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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엥 Sep 03. 2021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교황의 와인>이라는 특별한 와인이 있다고?

  바게트, 크루아상, 치즈,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 그리고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 까지 이 모든 프랑스를 대표하는 먹거리들이 가장 좋은 최상의 맛을 내기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거의 모든 프랑스인들은 아마도 식사 테이블에 이게 없다면 그 어떤 황홀한 요리가 나와도 분명히 2% 부족한 식사라고 할 것이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혹은 프랑스 요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위 질문에 금방 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 모든 프랑스 먹거리들을 완성시키고 프렌치 스타일 식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는 바로 포도주 즉 와인이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가 차려진 식탁이라도 와인이 없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와인이 빠진 식탁은 아무리 화려하게 테이블을 세팅한다고 해도 절대로 빛이 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프랑스 사람들이니까... 그만큼 와인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자부심과 사랑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뜨겁다.  아무리 허름한 단칸 방에 살아도 소고기처럼 붉은 색 고기를 먹을 때는 반드시 레드와인이 있어야 하고, 닭고기나 생선처럼 흰 색 고기를 먹을 때는 반드시 화이트와인을 마셔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프랑스인들이다. 

   프랑스인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세느강에 나갈 때도, 캠핑을 가서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았을 때도 혹은 가족들과 바닷가에 휴가를 가서도 늘 손에는 와인 한 병을 들고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바게트 한 개를 들고 가는 것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 바게트와 와인을 마시지 않는 프랑스인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하니 프랑스인들의 와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2위의 국가이고, 특히 와인 소비량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세계 1위의 국가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수준 높은 와인들은 어떤 역사를 거쳐서 탄생하게 된 것일까? 프랑스의 와인은 프랑스 역사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랜 옛날부터 당연히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고 어떤 계기가 시작이 되어서 만들어 졌을까?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에 앞서 포도로 만든 와인이 반드시 사용되던 장소가 어디였을 지를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와인이 반드시 필요했던 장소는 대대로 교회였었다.

   와인이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바로 중세 유럽 정신세계를 주도하던 종교, 특히 가톨릭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알듯이 중세 유럽은 가톨릭이 정치를 지배하고 세상의 중심으로 군림하던 시대였다. 이런 가톨릭은 미사를 비롯한 예배를 가장 중요시 했는데, 그런 중요한 예배를 더 중요하게 빛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예배 중에 거행되는 성찬식(애찬식)이었다. 성찬식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는 의식이었는데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의 살을 상징하는 빵과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즉 와인이었던 것이다. 

  특히 특정 미사에 지역의 유명한 사람이나 높은 지위의 사제라도 참석하면 그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당연히 평소보다 품질이 더욱 좋아야 했던 것이다. 제국의 황제나 대제사장이 참석하는 예배의 성찬식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질 나쁜 포도주를 낸다는 것은 당시에는 매우 불경한 죄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도원이나 교회가 포도주 농장을 아예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수도원이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농장)에서는 최대한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야만 했고, 이것은 곧  일종의 선의의 경쟁이 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남쪽지방(특히 교황청이 있었던 아비뇽 지방을 중심으로)의 와인이 좋아지는 계기가 됐고 결국 세계 최고의 품질을 가진 포도주의 나라로 발전하는 중요한 하나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의 와인은 처음부터 수준이 높았던 것이 아니고 중세시대 접어들면서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프랑스의 남부도시인 아비뇽에 살면서부터(아비뇽 유수) 좋아지게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비뇽에서도 처음부터 좋은 포도주가 나온 것은 아니었고, 아비뇽 유수 이전과 이후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품질의 포도주가 나오게 됐다. 그렇다면 왜 아비뇽 유수 이전과 이후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품질을 가진 포도주가 나오게 됐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아비뇽은 로마의 교황청이 옮겨오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황량하고 조그마한 시골도시에 불과했다. 게다가 거리도 멀어서 파리에서는 무려 1,000킬로나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볼품없는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그저 그런 시골도시에 불과했던 아비뇽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최고 수장인 교황이 들어와서 살게 되고 교황이 기거하는 교황청까지(아비뇽 성) 생기게 되면서 일약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급부상하게 됐던 것이다. 

   즉 아비뇽은 하루 아침에 로마가 누려오던 모든 명성을 이어받는 도시가 된 것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아비뇽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성사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과거에는 그저 흔하디흔한 예배와 성찬식이 드려졌다면 이제는 교황이 참석하는 예배가 되면서 아비뇽 대성당의 예배는 하루아침에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됐던 것이다. 교황이 기거하면서 직접 주재하는 예배와 미사까지 드렸으니 당연히 아비뇽 도시의 위상도 엄청나게 달라졌던 것이다. 이처럼 교황이 참석하고 주재하는 가장 중요한 미사에서 성만찬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중요한 성만찬에 품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아무 포도주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비뇽 대성당의 미사에는 교황의 지위에 걸맞는 최고로 좋은 포도주가 필요했는데 불행히도 아직까지 아비뇽에서는 그런 좋은 품질을 갖춘 포도주가 전혀 생산되고 있지 않았다.

   미사와 성찬식에 사용 할 포도주로 인해 아비뇽 도시 전체에 큰 변화와 활력이 생기면서 도시 자체가 점점 더 중요해지게 됐고, 품질 좋은 포도주 공급을 위한 대규모 와이너리(포도농장) 개간이 필요해지게 됐다. 그중에서도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고 토양이 좋았던 아비뇽 인근의 론Rhône 지역이 일약 프랑스 최고의 포도 재배지역으로 부상한다. 프랑스에서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의 연간 일조량이 평균 2,050시간인데 비해 아비뇽 인근 론 지역의 일조량은 무려 2,750시간이나 된다고 알려졌으니 와인제조에 있어 필수적으로 중요한 일조량이 얼마나 풍부한 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비뇽 유수 이후부터 품질 좋은 포도주를 공급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게 됐는데, 나중에는 아예 ‘샤또네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직역하면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 와인 생산지역이 생기게 됐고, 결국 이곳에서 교황의 성찬식에 필요한 최고 품질의 포도주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교황의 와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 와인의 병과 라벨에는 교황을 상징하는 문양이 독점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교황의 와인이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황의 와인, 즉 샤또네프 뒤 파프 와인은 개성이 뛰어난 9가지 레드와인 품종과 4가지 화이트와인 품종을 혼합하여 만들어서 가장 적절한 향과 맛을 내는 와인으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13가지의 포도를 혼합하여 만들기 때문에 산도가 뛰어난 드라이한 맛과 향은 물론 자몽 향을 비롯한 각종 산뜻한 과일 향, 꽃향기, 스파이스, 허브 향을 함유하고 있는 매우 훌륭한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8년 미국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와인 중 8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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