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중독에서 시작하는 치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자꾸 움츠러들었고, 조심스러웠고,
누군가의 얼굴을 살피며 지냈다.
화가 난 얼굴
인상을 찌푸린 얼굴
대답 없는 침묵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작게’ 만들었다.
어릴 적, 칭찬을 받았던 순간보다
혼이 났던 순간들이 더 또렷하다.
"왜 그렇게밖에 못하니?"
"누가 그렇게 하래?"
그런 말 앞에서 울컥 올라왔던 감정은
금세 "내가 잘못했구나"로 바뀌곤 했다.
그렇게 나는 부끄러움을 '내 탓'으로 배웠다.
이제야 알게 됐다.
그건 나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수치심 중독’이라는, 우리 사회와 가정 안에 오래도록 뿌리내린 패턴이라는 것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저자는 말한다.
수치심은 중독된다.
그리고 그 중독은 삶 전체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나는 완벽주의적인 체계 속에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시선 아래에서 자랐다.
실수하면 사랑을 잃을 것 같았고,
울면 약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다정한 말보다 비교와 침묵을 먼저 배웠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안의 아이는 말없이 웅크려졌고,
스스로를 감추는 법, 숨기는 법, 버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나는 어디에서 수치심을 배웠는가.
내 안의 목소리가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완벽함을 강요하던 말들 속에서 태어났고,
조용히 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졌던 침묵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좋은 아이'가 되어야 했고,
인정받기 위해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감정을 말하려다, 분위기를 망칠까 멈춘 적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불안해지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오래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말하려 합니다.
"그때 너는 혼자가 아니었어.
네가 틀린 게 아니었어."
나는 지금 너의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어.
수치심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말속에서, 시선 속에서, 비교와 질책 속에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일찍 그것을 내면화해 버린다.
나도 그랬다.
감정을 느끼는 나를 '유난스럽다'라고 여겼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이상하다'라고 여겼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수치심은,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는 것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내면아이 치유’는
그 아이를 다시 만나주는 일이다.
"그때 너,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혼자였니."
그렇게 묻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을 토대로,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중요한 네 가지 발달 단계를 다룰 예정이다.
각 시기에 충분히 받지 못한 돌봄은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고 회복할 수 있는 묵상 연습도 함께 나눌 것이다.
우리 안의 내면아이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