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1
4월 19일(격리 35일째) 일요일 흐림
우체국의 공식 휴무일인 일요일인데도 아침부터 두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둘째를 위한 소포가 댁에 방금 도착했어요. 소포가 편지함에 잘 들어가지 않네요.”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둘째의 절친 마튜의 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한 둘째는 잽싸게 대문 옆 편지함으로 달려 나갔다. 둘째는 한 손에 소포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튜의 아버지가 직접 둘째에게 주는 소포를 집 앞 편지함에 놓고 간 것이다. 일기를 훑어보니 둘째가 마튜에게 마이쮸를 넣어 소포로 보낸 것이 2주 전이다. 2주 만에 마튜의 답장이 도착했다.
귀여운 놈들. 마튜는 카드의 한 면은 커다랗게 쓴 WOW 글자 주변에 화려한 스티커로 장식하고 다른 한 면에 글을 적었다.
“안녕 이안, 나의 친애하는 이안에게. 잘 지내고 있지. 나도 잘 지내. 그런데 좀 심심해. 사탕은 너무너무 맛있었어. 껑땅이 너한테 고맙다는 말 전해 달래. 나는 몇 개 더 먹고 싶어. 네가 사탕을 주면 내가 돈을 줄게! 물속의 (여자) 닌자야. (좋거나) 또는 (나쁜) 격리 생활되길 빌게. 마튜가. 참, 즐거운 부활절 보내.”
편지글의 사이사이에도 아끼고 아꼈을 스티커들이 붙었는데, ‘친애하는’에 강조의 뜻으로 번개 표시를 붙여둔 것이 눈에 띄었다. 첫째가 친구들과 엽서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자주 봐왔지만 ‘친애하는’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저 나이 때의 어린아이들은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하. 마튜 걔라면 좀 어울리긴 하네."란다. 일요일 아침을 환하게 해 준 소식이었다. 아마도 부활절 전에 부치려고 편지를 썼는데 우체국까지 가는 게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다 마튜 아버지가 “그냥 내가 직접 가져다주고 오는 게 빠르겠다”라면서 오늘 아침 우리 집 앞 우편함에 놓고 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아쉽게도 마이쮸는 벌써 바닥이 드러났다. 대신 둘째는 브라질리언 팔찌를 만들어 마튜에게 답장을 해야겠다고 했다. 격리가 우정을 가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마튜의 편지를 보며 한바탕 웃고 떠들다 우유를 급히 사야 해서 슈퍼마켓을 들렀는데, 이번엔 내 휴대전화에서 문자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사촌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이다. 앙리 고모부의 큰 아들 기욤이 보낸 문자였다. 내용은 오늘 오전 11시에 아버지의 병자성사를 할 예정이니,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쓴 문자에서 기욤은 앙리 고모부의 상태가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고 있다고 전했었다. 가톨릭에서 병자성사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인데, 나는 곧 임종을 맞을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아내와 이야기를 해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라며 안심을 시켰다. 우리 가족은 11시에 맞춰 앙리 고모부를 위해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들은 오늘의 소식은 인터넷에 접한 프랑스 정부의 공식 발표 내용이다. 총리와 보건부 장관이 오후에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지난번 대통령의 5월 11일 학교 등 격리 부분 해제 예정 발표 이후에 설만 무성하던 터라 큰 관심을 끌었다. 여전히 자세한 내용은 없었다. 가장 핵심은 “4월 말에 구체적인 격리 해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말이었다. 현재 하루 2만 5000건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5월 11일쯤이면 일주일에 50만 건 정도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하도록 할 것이며, 특히 공공 교통수단에서는 의무화하겠다는 것, 현재 일주일에 800만 개 정도 생산하고 있는 마스크를 주 1천700만 개까지 늘릴 예정이라는 것 등을 발표했다.
총리가 강조한 격리 해제의 3대 조건은 1.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철저한 자기 관리 2. 신속한 검사 3. 감염자의 격리 조치였다.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늦어도 정말 한참 늦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총리는 이제까지 약 한 달간 이어진 격리의 효과로 감염자 1인당 재감염 수치를 0,6으로 낮췄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예방수칙을 생활화하라는 뜻인데, 스킨십이 각별한 프랑스인들이 잘 지킬지는 미지수다. 벌써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 격리돼 있었으면 바이러스 없는 게 확인됐다.”면서 정부의 조치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일간지 <르몽드>에서는 바닷가에 나와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가족 또는 친구들 단위의 프랑스인 무리를 취재해 기사를 실었다. 바닷가에서의 피크닉은 금지사항이다.
휴교령 해제와 관련해서 총리는 격리 조치 이전처럼 25~30명가량의 학생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는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 그 수가 한꺼번에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경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나 일주일 단위로 교차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반을 둘로 나누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교사인 아내는 그렇게 된다면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의 동선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격리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