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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엥 Sep 04. 2021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문화

-1부-  17세기에 문을 연 카페가 아직도 파리에서 영업을 한다고?

   여러분들은 문화와 예술의 나라인 프랑스와 파리를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연상되는가?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 아니면 노트르담 대성당? 혹은 몽마르트 언덕?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명한 관광지를 가장 먼저 연상할 것이다. 재미있는 말이 있는데, 파리에 여행을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유명 관광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파리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연상한다고 한다. 

  다른 것은 무엇일까? 파리지앵들이나 프랑스에 오래 산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하면 가장 먼저 연상하는 것은? 그렇다 바로 프랑스의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카페다. 그중에서도 야외 테라스가 있는 노천카페가 바로 그것으로 노천카페야 말로 가장 프랑스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오래 살았던 필자 역시 가장 그리운 것이 바로 노천카페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고 책 읽던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에는, 파리에는 왜 이렇게 노천카페가 많은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카페는 함께하는 음료수이자 대화를 부르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카페café는 장소적인 의미로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지만, 커피 그 자체(coffee)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카페는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냥 장소가 아닌 만남과 소통의 장소인 것이다. 마치 우리 옛날 어르신들이 시골집의 사랑방에 모여서 동네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던 그런 장소가 바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카페인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카페(커피)를 집으로 배달시켜서 마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태국 등 동남아나 다른 나라에서 배달커피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에 선뜻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도 테이크아웃이나 배달커피 매출양이 가장 적은 게 프랑스인 이유가 바로 그래서이다. 즉 프랑스인들은 커피는 대화하는 커피, 만나는 커피, 소통하는 커피, 토론하는 커피 그리고 사랑하는 커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프랑스가 자랑하는 철학이나 사상, 문화와 예술을 만든 힘은 카페에 모여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치열하게 만나고 토론하는 습관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페Café(장소)와 카페Café(음료)의 위대한 힘이자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인 것이다. 프랑스인들에게 카페는 삶의 원천이자 모든 지성의 본부였으며 모든 문화, 예술, 사상의 집합지였다. 오죽했으면 ‘사회계약’이라는 유명한 책을 써서 프랑스 대혁명에 불을 지폈으며 계몽사상을 발전시켰던 프랑스의 유명한 대철학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죽음을 앞에 두고 “아 더 이상 커피 잔을 들 수 없게 됐구나!”라면서 자신의 죽음을 아쉬워했다고 하니 프랑스인들의 커피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태양왕 루이14시절부터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견인했던 또 다른 장소였던 살롱Salon이 귀족들과 그들의 귀부인들 그리고 지성인들 중심의 지극히 폐쇄적인 장소였다면 카페는 커피 값으로 동전 하나만 지불하면 신분과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갈 수 있었고 누구와도 어울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런 카페에서는 수많은 민중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국정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었으며 개혁에 대한 논쟁도 할 수 있었는데 이러면서 개혁의식이 구체화되다가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카페는 평등과 인권을 위한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의 사랑인 카페는 어떻게 해서 파리와 프랑스에 자리 잡게 됐을까? 커피의 역사는 9세기경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서 시작, 예멘을 거쳐 아라비아로 전해졌고 옛날에는 검은 색깔로 인해 종교적인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됐던 게 커피였다. 아프리카와 중동을 거쳐 유럽에 들어 온 커피는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문화 때문이었는데, 이탈리아의 무역상들을 통해서 이슬람권에서 많이 마시던 검은 음료인 커피가 유럽에 들어왔지만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이슬람권의 문화는 배척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기독교 문화에서는 검은 색깔때문에 커피를 ‘이슬람 사람들의 와인’이라고 부르면서 멀리 했던 것이다. 기독교 문화와 상극이었던 이슬람 문화에서 인기 있는 음료였기에 당시 유럽인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이 마시는 커피를 배척했던 것은 나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이처럼 커피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던 유럽인들이 커피를 수용하게 된 것은 1600년 경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8세에 의해서였다. 이슬람 지역에서 들어온 커피를 마셔 본 교황의 측근들은 영롱한 와인에 비해 색깔도 시커멓고 달달한 와인에 비해 맛도 쓴 커피에 대해 “색깔이 검은 악마의 음료다”라면서 교황에게 악마의 음료라고 공식 선포하도록 청원을 했다. 그러나 이 청원을 들은 교황은 자신이 직접 커피를 마셔보게 됐고 “악마의 음료치고는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커피를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기독교의 수장인 교황의 공식적인 인정이 있었으니 드디어 유럽에서도 커피가 정식으로 유통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교황의 공식 허락 이후, 162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유럽의 첫 번째 카페가 문을 열었고, 이어서 1650년 경 런던에도 문을 열었으며, 드디어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는 1672년 처음으로 개장을 하면서 카페는 본격적으로 문화, 예술, 문학 그리고 정치와 사상을 논하는 최고의 장소로 자리를 굳히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파리 최초의 카페가 17세기 중반에 생겨났던 것이다. 그 카페가 바로 지금도 파리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볼테르와 루소, 디드로 등 당대 최고의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었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인 것이다.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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