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거북 Aug 17. 2020

하와이 Day 5, PM:그린샌드비치

그린샌드비치에서 살아남기

2018.8.2.(목) PM  


커피셱 브런치(The Coffee Shack)-투스텝(Two Steps-Keoneele Cove) 스노클링-푸날루우 비치 파크:블랙샌드비치(Punaluu Beach Park) -푸날루우베이크샵(Punaluu Bake Shop)-사우스포인트(Ka Lae-South Point)-그린샌드비치(Green Sand Beach)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5 (AM)’ 편에 있습니다.-


그린샌드비치에서 현지 사람의 4WD를 타기로 했다. 처음에 60불을 불렀지만 기분 좋게 5불 깎아주셨다. 나와 똥꼬2호는 앞에, 아빠곰과 1호는 짐칸에 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길이 얼마나 험할지 알지 못했고, 우리는 사우스포인트 다이빙 이후로 흥분상태여서, 짐칸에 타는 건 왠지 더 낭만적이고 모험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두 자리가 더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 미국인 엄마와 아들까지 짐칸에 태운 후 출발했다. 

그린샌드비치 현지인 차량: 이때만 해도 뒷자리(똥꼬1호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사실 빅아일랜드에서 차를 렌트할 때 4WD로 업그레이드를 요청했었다. 마우나케아 정상에 갈 때와 그린샌드비치를 이동할 때는 4WD가 필수이다. 렌트할 때 말만 잘하면 무료로 4WD로 업그레이드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서 아쉬웠었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그린샌드비치는 4WD를 빌렸어도 우리 힘으로 운전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아주 숙련된 운전사만이 갈 수 있는 오프로드였다. 왜 보험제한구역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막 같은 길을 지나면서 바퀴가 빠져있거나, 보닛이 열린 채 방치되어있는 차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낮부터 심상치 않던 모래바람은 그린샌드비치에서 절정을 이뤘다. 짐칸에 탄 우리 집 두 남자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내가 바람이 이렇게 심한 게 흔한 일이냐고 묻자 기사 아저씨도 오늘은 아주아주 심한 날이라고 했다. 우리는 물과 배터리가 동나고 있었다. 비치가 보일 때마다 이게 그린샌드비치인가 저게 그린샌드비치인가 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린샌드비치로 걸어 내려가는 길은 사람 몸 하나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바람은 이제 더 심해져서 눈과 목이 따가웠다. 똥꼬2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래바람에 눈을 못 뜨고 휘청거리다가 넘어져서 다리에 피가 났다.  

    

아저씨가 30분 후에 데리러 온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이까지 힘들게 왔는데 30분밖에 못 논다니 아쉽다고 생각했다.


좁고 날카로운 협곡 같은 길을 지나 내려가니 

우 와! 


그곳엔 우주가 있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깨어난 새로운 행성 같았다. 신비로운 녹색 모래언덕과 푸르르고 높은 파도에, 오늘의 모래바람이 신비로움을 더했다. 포대자루를 썰매 삼아 저 위에서 신나게 타고 내려오고 싶었다.    

그린샌드비치를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런 압도적인 풍경을 앞에 두고도, 바람 때문에 사진 한 장 찍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혹시 이 모래바람이 나한테만 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이와 대가족이 모래바람의 힘을 받아 사납게 솟구치는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바위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옴팍한 곳에, 홀로 평화롭게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소녀도 보였다. 바람이 조금 덜 한 곳에서 미소 짓고 책을 읽고 있는 소년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 정녕 이 모래바람은 나한테만 불고 있는 것 같았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슬쩍, 책 읽는 소년이 있는 자리 주변으로 가서 앉아보았다.      

(내가 모래바람과 싸우고 있을 때) 저 뒤 바위 틈에 앉아 사진찍는 소녀, 바다에는 파도를 즐기는 젊은이들


모래바람 여기는 안 불어요? 어떻게 책을 읽어요? 괜찮아요? 물어보고 싶었다.   

   

모래바람은 더 심해져서 목이 따가워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애들이 걱정돼서 계속 숨을 곳을 찾았다. 짧아서 아쉬울 것 같았던 30분은 이제 일 분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차 앞자리에 먼저 태우려고 일찍 올라왔다. 그런데 차가 없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던 파도 타던 젊은이 대가족이 떠나고 나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10분이 지나자 우리와 같이 차를 탔던 미국인 엄마는 계속 걸어서라도 이곳을 나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오지않는 차를 기다리며: 그린샌드비치의 사진은 배터리가 다 닳아 고프로로 찍은 몇 장만 남아있다

버려진 사막 고아, 아니 우주 고아가 된 것 같았다. 하룻밤을 여기서 지새야 되는 게 아닌가, 물도 배터리도 없는 데 어떻게 하지?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기사 아저씨가 왔다. 야호! 거기다 이번엔 아까 우리가 올 때 탔던 차와 달리 모두가 안에 탈 수 있는 창이 있는 차였다. 그린샌드비치에 도착했을 때 다리를 다쳐 절뚝이며 올라오던 소년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모래바람 때문에 더 안전한 차로 바꿔온 아저씨의 배려도 느껴졌다. 차에 타자마자 하루의 긴장이 사르르 녹으며 어찌나 따뜻하고 편하던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기사 아저씨의 영어는 멕시칸 억양이 아주 강해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는데 누군가와 운전하는 내내 높고 빠른 톤으로 통화를 했다. 

드디어 우리 차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저씨 차에서 연기가 나는 게 아닌가! 영화에서나 보던 연기였다. 나는 빨리 나가자고 소리쳤고, 아저씨에게도, 미국인 모자에게도 겨우 인사하고 멀리 대피했다.  맙소사! 반대쪽에서는 수리차가 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이 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남은 차가 그 차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는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아! 이번 여행 정말 다이나믹하다. 

오늘 하루의 다이나믹함을 담느라 내 폰, 남편 폰, 고프로까지 배터리가 다 닳았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 내비로 써야 할 폰을 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심각한 길치라 남편 옆자리에서 지도를 아무리 째려봐도,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와이 도로는 막히지도 않아 창을 내리고 옆 사람에게 길을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깜깜하고 인적 없는 도로를 한참 헤매다가 남편의 비상한 공간지각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날까지의 일정만으로도 나의 버킷, 아빠곰의 버킷을 다 이루고, 스토리가 꽉꽉 차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도 아쉽지 않을 기분이었다.   

   


우리 집 똥꼬1호, 2호는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셋이 나란히 누웠을 때 쏟아놓는다. 하와이 다녀온 지 일 년도 지난 어느 날 밤도 그랬다. 똥꼬1호가 “엄마, 그때 그린샌드비치 갔을 때 있잖아. 혀를 밖에 내놓고 와다닥을 올려놓은 느낌이었어.” 하고 뜬금 없이 하와이 얘기를 꺼내며 나를 다시 그 우주로 데리고 갔다. 그 표현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그래! 와다닥은 맛도 있고,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잖아. 조금 무섭지만. 엄마도 딱 그랬어. 


오늘 밤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얼른 자!” 하고 으름장 놓지 않고 도란도란 얘기를 해봐야겠다. 아이들이 나를 또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른다. 이래 놓고 제일 먼저 잠드는 건 항상 엄마이지만 말이다. 참, 똥꼬2호가 “엄마, 어제 선생님이 너무 잔인한 얘기를 해줬는데...”에서 끊긴 부분부터 이어 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하와이 Day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