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엥 Oct 12. 2021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역사

밀레의 <만종>이 사실은 아기 장례식 그림이라고?  - 2부

1부에 이어서.....     당시 루브르 박물관이 실시했던 X-Ray검사와 결과는 미술계와 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루브르 박물관의 발표 이후에 정말 밀레가 감자바구니 자리에 원래는 아기 시신이 있는 관을 그렸다가 나중에 색을 덧칠해서 감자바구니로 바꾼 것이 아니냐는 주장들이 점점 더 소리를 높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밀레는 원래는 바구니 안에 아기 시신과 관을 넣은 그림을 그렸고 나중에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입혔던 것인가? 그래서 하루 일과를 마친 감사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죽은 아기를 슬퍼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아쉽게도 감자바구니 아래에 있는 흔적의 유무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또한 많은 밀레 연구자들은 달리의 이러한 주장을 터무니없는 개인적 망상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들 연구자들에 의하면 감자바구니 밑에 있는 덧칠한 흔적은 밀레가 색을 칠하기 전에 그냥 기본적인 밑그림으로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밀레의 <만종>에서 감자바구니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 그림의 원작자인 밀레 자신이 그 논란에 대한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진실과 상관없이 이 그림에 관계된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프랑스의 농촌은 가난한 농부들이 힘겹게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아껴서 다음 해 봄에 밭에 뿌리는 생활을 했었는데 <만종>에 나오는 부부도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부부도 배고픈 아기를 위해 씨감자를 주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아기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서 감자바구니에 아기 시신을 놓고 신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을 담아 기도를 올리던 중이라는 슬픈 이야기다. 

   만약 저 슬픈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감자바구니에 원래부터 있었던 아기 시신이 왜 <만종> 그림에서 없어진 것일까? 어느 날 밀레의 이 그림을 본 친구가 큰 충격을 받았고, 밀레의 앞날을 염려해서 그의 그림에서 아기 시신을 지우고 대신 감자를 채우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림 속에 아기의 시신을 넣은 장면을 그리고 이런 그림을 전시회에 출품하게 되면 절대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고 그림도 팔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밀레는 자신의 그림 <만종>을 출품할 때 아기대신 감자를 넣었고, 그 아기의 관 위에 색을 덧칠해서 감자바구니로 바꿨다는 것이 이 그림에 얽힌 슬픈 이야기이다. 

    밀레를 향한 친구의 걱정은 나름 타당했는데, 그 이유는 밀레가 <만종>을 그리기 7년 전인 1850년에 그렸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씨 뿌리는 사람>으로 인해 이미 정치적인 큰 어려움을 겪었었기 때문이었다.  1850-1851년 <씨 뿌리는 사람>이 프랑스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의외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전시회에서 이 그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극단적으로 갈리게 됐는데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평범한 농부를 마치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렸다는 데에 매우 분개했다. 정치적인 사람들은 더 나아가 밀레가 매우 혁명적이고 정치 선동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분노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당시 보수적인 사람들은 농부의 영웅적인 모습을 싫어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게다가 평범한 농부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린 밀레의 이런 그림이 어떻게 체제전복을 꾀하거나 선동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밀레가 그림 속에 표현한 농부의 모습이 전혀 평범한 농부의 모습이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땅을 박차고 나가는  평범한 농부를 마치 근육질의 영웅처럼 묘사해서 기존의 신분제를 부정하려는 나쁜 의도가 있다고 여겨서 밀레의 그림을 좋지 않게 보았던 것이다. 즉 역동적인 농부의 힘찬 발걸음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가난한 시골에서 못 먹고 살아온 농부답지 않게 씨를 뿌리는 농부의 팔에는 강력한 근육을 바탕으로 한 넘치는 힘이 느껴지는데 이런 것들을 정치권 사람들이 좋지 않게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일반적인 가난한 시골 농부라고 보이지 않는 그림의 주인공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핍박받으며 힘겨운 삶을 영위하던 민중이 마치 땅을 박차고 나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가는 듯한 모습이 밀레가 민중들을 자극하고 선동하려는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밀레의 그림을 본 우파의 보수적인 언론들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계층 간의 갈등을 부추겨 사회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는 사회주의자다”라면서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우파의 또 다른 세력들도 “아니다 이 그림을 그린 밀레는 일하는 가난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짜 사회주의자다”라고 하면서 밀레를 대표적인 사회주의자로 몰아갔었던 것이다. 이런 비난에 대해 정작 밀레 자신은 “나는 사회주의 같은 거는 모른다. 그저 나의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그렸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혁명을 바라거나 정권의 붕괴를 꿈꾸었던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이나 <씨 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밀레의 말대로 그저 농촌의 삶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최대한 전원적으로 평범하게 그린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살바도르 달리의 말대로 아기 관이 있고 보수 언론의 지적처럼 가난한 민중들을 선동하는 정치적인 메시지로 보이는가?  


이전 19화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