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6
4월 25일(격리 41일째) 토요일 맑음
“가만 보면 너는, 방학 때 평소에 좀 부족했던 과목을 좀 들여다본다든지 그런 거 한 번도 안 하드라.”
“쟤네들도 안 하잖아요.”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폭발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내 바닥을 보게 되는데, 어제 오후에 그랬다. 주로 남 탓을 한다든지, 주제와 상관없는 핑계를 댄다든지 하는 게 나를 자극하는 경우다. 어제는 전자와 후자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중학생이면서 초등학생인 동생들을 대화에 끌어들이는 것은 조금 비겁해 보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깨끗하게 떠나지 않고 은근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 치통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는 첫째도 제 동생들과 비슷하게 아직 어리다고 일러줬다.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구나 첫째는 월반을 해서 또래들보다 1년 더 어리다. 감정을 추스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첫째의 방에 가서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방학이면 시간이 많으니까, 심심할 때 교과 관련 책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어.”
“안 심심해요.”
딸은 아직 분이 덜 풀린 모양이다. 오래 앉아 있어 봐야 더 얻을 게 없을 것 같아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얼마 후에 아내와 몇 마디를 나눈 첫째는 거실로 와 내게 화해를 청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어 보여서, 내가 노발대발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첫째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나는 내가 잘못한 걸 이해했다. 아이들은 방학이든 격리 기간이든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는 첫째가 둘째와 쑥덕쑥덕하면서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았다. 둘이서 꾸민다기보다는 첫째의 지시를 둘째가 따른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의자를 나란히 놓고 나와 아내를 불렀다. 연극을 준비한 것이다. 첫째가 엄마 역, 둘째는 아들 역. 엄마와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누는 대화다. 주요 대사만 뽑으면 내용은 이렇다.
아들 : 오늘 멜라니 옆에 앉은 애가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했다니까요.
엄마 :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아들 : 지우개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화장실에서 물 뿌리고 그랬나 봐요.
엄마 : 넌 그런 애들이랑 놀지 마라. 너 걔랑 친하니? 너 걔 짝꿍이야?
아들 : 아니 내 짝꿍은 멜라니인데요?
엄마 : 뭐라고?!?!??
아들 : 엄마는 내가 일등이기를 바라잖아요. 뒤에서 일등 맞잖아요.
어제 일 때문에 괜히 내가 찔려서인지 아들의 마지막 대사가 오래 남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첫째가 고급지게 나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오늘 연극의 내용은 내용대로 내게 충격적인 것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때 심심하다고 불평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연극은 방학 때 종종 우리에게 선보이는 청량제 같은 것이다. 최근 컴퓨터에 저장된 오래된 동영상 파일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연극 동영상을 몇 개 발견해서 한참을 웃었다.
3년 전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어린지. 마찬가지로 둘째와 셋째는 첫째의 지시에 따라 연기를 했다. 동영상 속 아이들은 선글라스와 바캉스용 밀짚모자를 쓰고 여행용 트렁크를 하나씩 끌며 나타났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우리가 한국에 살 때여서 여름방학이면 꼭 보르도 인근의 처가로 와서 지냈는데 그 여행 과정을 연극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장인 장모와 나, 아내 이렇게 넷은 관객석에 앉아서 대사도 잘 들리지 않는 어설픈 연극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나, 넷째, 이렇게 셋이 저녁식사 후에 잠시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날씨가 좋아서 소화도 시킬 겸 유모차를 끌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3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집에 와보니 1~3번 아이들이 떠들썩했다. 가라오케 기계를 거실에 가져다 놓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기계는 선물로 받은 건데 첫째가 가끔 친구들 왔을 때 사용하고, 그 외에는 둘째가 CD로 노래를 듣는 데 사용하느라 아 우리 집에 저런 게 있었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는 물건이다.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나도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기계의 반짝이는 불빛이 신기한 넷째는 그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연극이나 가라오케뿐인가. 격리기간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심심’과는 거리가 먼 족속인지 내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하지 않았던가. 색종이 접기, 중세 기사 놀이, 그림 그리기, 픽셀 아트 그리기, 외줄 타기, 퍼즐, 만화책 읽기, 보드게임… 그런 걸 알면서도 “심심할 때 교과 책을 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자세였던 거다. 차라리 “방학이지만 너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하다. 오는 월요일이면 개학이다. 또 날마다 해야 할 숙제들이 메일함으로 쏟아질 것이다. 그때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며칠만 기다렸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치통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