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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Apr 04. 2020

오랜만에 자전거 탔다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3

3월 31일(격리 16일째) 화요일 맑음 그리고 바람


아내는 이제 주변 사람들과 통화를 꽤 자주 오래 한다. 아내뿐 아니라 갇혀 지내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그럴 것이다. 나중에 통계가 나오겠지만 프랑스인의 전화 통화 횟수와 시간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었을 듯하다. ‘줌’이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이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대박을 쳤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내가 동료 교사들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이용하던 그 앱이었다. 직장에서 하는 회의뿐 아니라 멀리 사는 가족들과의 동시 화상통화에도 매우 유용했다. 아내는 독일의 여동생과 파리의 막내 이모랑 셋이서 화상통화를 했다. 아들만 넷인 이모는 아내와 여동생 두 자매를 특별히 아낀다. 


전화를 끊은 아내는 “이모 코로나 감염됐대”라고 말해줬다. 깜짝 놀라, 물었다. “엥? 어쩌다가?” 막내 이모는 파리 외곽 동남쪽에 위치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원래는 족부 전문 외과 외래병동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 이후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인보다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모가 있는 병원이 국립이기 때문에 코로나 19 환자들이 많이 수용돼 있고 사망자도 매일 여러 명 나오는 곳이다. 지난주 이모는 코로나 감염 증상이 있어 병원 내 담당센터로 찾아가 문의를 했다고 한다. 발열과 기침, 호흡기 증상은 없었지만 냄새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사를 하고 이틀 후 양성 판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병가를 내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이틀 동안은 평소와 같이 생활했다고 한다. 아마도 같이 사는 남편과 두 아들(넷 중 둘은 따로 산다) 역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아내의 어깨 뒤로 얼굴을 내밀고 나도 이모와 여동생에게 잠깐 인사를 나눴는데 이모는 예전처럼 밝았다. 사망자가 30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대부분 70~80대의 노인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프랑스인들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치된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으니 지레 겁먹을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오전에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우체국의 프리미엄 택배 브랜드인 크로노포스트에서 “오늘 중 소포 2개 도착 예정”이라고 보내왔다. 막내 누나가 소포를 보냈는데 파리-서울 항공편이 줄어든 탓에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예상조차 어렵던 차였다. 누나는 지난주에 소포가 공항에서 대기 중 이래,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프랑스의 우체국 배달이 원활하지 않다는 기사도 본 기억이 있어서 한 달 안에는 받기 어렵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마스크 쓰고 뽐내며 장 보러 갈 수 있게 됐다. 마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이미 3주 전부터 약국이란 약국에는 예외 없이 ‘마스크, 손세정제 품절’이라고 쓰여있는데 말이다. 저 사람들이 다 한국에 친척을 두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어 소포를 부탁했는데 누나가 본인 가족들 명의로 산 마스크 중 여유분을 우리에게 보내준 것이다. 한국의 우체국에서 마스크의 외국 반출은 따로 포장을 해야 한다고 해서 소포의 개수가 2개가 됐다. 치수를 맞춰 아이들이 사용할 면 마스크까지 준비돼 있었다. 교체용 필터도 한 주먹 있어서 잘만 사용하면 1년도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마스크보다 마이쮸나 초코송이에 더 관심을 보였다. 


며칠 전부터 차의 운전석 앞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는 걸 봤다. 딱히 바람을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 방치하고 있었는데 아주 조금씩이지만 더 빠지고 있는 듯했다. 펑크는 아니지만 실바람이 새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영업 중인 카센터를 보질 못했다는 점이다. 집에서 마트 두세 곳을 다니는 경로에 카센터가 서너 곳 있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대중교통이 우리나라처럼 촘촘하지 않은 프랑스의 지방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카센터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곳 중 하나다. 그래서 궁금했다. 내 차의 앞바퀴가 내일 당장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대비는 해야겠기에. 구글 창에 블루아, 영업 중인 카센터,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써보았지만 엉뚱한 답들만 해대고 있었다.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곳이므로 비상 운영을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청에 전화해봤다. 사정을 설명하고 혹시 영업 중인 카센터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바로 끊지 않고 몇 마디 더 우물쭈물하면서 “진짜로 몰라?” 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는 “리들 옆에 있는 베스트 드라이드가 영업을 한다는 것 같은데?”라고 말해주었다. 거긴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는 카센터였다. 분명히 닫혀 있었다. 혹시 몰라 전화를 했더니 누군가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너 어느 섹터에서 일하니?”라고 내게 물었다.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동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할 수 없어 차가 꼭 필요한 사람들만 정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 한해 집으로 직접 출동해서 차를 고쳐준다고 한다. 카센터 입장에서의 ‘재택근무’라고 덧붙였다. 그 재택이 그 재택이 아니지만 딱히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차를 못 고치냐?”라고 한 마디 더 물었더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라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답이 돌아왔다. 다만 셀프로 바퀴에 바람은 넣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알려줬다. 정비사들의 ‘재택근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바퀴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직접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수밖에. 


꼭 바람 빠진 바퀴 때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장 보러 갔다. 드디어 자전거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바게트를 사러 나가는 길에 첫째와 둘째가 자전거를 타고 셋이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오호, 좋은 생각. 증명서에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돼 있으니까. 우리는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고, 나온 김에 아시아 마트도 들러서 두부 두 모를 사 왔다. 20분 정도 걸렸는데 오랜만에 셋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오르막길을 빼고는 아이들도 너무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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