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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Aug 07. 2020

하와이 Day 1

가까스로 출발하다

2018.7.29. (일)


인천 공항-호놀룰루 공항ㅡ빅아일랜드 코나 공항-쉐라톤 코나ㅡ샘 초이즈 식당ㅡ월마트


언제쯤이면 짐을 여유 있게 미리 싸 둘 수 있을까. 나의 베프 은지의 충고에 따라 여행 출발 2주 전부터 큰 박스를 거실에 두고 생각나는 짐들을 던져놓았다. 

출발이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작년 여름 이후 일 년 동안 방치됐던 아이들 아쿠아슈즈는 혹시나 해서 신겨보니 더 이상 맞지 않았다. 하루 배송이 가능한 곳에서 급하게 주문했다. 하와이로 떠나기 전에 과감한 색으로 네일을 꼭 하고 싶었다. 평소엔 아토피가 심한 둘째 등 긁어주는 손, 물 마를 틈 없이 살림하는 손이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와이에서는 손톱에 힘줘보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네일은 포기하고 출발 하루 전에 겨우 뿌리 염색만 했다. 정확히 말하면 앞머리 새치 염색이다. 인생샷이 예정되어 있는데, 여행에 대한,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내 옷은 챙기고 보니 2년 전 제주 갈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2년 전에 입고 장롱에 고이 넣어두었던 비키니는 고무줄이 삭아있었다. ‘가서 하와이스러운 나시티도 사고 비키니도 사야지.’ 스스로를 달랬다. 


출발 전날 빽빽한 준비물 리스트를 한 줄씩 지워가며 온 신경이 곤두서서 짐을 쌌다. 3주나 집을 비울 예정이니 냉장고도 파먹어야 했다.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며 쫑알거리는 초3, 초1 아이들 입을 닫게 하려고 ‘쥬라기 공원’을 틀었다. 쿠알로아 랜치에 갈 예정인데 쥬라기 공원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니 미리 영화를 보고 가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가물가물하던 나도 결국 영화를 틀게 된 본연의 목적을 잊고 TV 앞에 앉아버리고 말았다. 내일이 떠나는 날이고 아직 짐도 못 쌌는데 말이다. 아직도 박스에서 캐리어로 못 옮겨지고 있는 짐들을 보며 애들도 걱정이 됐는지 '엄마, 우리 내일 가는 거 맞지?' 한다. 

4인 가족이 떠나는 21일간의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짐이 어마어마했다. 수화물 추가금을 내지 않으려고 캐리어 무게를 남편과 몇 번이나 재고, 지퍼를 열어 짐을 한참 째려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물건을 빼고, 테트리스를 다시 했다. 결국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드디어 비행기 타는 날이다. 기적적으로 짐을 싸고 차 트렁크 문을 겨우 닫고 출발했다. 둘째가 애지중지하는 물고기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하와이에서 쓰려고 송도 코스트코 점에 들러 회원증 발급을 하고, 장기 주차를 싸게 할 수 있다는 운서역에 기적적으로 차를 대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는데!'라는 말을 열 번쯤 한 후에 이룬 성공이다. 공항에 오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007 작전을 수행하듯 긴장했던 마음이 면세점 향수 냄새를 맡고 이제야 안정을 찾았다. 설레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석을 왜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이제는 늙었는지 다리도 제대로 펴지지 않는 이코노미 석에서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옆에서 나보다 더 잠을 못 청하는 첫째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잘 자야 잘 놀텐데... 내 무릎에 누웠다가 어깨에 기댔다가 뒤척이는 아이를 토닥이면서 잠의 목적이 잘 놀기 위함인 게 새삼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커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놀기'가 쉽게 '공부'로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아후 섬의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해서 빅아일랜드 섬의 코나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와이에서 여행하는 섬은 크게 오아후, 빅아일랜드, 마우이 세 곳이다. 일주일 이내로 일정이 짧은 사람들은 오아후, 그 이상인 사람들은 오아후와 이웃 섬 마우이, 빅아일랜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웃 섬 중에 빅아일랜드보다 마우이를 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주저 없이 빅아일랜드를 선택했다. 마우이는 나중에도 다시 올 수 있지만 빅아일랜드는 모험이 가득한 곳이라 더 젊을 때, 더 용감할 때 다녀오고 싶었다. 빅아일랜드는 먼저 다녀온 친구가 ‘살면서 이런 자연을 언제 또 보나 싶어. 꼭 가 봐.’하며 강력 추천했던 곳이기도 했다. 

오아후는 경유할 수밖에 없는 주섬이어서 여행 일정 앞에 넣을지 뒤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쇼핑 짐이 많아질 곳 같아서 여행 뒤쪽으로 일정을 잡았다. 빅아일랜드는 공항이 두 곳 있다. 서부에 코나, 동부에 힐로 공항이다. 코나의 느낌이 오아후 섬 느낌과 비슷해 보여서 변화를 주기 위해 힐로를 중간 여행지로 잡았다. 그래서 우리 일정은 빅아일랜드 (코나 in-힐로 out) - 오아후 가 되었다. 

    

9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호놀룰루에 도착해 다시 주내선으로 갈아타고 드디어 코나 공항에 도착했다. 완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 업체의 셔틀을 탔다. 우리와 빅아일랜드를 함께 누빌 차를 만났다. 차 번호판에 무지개가 떠 있다. 누가 차 번호판에 무지개를 그려 넣을 생각을 했을까. 

우리의 첫 숙소 쉐라톤 코나에 도착했다. 프런트 앞의 풍경에 숨이 턱 막혔다. 아무리 사진으로 여러 번 찍어봐도 그 풍성함과 운치가 표현되지 않았다. 수영장도 당장 뛰어들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쉐라톤 코나의 로비

그런데 배정받은 방이 어둡고 눅눅한 1층이었다. 프런트로 다시 가서 바꿔줄 수 있냐고, 하와이의 첫 숙소인데 5박 6일을 이 방에서 보내면 unhappy할 것 같다고 용기 내어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프런트 언니가 ‘I don't want you to be disappointed. I wanna see happy, smiling face.' (당신이 실망하길 원치 않아요. 나는 당신의 행복한,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방을 기꺼이 바꿔줬다. 발코니에서 수영장 슬라이드 시작되는 곳이 바로 보이는 방이었다. 슬라이드 타기 전 흥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렸고 웃음과 에너지가 발코니를 넘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일찍 잘 줄 알았는데 우리는 짐도 안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깜깜해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쉐라톤 코나 수영장

창이 없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식당에서 생음악을 들으며 첫 저녁식사를 했다. 친절한 웨이터, 시원한 바람, 입에서 살살 녹는 립아이. 낭만에 취해서 팁을 20%나 줬다. 첫날이니까, 첫 식사니까 괜찮다. 

월마트에 들려 바디보드 어른용 1개, 아이용 1개, 파라솔, 부력봉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잔 몸으로 물놀이까지 신나게 한 아이들은 꿀잠을 잤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꿀잠을 자는 줄도 모르고 꿀잠을 잤다. 그래서 시차 문제는 여행 첫날, 단 하루 만에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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