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김광진, <편지> / 김건모, <그대 내게 다시>

by 유작가


<편지> -김광진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 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맘만 가져가오*

**


가수 김광진. 1991년 데뷔. 현재까지 총 5장의 앨범을 보유하고 있다. 1994년 멤버 박용준과 함께 ‘더 클래식(The classic)’이라는 남성 듀오를 결성해 <마법의 성>이라는 신비스러운 느낌의 동화 같은 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2집 타이틀 곡 <여우야(女雨夜>에 이어 3집 앨범까지 활동하다가 ‘더 클래식’이 아닌 솔로 김광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데 이유는 <편지>, <동경소녀> 같은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겼기 때문이다. (‘더 클래식’은 17년간의 기다림 끝에 2014년 10월, 5곡의 신곡을 담은 미니앨범을 발매했다. 그때의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으신 분은 들어보시길)


<편지>는 2000년에 발매한 그의 3집 앨범 <<Last decade>>의 수록곡. 가수 김광진이 ‘더 클래식’ 때부터 보여준 그의 음악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유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애절하고 안타까운, 그리고 진솔한 노랫말을 담담한 목소리로 시를 읊어나가듯 멜로디에 담아 부르는 게 그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자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편지>는 그런 점에서 김광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노래가 아닐까? 잔잔하고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써내려 간 음악시 한 편을 들어보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 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라며 일상생활에서는 좀체 쓰이지 않는 옛 구어체로 노래를 시작하는 연유는, 이 노래가 제목 그대로 편지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위한 마지막 연가(戀歌)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을 편지글을 빌어 선포하며, 억지 노력으로 지나가는 사랑을 붙잡으려 하거나 인연을 거슬러서 당신의 앞길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사려 깊은 남자.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이 정말 많지만 이제는 다 남겨두고 떠나야 할 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혹시 남은 미련도, 기대도 다 포기하겠다고. 그러니 그대, 부디 잘 지내라고. 남자는 이 편지에서 ‘사랑한 사람’이라는 말을 딱 한번 꺼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듣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은 나에게만 드는 걸까? 마음을 숨기고 꾹꾹 눌러서 쓴 절제된 편지.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이별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흔히들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라고 하지 않나. 둘 사이에 수많았던 밀어들을 잠재우고, 이제는 우리 사이에 그 어떤 단어나 암호도 교환할 수 없음을 헤어지는 이들은 직감적으로 느낀다.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라는 문장은 왜 썼을까. 아마도 이 이별은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이 세상 끝까지 함께할 정도로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그런 불가항력적이고 거지 같은 세상이 둘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다치고 떠나는 길을 선택하겠다, 뭐 이런 상황이라고 대략 짐작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사람. 이제는 사랑했던 사람이 될 당신이 있어서 힘겨운 날들을 견뎌온 것에 감사하다고. 내 사랑은 여기까지만 욕심부리겠다고.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맘만 가져가오


이 편지의 마지막. 진짜 하고 싶은 말.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기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조건이 있어. 사는 동안 날 잊고 살 것. 그렇지 않으면... 이 편지가 당신에게 너무 큰 아픔이 될 테니까. 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이 행복하기 바라는 마음만 남길 테니 사랑했던 기억은 다 잊고, 나의 이 진심만 가져가오.



+김광진, <편지>와 함께 엮고 싶은 노래는 김건모가 부른 <그대 내게 다시>.


