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아직 내 안에 있었다

오염된 삶의 흔적들

by 블레스희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내 인생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나는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바로 사람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는다.”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마치 내 안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현재의 나를 어떻게 흔들고 있었는지, 왜 나는 늘 자존감에 대해 고민하며, 애써 노력해도 허무함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책에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인생을 ‘오염(CON(T)AMINA)시킨다’는 표현으로 그 영향을 설명한다. 오염이라는 단어는 그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중 몇 가지를 분명히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C.O.N.T.A.M.I.N.A — 오염된 내면의 징후들

•C: 상호의존증(Co-dependence)

•O: 공격적 행동(Offender behaviors)

•N: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Disorders)

•T: 신뢰의 문제(Trust issues)

•A: 표출된 행동 / 내면적 행동(Acting out / Acting in behaviors)

•M: 마술적 믿음(Magical Beliefs)

•I: 친밀감 장애(Intimacy dysfunctions)

•N: 무질서한 행동(Nondisciplined Behaviors)

•A: 중독적•강박적 행동(Addictive / compulsive Behaviors)


이 중 나는 상호의존증, 내면적 행동(Acting-in), 마술적인 믿음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환경이 정서적•신체적•성적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면, 아이는 오로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려 거기에만 모든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기존중감을 키워 나가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건강한 내면체계를 갖지 못한 채, 바깥세상에서 뭔가를 성취하려는 시도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상호의존증이며,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증상이다.”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중에서


나 역시 어릴 적부터 내 감정보다는 가족의 감정, 특히 엄마의 기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랐다. 나는 나보다 엄마가 괜찮은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의 반응에 의존하며, 내 감정을 억누르고, 바깥의 인정과 역할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그게 나라는 사람의 ‘존재’처럼 느껴졌으니까.




“어렸을 때 다른 사람에게 받았던 학대를 자기 스스로에게 표출하는 것을 ’내면적 행동(Acting in)’이라고 한다.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향해 적대적으로 돌아오곤 한다.”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중에서


나는 불안하거나 분노가 올라올 때, 타인에게 표현하기보다는 나를 몰아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더 잘했어야지”, “내가 부족해서 그래”, 이런 식의 말로 나를 다그치며 조용히 침잠했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분노가 곪고 있었고, 그건 어느 순간 무기력과 자책으로 나를 마비시켰다.




“마술은 어떤 말이나 몸짓, 또는 행동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자신이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그런 완벽한 결말을 믿으며 무작정 기다리거나 열심히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중에서


나는 늘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살았다. 현재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저 좋은 날이 오기를 꿈꾸며 오늘을 견디는 방식으로 삶을 이어온 것이다. 그 믿음이 나를 지켜줬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게 만든 족쇄가 되기도 했다.




마주보기, 그리고 다시 연결하기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토록 바깥세상에 잘 적응하려 애썼던 나는, 사실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 하나를 안아주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걸.

그 아이는 사랑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그냥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따뜻한 눈빛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며 말해주려 한다.

“네가 아팠던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는 내가 널 지켜줄게.”


치유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나를 다시 만나고 안아주는 순간들 속에 있었다.




혹시 당신도

내면 어딘가에 울고 있는 아이를 품고 있다면,

그 아이에게 오늘 단 한마디만 건네보세요.

“너를 사랑해. 너는 괜찮은 아이야.”

그 말이 서툴고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오랫동안 당신이 얼마나 혼자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 작은 불빛 하나 켜주기를 바라요.

당신의 치유도, 지금 이 순간부터 천천히 시작되기를.




인용 도서: 존 브래드쇼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