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아 정씨 Apr 05. 2020

조금 특별한 일상일 뿐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6 

4월 3일(격리 19일째) 금요일 맑음 아침에 비 조금


우체국이 근무를 하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한국에서 소포가 제대로 도착하는 것을 보고 정확하게 알 수가 있었다. 동네 우체국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안 나와서 어디에다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데다 인터넷의 어떤 곳에서는 우체국이 정상근무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이트에서는 일부만 근무하기 때문에 정상적 배달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됐다. 역시나 모를 때는 직접 발품을 팔아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우체국은 근무 시간이 약간 단축되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붙이러 우체국에 직접 다녀왔다. 


어제 둘째는 제일 친한 친구 마튜와 화상통화를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관계가 끊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바이러스 감염에 저항하기 위해 예전처럼 자유롭게 밖에 나갈 수 없지만 외부와 단절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라 것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3년 과정인 유치원 마지막 학년인 셋째 담임의 경우 아이들에게 집에서 지내면서 찍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모에게 요구해서 받은 사진들로 웹북을 만들어 다시 보내줬다. 셋째에게 친구들이 집에서 각자 격리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무척 즐거워했다. 첫째 아이는 중학생답게 삼총사로 불리는 절친 둘과 자주 통화를 했지만 둘째는 한 번도 그런 기회를 갖지 않았었다. 


둘째가 마튜와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전화로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자연스럽게 전화를 사용하지만, 처음 전화 통화했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나도 어제의 둘째와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둘째는 웅변을 하는 것 같았다. 듣고 말하기만 통화가 아니라 얼굴을 보며 하는 화상통화인데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소통이라기보다는 통보라고나 할까. 마튜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화 내용은 대충 이랬다. “나 레고 생겼다. 닌자고 자동차다.” “나 봉봉(불어로 사탕) 있어. 한국에서 소포 왔어. 과자도 있어.” 둘째는 방에 가서 자신의 닌자고 레고와 마튜의 새 레고와 비교하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20분 정도 웅변을 하던 둘은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내의 권유였는지, 둘째가 스스로 생각해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은 뒤 둘째는 마튜에게 엽서를 썼다. 프랑스에는 아직도 손편지를 쓰는 문화가 남아 있다. 우리도 낯선 휴가지에 가면 친한 친구들에게 해당 지역의 풍경사진이 담긴 엽서에 글을 써서 보내곤 한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에게서 종종 엽서를 받는다. 정성스레 쓴 손편지를 친구들과 주고받으면서 내 아이들이 우정은 스마트폰처럼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엽서처럼 느리지만 뜻밖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 학교에서 만날 수 없고, 서로의 집으로 놀러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엽서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것은 꽤 멋진 일 같았다. 둘째는 엽서에 주소를 쓰지 않고 큰 노란 통부에 엽서를 넣었다. 그러더니 마이쮸 9개를 챙겨 와 봉투 안에 넣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마튜와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산 봉봉을 하루라도 빨리 나눠먹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뽁뽁이를 봉투 크기에 맞게 잘라 안에 넣었다. 둘째는 노란 포스트잇에 “형들이랑 3개씩 먹어”라고 적었다. 마튜는 삼 형제 중 막내다. 


엽서 한 장이었다면 동네 우체통에 넣었을 텐데 두툼한 소포가 됐기 때문에 우체국으로 직접 가야 했다. 우체국에서는 직원들이 문 앞에 지키고 서서 방문객의 출입을 통제했다. 한 명이 나오면 한 명을 들여보냈다.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온 사람 한 명, 우체국 업무를 위해 온 사람 한 명 총 두 명만 우체국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둘째가 마튜에게 엽서를 쓰고 마이쮸를 함께 보내는 것을 본 첫째는 “나도 콩스탕스랑 샤를롯한테 편지 써야지”라고 말했다. 첫째는 약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본인이 직접 엽서에 그림을 그릴 계획이라고 했다. 


둘째의 엽서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해보니 내가 가장 최근에 손편지를 받은 적이 언제였던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코로나 19 사태로 모든 것이 정지되기 전 파리에 사는 아내의 고모부에게서 받은 서프라아즈 엽서가 있긴 했지만 그건 내가 받은 게 아니라 우리 부부가 받은 것이다. 사실 불어로 된 손편지나 엽서는 종종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부부 앞으로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내 앞으로 오는 우편물이지, 나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한글로 된 편지는 써본지도 받아본지도 너무나 오래됐다. 


프랑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올해 전면 취소됐다. 대신 학교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교육부 장관이 발표했다. 유례없는 시기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곧 휴가 시즌인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