<그대 내게 다시> -김형석 (Song by 김건모)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내가 그댈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 헤매이나요


맨 처음 그대와 같을 순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돼요


*헤어졌던 순간은

긴 밤이라 생각해

그대 향한 내 마음

이렇게도 서성이는데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우리 헤어졌던 날보다

만날 날이 더욱 서로 많은데*

**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지금 그대로의 그 모습으로

내게 그냥 오면 돼요


<그대 내게 다시>는 원래 가수 변진섭이 1992년 5집 앨범에서 발표한 노래지만, 워낙 명곡이다 보니 이후 리메이크가 많이 되었다. 나름 90년대 노래는 거의 다 섭렵했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가수 변진섭의 노래까지 듣고 자란 세대는 아니므로... <그대 내게 다시>를 처음 들은 건 김건모의 목소리를 통해서였고, 그것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였다. 지금 봐도 너무나 예쁘고, 귀엽고, 청순하고, 섹시한 ‘그녀’ 역할로 열연했던 전지현이 카페를 배경으로 견우를 추억할 때, BGM으로 나오는 걸 듣고 알게 됐다. (영화를 볼 때 나는 흘러나오는 노래나 연주곡을 포함한 전반적인 OST를 유심히 듣는다. 생각지도 못한 명곡을 건질 수 있으므로)


영화에서 잠깐 스치듯 들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 노래를 기억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영화라면 TV를 통해 보던 ‘주말의 명화’가 다였는데, 내가 중3 때 처음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인 것이 아마 계기라면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이 영화의 임팩트가 너무도 강렬해서 비디오 가게를 하던 친구의 부모님이 가게를 접으실 때 <엽기적인 그녀> 비디오를 갖고 싶다고 말해 득템 한 뒤, 10번은 넘게 돌려보느라 영화에 사용된 음악들까지 모두 외운 것으로 기억된다.

<그대 내게 다시>라는 노래 자체가 한 번만 들어도 인상에 남을 정도로 좋기도 했고, 김건모가 부르는 발라드에 유독 꽂히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실 신승훈의 <I believe>보다 김건모의 <그대 내게 다시>가 엽기적인 그녀를 떠올릴 때 먼저 생각나는 노래다.


사실 <그대 내게 다시>는 김건모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이 아니고, 작곡가 김형석이 1997년에 발매한 1집 <<Ace>>에 수록된 곡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OST를 작곡가 김형석이 맡았기 때문에 자신의 1집 앨범에서 김건모가 부른 <그대 내게 다시>를 영화의 한 장면의 백 뮤직으로 약간의 의도성(?)을 가지고 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뭐 어쨌든 영화 내용과 장면에 이 노래가 딱 떨어지게 잘 들어갔다)

2001년에 발매한 김형석 2집은 <엽기적인 그녀> OST 앨범으로 아예 함께 내어져서 신승훈의 <I believe>와 함께 많은 곡들이 널리 사랑받았고, 영화 OST가 대부분 그렇듯 김형석 2집 수록곡들은 <엽기적인 그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재밌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상시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갑자기 영화 OST 이야기로 흘러갔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노랫말에 집중.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내가 그댈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 헤매이나요


맨 처음 그대와 같을 순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돼요


김광진의 <편지>와 김건모의 <그대 내게 다시>를 엮은 이유. 사랑하는 ‘그대’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을 담은 노랫말 때문이다. 나에게 다시 돌아오려 하는지, 내가 그댈 아직 사랑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물어보는 남자. 이런 질문 뒤에 답변.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된단다. 계절이 돌고 돌아서, 언 땅이 녹고 다시 꽃이 피는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돌아오면 된다고. 이상하거나 어색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헤어졌던 순간은

긴 밤이라 생각해

그대 향한 내 마음

이렇게도 서성이는데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우리 헤어졌던 날보다

만날 날이 더욱 서로 많은데


당신이 내게 돌아오려고 하는 건지 물어보는 이유는, 사실 내가 당신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겠지. 헤어졌던 날들을 긴 밤으로 생각해버리면, 당신이 돌아오는 날부터 다시 낮이 시작되니까. 문밖에 서서 내 님이 언제 오시는지 서성거리는 그 마음. 그때의 설렘이 길면 길수록 나는 더 견디기 힘들어질 테니까.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헤어져 있던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의 이런 기다림도 난 참을 수 있어. 얼마든지. 이 말이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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