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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Apr 07. 2020

죽일 듯 밉다가 죽도록 아끼고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9

4월 6일(격리 22일째) 월요일 맑음 오전에 비


갇혀서 바쁘게 사느라 날짜 가는 걸 잊고 있었다. 날짜를 꼬박꼬박 써가면서 일기 씩이나 쓰고 있는데 말이다. 오전 공부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셋째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둘째의 프랑스어 숙제를 돕느라 셋째가 뭘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궁금해서 힐끔 쳐다보니 셋째가 보여주기 싫다는 듯 얼른 가린다. 뭔가를 아는 둘째는 “첫째 주려고 그림 그리는 거예요” 한다. 어제는 둘째가 첫째의 선물을 만드느라 하루 종일 색종이에 파묻혀 있다시피 했다. 첫째의 생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 3~4일 정도 남은 줄 알았는데, 글쎄 내일이 첫째의 열한 번째 생일이다. 하루는 더디게 가도 일주일은 금방 간다. 격리 생활이 벌써 4주 차에 접어들었다.


둘째가 첫째의 선물을 준비한 것은 이틀 전부터이다. 아이패드를 써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져서 꼼지락꼼지락 하길래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가서 보니 동영상을 보며 색종이 공작물을 따라 하고 있었다. 색종이 6장을 접어 정육면체를 만들고, 총 8개의 정육면체를 서로 잇는다. 큐브가 열리는 방향으로 돌려가며 면을 바꿀 수 있는 장난감<사진>이 탄생했다. 6가지 색은 첫째가 좋아하는 파스텔톤 위주로 둘째가 직접 골랐다. 중간에 8개의 정육면체를 잇는 과정에서 둘째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내가 살짝 도와줬을 뿐 나머지는 스스로 다 했다. 처음엔 몰래 숨어서 첫째에게 비밀 유지를 잘하는가 싶더니 어제 오후에 다시 봤을 때는 첫째가 둘째를 코치하고 있었다. 생일날 서프라이즈 같은 것은 없게 됐다. 셋째의 그림은 몰래 그린 뒤 밀봉을 해버려 내일 첫째와 함께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선물을 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가족 이벤트가 훨씬 풍성해졌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첫째가 용돈을 다 털어 나와 아내는 물론 두 동생들 선물까지 챙기는 바람에 우리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작년 초부터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규칙에 따르면 7살 생일이 지나면 용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 달에 5유로. 10살이 되면 한 달에 7유로를 매월 초에 받는다. 그래서 첫째는 매월 7유로를, 둘째는 5유로를 받고 있다. 7살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프랑스에서 7살을 “이성의 나이(l’âge de raison)”로 부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대화가 조금은 되는 나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또 이가 빠졌을 때 용돈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빠진 이를 베개 밑에 놓고 자면 생쥐가 와서 그 자리에 동전을 놓고 이를 가져간다, 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생쥐가 엄마 아빠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동전 없으면 거스름을 줄 테니 종이돈으로 줘도 된다고 말할 때도 있다. 가끔은 너무 이성적이다.


남자아이들이 누나의 선물을 몰래 준비하는 동안 정작 우리 부부는 제대로 준비하질 못했다. 몇 가지 생각해둔 것이 있었고, 첫째가 쪽지에 적어 리스트를 주기도 했는데 구입 시기를 놓쳐버렸다. 아무래도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선물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마존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도 격리 조치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배달을 하지 않는다. 매우 이성적인 첫째는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였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 첫째에게 “너 방 새로 꾸민 거 그거 생일 선물인 거 알지?”라고 말해줬다. 주로 장 보러 다니는 내가 엊그제 마트의 책 코너에서 첫째에게 알맞은 선물을 하나 발견하긴 했다. 초보용 그림 그리기 교재를 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중학생이나 되는 자신의 그림이 너무 유아틱 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최근 들어 사실적으로 그려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될 리가 있나. 아내도 교재를 보고는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첫째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두 남동생이 그렇게 누나를 생각하면서 정성스럽게 생일 선물을 준비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전 쉬는 시간에는 셋이 엉켜서 싸우고 난리다. 언변이 상대적으로 딸리는 셋째는 주로 괴성을 지른다. 그 날카로운 소리가 나와 아내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이젠 제법 말도 조리 있게 하는데, 속사포처럼 하고 싶은 말 하다가 괴성을 지르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분노 게이지가 더 상승한다. 셋째의 괴성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 분노까지 건드리는 이유는 딱 하나, 넷째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 셋째가 괴성을 지르면 거의 예외 없이 넷째가 으앙~ 하고 잠에서 깬다. 집안의 평화는 잠시 사라진다.


금세 싸웠다가 금세 보자기로 망토를 둘러쓰고 중세 기사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저 셋을 보면서 형제자매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부모를 고를 수 없듯 형제자매도 고를 수 없다. 일정한 나이가 돼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미워도 함께 살아야 하는 특별한 사이다. 죽일 듯 싸웠다가도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붙어 다니는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 터울이 짧을수록 관계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첫째와 둘째는 두 살, 둘째와 셋째는 세 살 차이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의 강한 질투나 퇴행은 거의 없었는데, 셋째가 태어났을 때 둘째는 아주 심했다. 심하고 오래갔다. 첫째와 둘째의 다툼은 주로 첫째의 너무 강한 리더십 때문에 생긴다. 남자아이 둘은 셋째가 둘째의 영역을 넘보려 하다가 싸움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섯 살과 여덟 살은 아직 체격의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시기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셋째는 온 힘을 모아 괴성을 지른다. 내성적인 성격의 둘째는 두 강한 자아 사이에 끼어서 혼자만의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게 벽에 부딪힐 때 매우 독특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출한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한동안 그 방식을 감내하느라 부모인 우리가 애 많이 썼다.


이 모든 희로애락을 보며 자라는 넷째는 모두의 사랑을 받기만 하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넷째가 크더라도 저 복잡한 세계에 끼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때는 저들이 더 커져 있을 것이므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날수록 관계가 단순해지는 것인가 보다. 셋째와 넷째는 다섯 살 차이이고, 첫째와 넷째는 열 살 차이가 난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형제자매들을 떠올렸다. 5남매 중 막내인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인가. 형 누나들과 싸운 것은 물론이고 혼난 기억도 없다. 내 자아가 생겼을 때 형 누나들은 이미 자신들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므로 어린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사랑하는 어린 막내 동생이었을 뿐. 그렇게 받은 사랑을 나는 아이들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은 그것이 자식이든 형제이든 대상만 다를 뿐 작동하는 방식은 같은 게 아닐까. 우리의 사랑을 받은 내 아이들도 오래오래 서로 사랑하며 지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앙리 고모부의 막내아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상태가 약간 호전돼 투약을 중지하고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나는 단계로 들어섰다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은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서 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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