그려 앉아 왁스칠을 하고 있자니 어렸을 때 학교 복도에 일렬횡대로 무릎을 꿇고 양초를 문지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마도 장학사가 오기 전날이었겠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청소 아줌마 한 명이 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네.” 학생들이 동원됐다는 사실보다는 대청소의 이유가 장학사의 방문이었다는 점이 놀라운 것이었다. 왁스칠을 하자 첫째의 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시크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격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벽 색깔이 밝아지고 마룻바닥 빛깔은 선명해지니 방 분위기가 한층 화사해졌다. 침대와 책상, 옷장 등을 배치했다. 벽에는 딸이 아끼는 사진과 액자들을 줄줄이 걸어두었다. 딸은 대충 정리가 마무리되자마자 도배공사로 해체했던 플레이모빌 장난감을 다시 책장 위 원위치에 돌려놓았다. 거기에는 딸이 창조한 세계가 들어 있다. 아빠와 엄마가 있고, 아이들이 있으며, 거실, 식당, 부엌은 물론 구성원 각자의 공간이 있다. 각 공간에는 그 공간의 주인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놓여 있다. 부모의 방에는 화장대가 있고, 아이들의 방에는 책상과 킥보드 같은 소품들이 있는 식이다.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들 중에는 갓난애도 있고 중학생쯤 되는 아이도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가족의 구성이다. 언젠가 딸은 아이패드를 빌려달라고 하더니 사진 수십 장을 찍어 스틸컷을 이용한 수동(?) 영상을 만들었다. 이어 찍은 사진들을 손가락으로 밀어 움직이면 영상처럼 되는 효과를 냈다. 어렸을 때 두꺼운 책의 한 구석에 만화를 그리고 빠르게 넘기면 인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 말이다. 아빠가 차를 타고 출근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다. 첫째의 상상력은 가끔 나를 놀라게 한다.
타인과의 관계 단절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아내에게 친구들과 틈 날 때마다 전화를 하면서 안부를 주고받으라고 조언을 했다. 덕분에 아내는 오후 내내 부재중이었다. 전화통을 한 번 잡으면 쉽게 끊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프랑스의 바이러스 사태가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도 확진자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카카오톡으로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 가운데 위험지역에 다녀와 자가격리를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주변의 확진자를 알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나의 한국 인맥이 대구 경북과 인연이 없어서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벌써 여러 명이 확진을 받았다. 아내 외할머니 동생의 남편, 즉 이모할머니의 남편이 감염됐고,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감염됐고, 대학 친구의 아버지도 감염됐다. 이들 확진자들은 대개 파리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아내는 이 도시에 사는 친구들 주변에도 의심사례가 꽤 있다고 전했다. 나는 확진이면 확진이고, 아니면 아니지 왜 자꾸 “감염된 것 같다”라고 표현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고 코로나 19와 비슷한 증상을 보여 병원에 연락을 해도 숨을 쉬기 곤란해질 정도가 아니면 병원으로 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말이다. 심각한 상태에 가서야 확진 판정을 받게 되니 치사율도 더 높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프랑스 정부는 일일 브리핑에서 확진자 전체 수와 24시간 이내 확진자 수, 전체 사망자 수와 24시간 이내 사망자 수를 발표하는데 여기에 중증 환자의 수도 항상 덧붙인다. 눈여겨볼 점은 일일 사망자 수는 300명 안팎으로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는데 반해 중증 환자의 수는 조금씩이나마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현재 확진자 수는 4만 174명, 사망자 수는 2천606명(오늘은 292명, 어제는 319명)이고, 중증 환자의 수는 4천632명이다. 중증 환자의 수는 사망 확률이 꽤 높은 환자의 수이기 때문에 높으면 높을수록 앞으로 사망자가 더 늘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전체 중증 환자의 수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날이 바이러스와 싸움에 서광이 비치는 날이 아닐까. 아내의 친구 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학교 교장은 격리 조치가 언제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휴교령은 여름방학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이 일기의 끝은 격리 조치의 끝과 함께 하는가, 아니면 휴교령의 끝과 함께 하는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국뽕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정말 하고 싶지 않고, 웬만해선 하지 않지만 코로나 19의 대처에 있어서는 한국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 같은 생각을 전과는 다르게 요즘, 한다. 심지어 한국에 가면 지내게 될 부모님 사는 곳은 확진자 0명이다. 아, 그림의 떡을 부모님이라도 잡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