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6
3월 22일(격리 7일째) 일요일 흐림
결국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게 그거여서 원하는 것도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내 눈에 크게 보여서 남도 나처럼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내가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둔 부모이기 때문에 관련 기사들이 눈에 띄는 건지 정말로 원격 수업을 다루는 기사들이 평소보다 많아져서 내 눈에 띈 건지 헷갈린다. 유사한 관점에서 이번엔 격리조치에도 불구하고 집 밖으로 기어 나오는 사람들의 기사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미국 서부의 어떤 해변가에 젊은이들이 득실거린다는 기사나 파리의 센느 강변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따위의 기사들 말이다.
집에 갇혀 지낸 지 일주일쯤 되니 이제 정말로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은 정부의 조치가 어떤지 모르고 나랑은 거리도 멀어서 해변에 사람이 많든 말든 크게 신경이 안 쓰이는데 왜 센느 강변에 파리지앵들이 많다는 것인지는 궁금했다. 기사를 좀 자세히 읽어보니 정부가 격리 조치를 내리며 정한 다섯 가지 예외조항 중 다섯 번째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단체 운동이 아닌 개인 운동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의 짧은 이동은 가능하다고 했던 바로 그 조항이다. 산책은 단체 운동이 아닌 개인 운동이고, 센느 강변을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꼭 센느 강변 인근에 살지 않더라도 너도나도 나왔을 확률이 크다. 경찰이 막으면, “아, 그래요. 그럼 집에 가지요 뭐” 하면서 돌아갔을 수도 있다. 집에서 나와 경찰에게 저지되기까지,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모두가 훌륭한 산책이 됐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많아지자 정부가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개인 운동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집에서 최대한 2킬로미터 이내여야 할 것, 이라는 단서를 내걸었다. 집에서 2킬로미터 이내의 구간이라면 자전거를 타는 것도 상관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아이들과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구글맵을 켜고 집에서 루아르 강변의 자전거도로까지 거리를 재보았다. 2,5킬로미터. 만약 경찰에게 붙잡혀서 시비를 가리게 된다면 내게 그리 유리하지 않아 보인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인근 숲의 자전거 길까지 거리를 재보았다. 1,7킬로미터. 아싸. 바람만 잦아들면 바로 자전거를 꺼내야지.
그런데 이 도시에도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한 아내는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루아르 강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경찰이 계도에 나섰는데 혼자 걷는 것은 상관없지만 가족들이 함께 걷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식적인 단속 방식이다. 가족이 산책을 나왔다면 집에서 나오기 바로 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가족적 거리제로’ 상태에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빠 출발한 뒤 1분 후에 엄마 출발, 또 1분 후에 딸 출발, 또 1분 후에 아들 출발… 이렇게 산책했으면 괜찮았을까. 일명, 사회적 거리 두고 산책하기. 그 경찰관이 너무 벽창호 같은 사람이었을까. 나는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고민의 크기보다는 나가고 싶은 충동이 더 큰 건 어쩔 수 없다. 자전거는 속도가 있으니까 10개만 세고 출발해도 충분할 것이다. 조만간 사회적 거리 두고 온 가족이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리라. 혹시 그 ‘벽창호’ 경찰관에게 걸려서 가족 모두가 벌금을 맞는다면 135 유로 곱하기 6!!! 으아아아아아.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불어서 정원에도 나가지 못했다. 거실에서 창을 통해 유심히 살펴본 정원은 벌써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지난주 초 정원 관리를 막 시작할 때쯤만 해도 체리나무에 꽃이 겨우 몇 송이 피어 있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거의 만발했다. 70 퍼센트 정도 꽃이 핀 것 같았다. 큼지막한 체리나무 두 그루가 하얗게 꽃을 피우니 정원 곳곳에 이미 봉우리를 터트리고 봄을 맞이하고 있었던 다른 꽃들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 노란 개나리는 볼 때마다 한국을 생각나게 한다. 한국이라면 지금쯤 서울이나 구례 어디서든 볼 수 있었을 텐데, 프랑스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쉽게 길거리에서 만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화단에 열을 맞춰 심어진 짙은 주황색 튤립은 2년 전에 장인어른이 주고 간 것들이다. 심는 꽃을 선물하면 이런 장점이 있어 좋다. 꽃을 피울 때마다 선물한 사람을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튤립 옆에는 수선화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시들시들하던 것들을 기어이 아내가 살려냈다. 월계수에 가려 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야생화인 보랏빛 제비꽃이 만발했고, 라일락도 봉우리가 부풀어 올랐다. 앞마당 주차장에 있는 관상용 사과나무 꽃은 이미 한 달 전에 꽃을 피워 겨울이 가고 있음을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 집 안팎에 꽃들이 얼마나 피었는지 정리를 하다 보니 우리는 멈춰, 아니 갇혀 있는데 봄은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아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목련인데, 날씨가 풀리자마자 사회적 거리 두고 자전거 타기에 나서서 목련꽃구경 좀 실컷 하고 와야겠다. 증명서 지참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